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어느 마을에 삼 형제가 살고 있었다. 이들 형제에게는 각자 하나씩 보물이 있었는데, 첫째에게는 어디든지 볼 수 있는 천리안이 있었고, 둘째에게는 어디든지 마음먹은 대로 갈 수 있는 마법의 양탄자가 있었으며, 셋째에게는 무슨 병이나 고칠 수 있는 마법의 사과가 있었다. 삼형제가 사는 나라에는 예쁜 공주가 있었는데 어느 날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다. 왕은 세상에 뛰어나다는 모든 의사들을 데려다 치료를 했으나 모두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진기한 명약이 아니고는 공주님의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의사들의 말을 들은 고민 끝에 세상에 알렸다. ‘공주의 병을 고쳐주는 사람은 공주의 남편이 되어 나의 왕위를 계승하게 될 것이다.’. 어디든 볼 수 있는 천리안을 가진 먼 마을의 첫째가 왕의 포고문을 읽게 되었다. 그는 공주의 병을 고쳐주고자 동생들과 상의했다. 그래서 아무 곳이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둘째가 가진 마법의 양탄자를 삼형제가 같이 타고 궁전으로 향했다. 왕을 알현한 삼형제는 곧바로 공주의 처소로 향해 어떤 병이든 고칠 수 있는 막내의 사과를 공주에게 먹였다. 그러자 공주의 병을 씻은 듯이 나았다. 공주의 병이 완쾌된 것을 알게 된 왕은 곧 축하연을 베풀고 자신의 사위를 뽑으려 했다. 삼형제 중 누구로 사위를 삼아야 할지 선뜻 결정할 수 없었다. 첫째의 천리안이 없었으면 공주의 병을 알 턱이 없었을 것이고, 둘째의 양탄자가 없었으면 공주의 병이 위험 지경에 이르기 전에 도착할 수도 없었을 갓이고, 셋째의 사과가 없었으면 병을 고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왕이 사위로 삼은 사람은 막내였다. 이에 두 형이 강력하게 항의하자 왕은 답했다. ‘첫째는 공주의 병을 고치기 위해 왔지만 아직도 그 천리안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둘째 또한 공주의 병을 고치기 위해 왔지만 역시 자신의 양탄자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셋째는 공주의 병을 고치기 위해 자신의 사과를 내 주어 자신에게 남아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 줄 때 그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 된다.’

 제자 자공이 스승인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족병(足兵), 족식(足食), 민신(民信)이 이루어져야 한다..‘ 넉넉한 식량과 병력, 그리고 백성들의 민심을 역설한 것이다. 그러자 자공이 다시 물었다. ’만일 부득이하여 세 가지 중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 ’병력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또다시 버려야 한다면 나머지 두 가지 중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 ‘식량을 버려야 할 것이다. 자고로 먹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으나 사람은 죽기 마련이다. 그러나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조차 일게 된다.’ 마지막 구절에서 공자가 민신을 거론한 것은 나라가 외침 등으로 인해 패망에 직면했을 때 군주가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였을 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군주가 할 일 중 중요한 부분은 국민 소득 불균등을 막아 균등분배가 이루어지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함과 동시, 소득의 균등 분배 보다 중요한 기회균등을 이루어 내는데 최선의 노력을 쏟아 부을 때 민신(民信)은 절로 이루어 낼 수 있음을 포함하는 말이다.
군대는 적이 감히 행하지 못하는 일을 행하면 강해지고 전쟁에서는 적이 수치스러워하는 일을 해낼 때 유리해진다. 나라를 소유한 자는 재물이 적은 것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하고, 가난한 것을 근심하지 않고 편안하지 못한 것을 근심한다.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예의염치도 알고 균민(均民) 내지 균부(均富)이념에 기초한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아무리 고상하고 거창한 이념을 내걸더라도 백성들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 되어 있지 않는 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도 갖출 수 없고 나라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주인과 일꾼이 서로 상대방에게 정성을 다하는 관계는 부자지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일꾼이 하는 일에 정성을 들이는 것은 모두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일을 하거나 베풀 때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할 때 자신에게도 이롭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 공정한 상거래를 통해 부를 모으는 깨끗한 상인, 그 상징적인 인물이 공자의 수제자 자공(子貢)이다. 그는 어떤 상거래에서나 소비자의 입장을 생각했고 잔꾀라고는 모르는 장사꾼이었기 때문이다.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다. 인심은 먹고 사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했는지 여부에 따라 각박해 지기도 하고 너그러워 지기도 한다. 인성이 본질적으로 선한 것인지 여부와 상관없는 일이다. 이익을 탐하는 인간 본성의 염량태세 행보에 대해 유가에서 흔히 말하는 의리가 없다거나 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생물이 지닌 진화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이익추구가 자신의 종족을 보다 많이 남길 수 있는 보다 유리한 입장임을 본능적으로 안다. 남에게 도움을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들과 원수 맺을 일은 없다. 조선의 큰 재난이라고 할 수 있는 임진왜란은 전쟁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과중한 부역으로 민원이 극심했던 황해도 지역은 왜군이 부역을 모두 감면하고 공사천(公私賤)을 모두 면천(免賤)하겠다는 방문을 붙이자 백성들이 자진해 무기를 버리고 다투어서 왜첩(倭帖)을 받은 일이 있다. 선조 25년 1592년 4월 13일 왜군 20만 명이 조선으로 몰려오자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이 분전했으나 대부분의 관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 왜군이 파죽지세로 북상했다. 여기에는 조선 백성들의 부역(附逆)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백성들이 조정을 불신한 민심이반이 극에 달해 있었다는 말이다.

 개성에서는 안전한 곳을 찾아 도망가는 선조의 가마에 돌이 날아들었다. 평양에 머물던 의인왕후가 함흥으로 옮기려고 하자 흥분한 백성들이 내관들을 공격하고 중전이 타고 있는 말을 때렸다. 평안도 숙천(肅川)에서는 선조가 가고 있는 방향을 왜군에게 알려주기 위해 ‘대가(大駕)가 강계로 가지 않고 의주로 갔다’라고 써 놓은 자도 있었다. 왜군의 선무공작에 넘어가 강화와 교동의 뱃길을 자세히 적어 왜군에게 넘긴 자도 있었다. 함경도에서는 임해군과 순화군을 토착민인 국경인(鞠景仁)이 사로잡아 왜군에게 넘기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이는 왜란 이전에 이미 붕당정치로 인해 거듭된 실정에 백성들이 절망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당시 왜군은 이런 방을 붙였다. ‘우리는 너희를 죽이지 않는다 우리는 너희 군주가 너희를 학대했기 때문에 우리가 온 것이다. 남자는 보리를 거두고 여자는 길쌈을 하면서 가업을 돌보도록 하라. 만약 일본 병사들이 법을 어기면 극형에 처할 것이다.’ 그러자 곳곳에서 왜군의 편을 드는 자들이 급증했다. 왜군이 교묘한 선무공작을 편 것은 조선의 내부사정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왜란 당시 조선이 패퇴를 거듭하여 패망 일보 직전까지 몰렸던 일은 결코 우연성이 아니라, 조선의 사대부 지주 세력들이 당쟁에만 몰두하여 치부와 가렴주구만 일삼았던 결과라는 비판을 면할 길 없다.
 남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준다는 것,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덕목이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만큼 위대하고 숭고한 것은 없다. 그러기에 자신을 희생해도 좋을 만큼의 그 위대한 대상을 찾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내 몸과 마음과 정열을 쏟을 수 있는 가치나 목표를 찾아내어 정성을 다하여 심혈을 쏟아 부을 때 그 집념을 사명감으로 승화시켜 나감에 게으름이 끼어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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