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황야에 홀로 처량하고 쓸쓸하게 걸어가는 모습, 친구 없이 홀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친구를 만들고 싶어도 생기지 않는다면 자신이 살고 있는 모습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친구가 없는 사람은 필시 신의가 없었을 것이다.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았을 것이고 서로 믿고 의지할 상대가 되지 못했을 것이며, 자신의 허물이 있을 때 과감히 털어놓기를 주저했을 것이다. 남과의 교제에 있어 응분의 희생과 손해를 기쁜 마음으로 감수하지 않았을 것이고 고민을 함께 나눌 자세가 부족했을 것이다. 친구의 불행이 자신의 불행인 것처럼 슬며시 멀리 했을 수도 있다. 어떤 불편과 불행도 함께 하겠다는 자세가 부족했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친구간이라면 뜻을 같이하여 원대한 꿈을 향해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서로를 자극하고 격려하며 서로의 발전을 위한 노력에 힘이 되어주는데 부족했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친구의 발전을 자기의 일처럼 기뻐하고 친구의 불행에 발 벗고 나서지 못했을 것이며,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소진과 장의는 귀곡 선생에게서 동문수학한 친구간이다. 같이 공부할 때에는 소진이 장의의 재주를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소진이 먼저 출사하여 합종책(合縱策)으로 조 나라 왕에게 유세를 하여 이미 신임을 얻고 있었다. 소진은 옛 친구 장의가 생각나자 그에게 소임을 나눌 생각으로 슬며시 사람을 시켜 장의에게 충동질을 했다. ‘소진은 당신의 옛 친구요. 그 소진은 이제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당신이 언제까지고 이러라는 법은 없소. 그에게 부탁하여 어느 나라이든 추천해 달라 하시오’. 이에 장의는 즉시 조 나라의 수도 한단으로 가서 소진에게 면회를 청했다. 그러나 소진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미리 하인에게 만나는 절차도 밟지 못하게 하고 장의를 돌려보내지도 않고 잡아 두도록 했다. 이리하여 며칠이 지난 뒤에야 장의는 가까스로 소진을 면회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를 반갑게 맞을 줄 알았던 소진은 장의를 뜰아래 앉히고 하인들이 먹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진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너 정도의 사내가 그 정도 볼품없이 돼 있다는 것은 결국 네 마음씨가 나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라면 너를 왕에게 천거하여 좋은 자리를 줄 수도 있지만 너는 그렇게 해 줄만한 가치가 없는 사내다.’ 장의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의외의 대면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더 할 나위없는 모욕뿐이었다. 속으로 화가 난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모욕을 갚아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진이 일하고 있는 조 나라를 때려 부수어야 했다. ‘천하를 두루 살펴보아도 조 나라를 대려 부술 수 있는 나라는 진 나라 밖에 없다.’ 장의는 이렇게 생각하고 즉시 진 나라로 향했다. 이를 안 소진은 식객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저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이 미치지 못할 만큼 유능한 인재요. 행운을 얻어 내가 먼저 출세를 하였지만 지금 진 나라에 국정을 요리할 수 있는 것은 저 사내 밖에 없소. 그러나 저렇게 가난하기 때문에 출세할 실마리를 잡을 수 없을 게요. 그래서 나는 그를 분발시키기 위하여 일부러 불러서 모욕을 준 거요. 그래서 부탁인데 이제부터 저 사내의 뒤를 찾아가서 무사히 진 나라에 도착할 때 까지 일체의 치다꺼리를 해 주시오. 단 이 쪽의 의도를 조금도 눈치 채게 해서는 안 되오.’ 소진은 조 나라 왕에게 말하여 장의를 위한 일체의 비용을 얻어 식객에게 주어 그의 뒤를 따라가게 하였다. 시객은 소진이 시키는 대로 태연히 장의와 같은 여관에 머물러 가까워졌다. 그리고 계속하여 그에게 필요한 모든 비용을 부담해 주었다. 물론 장의로서는 그 비용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하여 장의는 염원한 대로 진 나라의 혜왕을 알현하는데 성공하였다. 혜왕은 장의의 헌책에 감복하여 고문으로 맞이했다. 그리고 장의가 제후 공략 계획을 세우는 데 참여케 했다. 소진의 식객은 여기까지 확인하자 장이에게 자기는 길을 떠나겠다고 했다. 이에 장의가 말했다. ‘나에게 오늘날이 있게 한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 덕분에 내가 잘 되었으니 이제부터 그 은혜에 보답하려 하는데 왜 급히 떠나려 합니까?’ ‘저는 단지 주인인 소진 어른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당신의 인물됨을 미리 안 것은 실은 소진 어른이었습니다. 소진 어른은 진 나라의 공격으로 합종이 깨지지 않을까 몹시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당신을 지목하고 또 당신을 오도록 공작을 하여 일부러 모욕을 가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소진 어른이 당신을 분발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후 저에게 뒤따라가서 당신의 편의를 봐 주게 한 것도 소진 어른의 계략이었습니다. 이제 당신은 진 나라에 등용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저의 책임은 끝난 것입니다’. 친구 소진의 심모원려(深謀遠慮)에 마음   속으로 항복할 수밖에 없는 장의였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조 나라에는 인상여(藺相如)라는 식객에게 나라의 중요한 일을 맡기면서 관직에 등용하여 국가 위기를 여러 차례에 걸쳐 잘 처리한 공으로 상경(上卿) 자리에 임명 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상경인 대장군 염파(廉頗)보다 윗자리에 앉혔다. 염파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조 나라의 대장군으로서 전쟁에 큰 공을 세웠다. 인상여는 입만 놀려 일을 꾸몄는데 지위는 그가 더 높아졌다. 더구나 인상여는 비천한 출신이다. 그런 사람 밑에서는 일할 수가 없다. 그 놈과 마주치면 그냥 놔두지 않겠다.’ 하고 별렀다. 인상여는 그 소문을 듣고 그와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했다. 조정에 나가는 것도 병을 구실로 삼갔다. 염파와의 서열관계가 표면화 하지 않기 위해서 이었다. 인상여가 외출할 때 먼 곳에서 염파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을 보자 옆길로 도망쳤다. 그러자 인상여의 가신들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들이 집을 버리고 당신에게 봉사하는 것은 높은 뜻을 흠모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은 저 염파와 같은 서열의 신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염파의 악담이 두려워서 숨어버리십니다. 장군이나 재상이라는 분들이 필부라도 꺼리는 일을 하시며 더구나 그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이 이상 참을 수 없으니 저희들로 하여금 이 일에서 손을 떼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인상여는 가신들에게 반문했다. ‘그대들은 진나라 왕과 염 장군 둘을 놓고 볼 때 어느 쪽이 더 두렵다고 생각하시오 ?’ ‘물론 진 나라 왕입니다’.
 ‘그런 진 나라 왕을 나는 궁에서 당당하게 대했소. 또한 진 나라 왕의 신하들을 마치 어린 아이처럼 취급하였소. 그런 내가 염 장군을 두려워하겠소, 나는 이렇게 생각하오. 저만큼 강대한 진 나라가 우리나라를 공격하지 않은 것은 염 장군과 내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오. 만일 두 사람이 다툰다면 어느 쪽인가 상처를 입게 되오. 내가 이렇게 처신하는 것은 개인의 다툼보다도 우선 국가의 문제가 중요한 때문이오. 내 말 알겠소 ?’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웃옷을 벗고 가시 회초리를 등에 지고 인상여를 찾아와서 사죄했다. ‘ 이 어리석은 자를 잘 보아주시기 바라오. 장군의 관대한 마음도 알지 못하고 이런 꼴이오. 두 사람은 이를 계기로 하여 다시 사이가 좋아졌다. 생사를 같이하면서 친구를 위해 목이 잘려 나가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문경지교(刎頸之交)가 맺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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