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조선 시대에 서울에 살던 노 국청이라는 사람이 급히 지방으로 내려갈 형편이 되어 집을 팔아야 했다. 그가 출타한 사이에 현 덕수 라는 사람이 집을 사겠다고 나서자 노 국청의 아내는 은 열두 근을 받고 그에게 집을 팔았다. 노 국청이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매매 이야기를 듣고는 집값으로 받은 은에서 세 근을 덜어 가지고 현 덕수를 찾아갔다. ‘내가 지난 날 그 집을 살 때에 아홉 근 밖에 주지 않았소이다. 더구나 몇 년 동안이나 아무 것도 수리한 것도 없이 살고 나서 팔면서 세 근이나 더 받는 것은 경우가 아니라 생각하오. 그래서 은 세 근을 돌려주러 왔소이다.’ 노 국청은 이렇게 말하면서 은 세 근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현 덕수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어찌 그대 혼자만 경우를 찾고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합니까. 열두 근은 요즘 시세로 합당한 금액이오. 그래서 그리 대금을 치룬 것이니 돌려주려는 생각은 아예 마시오’. ‘나는 평생에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오. 그런데 어찌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부당한 이익을 챙긴단 말이오. 만일 그대가 이 세 근을 받지 않겠다고 거절한다면 열두 근 다 돌려줄 테니 매매는 없었던 것으로 합시다’. 노 국청이 발끈해서 소리치는 바람에 현 덕수는 할 수 없이 그 돈을 받았다. 그리고 노 국청이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현 덕수는 어찌 노 국청 보다 못한 사람이 될까보냐 하고 은 세 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버렸다. 부동산 투기에 눈이 벌개 있는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춘추시대 중엽 진 헌공(晉 獻公)이 우(虞) 나라로부터 괵(虢) 나라를 치고자 했다. 그러자 대부 순식(荀息)이 이렇게 건의했다. ‘군주가 수극(垂棘)의 옥과 글(屈) 땅에서 생산되는 명마를 우공에게 뇌물로 주면 반드시 우리에게 길을 빌려 줄 것입니다’. 진 헌공이 물었다. ‘수극의 옥은 선왕의 보물이고 굴 땅의 명마는 과인의 준마이다. 만일 내가 보낸 선물을 받기만 하고 길을 빌려주지 않으면 어찌할 것인가 ?’ 저들이 길을 비려주지 않으려 한다면 선물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 선물을 받고 길을 빌려주면 이는 마치 안에 있는 창고에서 보물을 꺼내 잠시 바깥 창고에 넣어두고 안에 있는 마구간에서 준마를 끌어내어 잠시 밖에 있는 마구간에 옮겨두는 것과 같습니다. 군주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리 하시오.‘ 곧 순식을 시켜 수극의 옥과 굴 땅의 명마를 우공에게 선물로 바치고 길을 빌려달라고 했다. 우공은 재물에 욕심이 많았다. 옥과 준마를 가지고 tlb은 마음에 이를 허락하려고 하자 궁지기(宮之奇)가 간했다.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괵의 존재는 마치 수레에 덧방나무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덧방나무는 수레에 의존하고 수레 또한 덧방나무에 의지합니다. 우와 괵의 형세는 바로 이렇습니다. 지금 만일 진 나라에 길을 빌려주면 괵은 마침내 망하고 우는 저녁에 뒤따라 망하고 말 것입니다. 이는 불가하니 결코 요구를 들어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공은 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드디어 길을 빌리자 순식이 괵 나라를 멸하고 돌아온 지 3년 만에 군사를 일으켜 우 나라까지 정벌했다. 순식이 벽옥과 준마를 가지고 가 진 헌공에게 바쳤다. 진 헌공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아, 옥은 그대로구나. 준마도 예전과 다름이 없도다’.

 정치가 흥하는 것은 민심을 따르기 때문이고 정치가 쇠퇴해 지는 것은 민심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백성이 우로(憂勞)를 싫어하니 그들을 일락(佚樂)하게 만들고 백성이 빈천(貧賤)을 싫어하니 그들을 부귀하게 만들고 백성이 위추(危墜)를 싫어하니 그들을 존안(存案)하게 만들고 백성이 멸절(滅絶)을 싫어하니 그들을 생육하게 할 필요가 있다. 형벌로는 백성들의 뜻을 두렵게 만들기에 부족하고 살육은 백성들의 마음을 복종하게 하기 어렵다. 형벌이 빈번하게 많을지라도 백성들이 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됨은 군주의 명이 시행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살육할지라도 백성들이 이에 복종하지 않으면 윗사람의 자리가 위태롭게 된다. 백성이 바라는 일락과 부귀, 존안, 생육 등을 추구할 때 먼 곳의 사람도 절로 다가와 친해지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우로와 빈천 위추, 멸절의 악행을 행하면 가까운 곳의 사람도 배반하게 된다. 그래서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임을 아는 것이 통치의 요지이다. 군주시대의 정치 철학이지만 오늘이라 해서 근원적으로 다를 것은 없어 보인다.
 적을 잘 다루는 장수는 적을 유인한다. 적은 반드시 그 계략에 말려들게 마련이다. 무언가 이익을 주는 척 하면 적은 예외 없이 이를 취하려 든다. 미끼를 던져 상대를 제압하는 전술을 말한다. 미끼가 크면 클수록 적장을 사로잡는 식의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커다란 미끼로 상대방을 유인해야 적을 온전하게 제암할 수 있다.
 임공자(任公子)라는 사람이 커다란 낚싯바늘과 굵은 낚싯줄을 만들었다. 이어 50마리의 거세한 쇠고기를 미끼로 삼아 회계산(會稽山)에 앉아 동해를 향해 낚싯줄을 드리웠다. 날마다 낚시를 했으나 1년이 지나도록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다가, 어느 날 마침내 대어가 물었다. 거대한 낚싯바늘을 글고 엄청나게 큰 쇠고기 미끼를 입에 문 채로 바다 밑바닥 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바다 위로 솟구쳐 올라 등지느러미를 마구 휘둘렀다. 흰 파도가 산과 같고 바닷물이 온통 뒤집힐 듯 요동쳤다. 신음소리가 마치 귀신의 울부짖는 소리와 같아 천리 밖에 있는 사람들 까지 놀라 두려움에 덜었다. 임공자는 곧 물고기를 낚아 올린 뒤 잘게 썰어 포를 만들었다. 절강 동쪽에서 창오 북쪽에 이르기 까지 그 곳에 사는 백성들 중 배불리 먹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가느다란 낚싯줄을 쳐들고 작은 도랑을 좇아 붕어나 잔챙이를 낚으려는 자들은 이런 대어를 낚을 수 없다. 뜻이 작으면 그릇이 작고 그릇이 작으면 담는 것도 작다. 나라가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뜻과 꿈이 작은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안일하게 지내는 사람에게는 크고 높은 뜻이 생길 수 없다. 큰 뜻을 가지고 큰 사업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부단한 연마와 수련이 필요하다. 눈은 먼 곳에 두되 가까이에 있는 일과 사람에게 충실하고 보면 장차 드넓은 천지를 만나게 될 것이다.
 또 사람에게는 은혜나 의리 등의 애정으로 맺어진 관계에도 이해관계가 개입되면 끊어질 수 있고, 서로의 관계가 멀어질 때 그 보복을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 두려움으로 인해 쉽게 상대를 멀리하지 못하는 비열성도 존재할 수 있다.
 상대의 날개를 접게 하려면 반드시 상대의 날개를 펴게 해 주어야 한다. 상대를 약하게 만들려고 하면 반드시 상대를 강하게 해 주어야 한다. 상대를 망하게 하려면 먼저 그 상대를 흥하게 해 주어야 한다. 상대로부터 빼앗고자 한다면 먼저 상대에게 주어야 한다. 나라를 다스리거나 기업을 경영할 때에도 이 원리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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