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프랑스 파리에 설립된 지 얼마 안 되는 자그마한 은행에 어떤 아가씨가 찾아왔다. 은행장을 만난 아가씨는 조심스럽게 은행장을 만나 구직을 청하였다. ‘글쎄요, 모처럼 오셨는데 미안합니다. 지금은 자리가 없으니 다음에 한 번 찾아 주시지요.’ 아가씨는 젊은 은행장에게 보기 좋게 거절을 당하자 고개를 푹 숙이고 나오다가 마침 마룻바닥에 핀 한 개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핀을 주워 옷자락에 닦아서 탁자 위에 얹어놓고 나가려고 했다. ‘아가씨 잠깐만 기다리세요.’ 은행장은 다급히 일어나 아가씨를 불렀다. 아가씨는 의아하게 여기며 몸을 돌려 은행장을 바라보았다. ‘방금 당신을 채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생각한 바 있어서 채용하기로 했습니다. 내일부터 출근하도록 하세요.’ 은행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에 아가씨는 붉어진 얼굴을 들며 말했다. ‘방금 전에 채용 계획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 ‘ 예, 방금 주운 그 핀을 아껴주듯 우리 은행 일을 해 주신다면 제 월급을 나누어드리더라도 채용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후 몇 해의 세월이 흘러 그 아가씨는 젊은 은행장의 부인이 되었고 작았던 은행은 크게 번창하여 큰 은행으로 발전했다. 아주 하찮은 일이라도 성실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말해주는 한 예화이다. 현대인에게 최대의 정신적 범죄는 자기 자신에게 불성실한 일일 것이다. 내가 나를 속이고 내가 맡은 일에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며 책임지지 않는 행동이라면 자신에게 불성실한 행위일 수밖에 없다. 나 자신을 학대하고 과소평가하고 나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끌려 다니는 사람 또한 모두 자신에게 불성실한 사람이다. 무성의 속에서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불성실에서 먼저 자신에게 성실한 삶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거기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모든 일이 참되고 거짓이 없어야 할 일이다. 정성이 곧 하늘의 길이자 사람의 길이다. 천지 만물은 참의 길로 되어 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난다. 자연은 절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천지자연을 본받아 참되게 살려는 노력, 그것이 사람이 가야 할 길이다.
 춘추시대에 편작(扁鵲)이라는 명의가 있었다. 진환공(晉桓公)을 알현한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군주는 피부에 병이 있습니다.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과인에게는 병이 없소.’ 편작이 물러가자 진환공은 곁에 있는 신하들에게 말했다. ‘의원이 이익을 탐해 병도 없는 사람을 두고 공을 세우려 한다.’ 닷새가 지난 뒤 편작은 다시 진환공을 배알했다. ‘군주의 병이 혈맥에 있습니다.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날로 더욱 병세가 악화될 것입니다’. 진환공에 대답했다. ‘과인에게는 병이 없소.’ 편작이 물러가지 진환공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닷새 뒤 편작이 다시 찾아왔다. ‘군주의 병이 장과 위 사이에 있습니다.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곧 위중해질 것입니다.’ 진환공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편작이 물러가자 진환공은 짜증이 났다. 닷새 뒤 편작이 또 배알했으니 이번에는 바라보기만 하고 물러나왔다. 진환공은 사람을 보내 그 연유를 묻자 편작은 이렇게 대답했다. ‘병이 피부에 있을 때에는 탕약과 고약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혈맥에 있을 때에는 쇠침이나 돌 침을 써야 합니다. 병이 장과 위에 있을 때에는 약주(藥酒)로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이 골수에 있을 때에는 사람의 생명을 관장하는 전설속의 신인인 사명(司命)도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병이 골수에 들어가 잇습니다.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닷새 뒤 진환공이 병이 들었다. 사람을 보내 편작을 불러들이려 했으나 그는 이미 자취를 감춰버린 뒤였다. 얼마 후 진환공은 그 병으로 죽었다.

 성인이 병의 징후를 예견하듯이 명의를 시켜 일찍 치료하면 몸도 고치고 병도 치료할 수 있다. 사람이 우려하는 것은 질병이 많다는 것이고 의원이 우려하는 것은 치료방법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질병에는 몸에서가 아닌 정신에서 여섯 가지 불치의 병이 있다. 교만하고 방자하여 병의 원인을 무시해 버리는 것이 첫 번째 불치병이다. 몸을 가벼이 여기고 재물을 아껴 몸을 치료하지 않는 것이 그 두 번째 불치병이다. 의식(衣食)을 적절히 하지 않는 것이 세 번째 불치병이다. 음과 양이 병존해 오장의 기가 불안정한 것이 네 번째 불치병이다.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몸이 약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그 다섯 번째 불치병이다. 무당의 말을 믿고 의원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 그 여섯 번 째 불치병이다. 이 여섯 가지 불치병 가운데 어느 하나만 있어도 치료하기 어렵다.
 진시황은 초나라를 치고 싶은데 누구를 보낼까 하고 생각하던 중 젊고 혈기 왕성한 이신(李信)이라는 장수가 자청해 나서며 ‘제게 20만 병력을 주시면 초나라를 치겠습니다’. 하니 진시황은 그 기개가 가상하여 즉시 20만 군사를 딸려 초나라로 쳐들어갔으나, 처음에는 싸움에 이기는 듯 했으나 매복에 걸려 싸움에서 크게 패퇴하고 말았다. 나이가 들어 은퇴한 왕전에게 얼마의 군사가 필요하냐고 묻자 60만 대군이 필요하다는 답이 나오자 신통치 않게 여기면서도 달리 대안도 없어서 그를 총수로 하여 60만 병사를 거느리고 전투에 나가게 했다. 진시황은 신중을 기하여 백전의 명장 왕전(王翦)을 총수로 선정한 것이다. 왕전은 의심 많은 진시황의 사람됨을 알기에 출전 이후 수차례에 걸쳐 시황에게 전쟁에 이길 경우 최상급의 토지와 저택을 하사해 줄 것을 요청하고 또 요청했다. 진 나라의 군을 통째 거느리고 있는 자신을 못 미더워 할 황제를 안심시키기 위함이다. ‘안심하고 출전하시오. 뒷일은 나에게 맡기시오’. 라는 답을 듣고도 왕전은 ‘아닙니다. 대왕께 봉사하는 장군은 지금껏 그 공의 대가로 봉후의 영예를 받은 일이 없습니다. 저는 대왕의 은고(恩顧)를 받고 있을 때에 하사를 받아서 자손에게 넘겨주고 싶습니다.’ 하면서 미리 졸라댔다. 초나라는 장군 왕전이 대군을 거느리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총력을 기울여 대항하여 공격을 가했으나 왕전은 수비만 할 뿐 전혀 응전을 하지 않았다. 초나라 군이 자주 유인작전을 쓰더라도 진군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전군을 휴식시키면서 충분한 식량을 공급하면서 병사들과 식사를 같이하며 그들의 사기를 북돋우었다. ‘병사들은 진중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가 ?’ 하고 전 군의 동태를 묻자 ‘운동경기에 열중하고 있습니다’라는 답이다. 왕전은 이 보고를 듣고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우리 군사의 태세는 만전을 기하고 있다.’ 왕전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초나라 군은 상대가 움직이려 하지 않자 동쪽으로 군사를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왕전은 그제 서야 때가 왔다는 듯이 전군을 풀어 추격전을 전개하여 손쉽게 초군을 대패시킬 수 있었다. 그는 기세를 몰아 초의 장수 항연(項燕)을 사로잡고 초나라를 병합하는데 성공하였다. 왕전이 무슨 신묘한 전략을 구사한 것은 없으나 철저히 신중했고 군의 운용에 성실했다. 이에 비해 초군은 진군이 그저 진지를 구축한 채 수세만 취하는데 방심하여 진군이 언제라도 공세로 전환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 소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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