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우리들이 곧잘 쓰는, 특히 어릴 때 잘 쓰는 말이 있다. ‘너를 하늘땅(우주)만큼 사랑 한다’거나 하는 말인데 하늘과 땅을 합한 크기나 우주의 크기라면 무한대라는 말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적 논리적, 수학적 사고에서는 반드시 필요할 때 한해서 ‘무한대’ 라는 말을 쓰기는 하나 그 무한대란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인간생활에서는 모든 것을 논리화, 과학화하여 학문의 체계 속으로 포함시키려 하는 데, 이 논리가 ‘계량법(measurement)'이다. 물리적으로는 길이, 부피, 무게라는 세 가지 정도의 측정 기준이 있지만 ’기분 좋음, 행복함, 맛 좋음, 보기 좋음, 불행함, 슬픔, 분함, 불쾌함‘ 같은 일을 만난다면 그 정도를 어찌 계량하며 표현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선 과학(science 科學)이라는 말도 벼 화(禾)와 말 두(斗)자의 합성으로 된 ’과(科)‘자는 수확한 벼를 말로 되(재)어 본다는 계량(計量)의 개념을 출발점으로 하는 논리적 사고의 학문으로의 과학( science= know )이란 앎을 추구하는 학문으로 skill(기술), conscience(양심) 등의 계열이다. 그리고 계량한다는 의미의 재다(measure)에서 미터(meter), 겸손한(modest 자로 재어 정도껏 행동한다는 ’겸손‘), 모델(model), 수정하다(modify), 달(moon or month 한 ’달‘이라는 시간의 길이를 잰 단위), 기준(barometer) 등에서 보여주는 계량이라는 개념에 기초한 어군이다. 그리고 행복감, 불쾌함 같은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추상적인 개념에도 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계량화 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앞으로는 이런 부문에 대한 연구와 노력은 계속 될 것이다.

 세계 각국의 경제적 국력을 평가해 보는 기준으로 흔히 외래어 그대로 GNP라고도 쓰는 국민총생산이 있다. 참으로 방대하고도 어려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통계자료 중 하나다. 또 국적을 불문한 국내의 경제활동으로 한정할 때 국내 총 생산(Gross Domestic Product)이라 부르기도 한다.
 국민총생산이란 일 년 이라는 기간 동안 전 국민이 경재활동에 참여하여 이루어 낸 총 생산 활동의 결과(완제품 재화 및 용역)를 계량화하여 시장 가격으로 판매한 가치를 말한다. 이 국민총생산이라는 결과를 얻기 위하여 알기 쉽게 벼 40 kg를 생산하여 50,000원을 얻었다면 제 비용을 공제한 잔여분이 국민소득으로 되겠지만, 기업체의 활동에는 경우에 따라 손익계산서나 재무회계 장부 등을 통하여 그 소득이 분배되거나 지출되는 항목을 포착해야 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분배 소득에는 임금, 이자수입, 임대수입, 영업 이윤, 감가상각비 등 항목을 추려서 합산할 때 소득이 된다. 각 산업 또는 경제활동의 특성에 따라 접근 방식을 달리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생산 활동에서 파악하는 ‘생산’ 국민소득= ‘분배’ 국민소득=‘지출’ 국민소득 이라는 관계가 이루어진다. 이미 창출된 소득은 또한 바람직한 방향으로 분배될 때 건강한 국민경제를 이끌어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정부의 역할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적극적으로 완화하기 위한 유산자에 대한 누진과세와 빈곤선 이하 생활자에 대한 보조, 경제활동의 활성화 등이 그것이 될 것이다. 모든 활동력 있는 국민이라면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화폐의 구매력만으로 국민소득을 평가해서는 피상적인 수박 겉핥기 일 수가 있다. 필자는 인도(India)에서 상당 기간 연수유학 한 일이 있다. 외세 침략 이전의 인도는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인도 모두가 하나로 된 나라였기에 같은 뿌리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행복지수가 세계 어느 나라 보다 높다는 것이다.
 돈이 많고, 기후가 좋고, 전쟁이 없고, 자원이 풍부하거나 이런 등등의 유리한 요건을 갖춘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이들 나라에는 그 어떤 것도 행복으로 이끌어 줄만한 요건이 없는데도 늘 세계 최상위의 행복지수를 자랑한다. 그들 또한 빈부격차가 크지만 남들이 돈 벌어 부자 되는 데 대한 부러움이나 시새움을 내보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주거를 위한 주택이라는 것이 달랑 기둥 네 개,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막아줄 수 있는 지붕뿐인 집에서도 그들의 행복감은 끝이 없어 보였다.
 인도 또한 우리나라처럼 길고 긴 해안선이 있고 수많은 어민들이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데, 이들은 대개 허리만 두를 정도의 팬티 비슷한 단벌 옷 만으로 고기를 잡을 때나, 잠을 잘 때, 집에 돌아와 다른 일을 할 때도 그 옷 한 벌로 해질 때 까지 입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국민소득이라는 주제와는 아주 벗어난 얘기 같지만, 화폐 단위로 계량하는 국민소득과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는 행복감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우리들이 입는 일상적인 의복 비, 겨울의 난방비, 여름의 냉방 비, 휴대폰이나 자가용 사용 비용, 이런 등등의 비용은 그들에겐 생소하기만 할 뿐 없어도 좋은 지출 항목들이다.
 한국전쟁 전 우리의 국민소득이 세계 최하위 수준이었지만 그 때 행복지수를 계측했다면 훨씬 높았을 것이다. 국민소득의 크기대로 행복지수가 자란다면 백배가 넘어야 할 것이지만 실상 우리의 행복지수는 거꾸로 자라기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움만 더 할 뿐이다. 외형으로 보여주는 국제간의 국민소득 비교가 어떤 면에서는 그 의미를 잃게 된다는 말이 된다.

 국민소득이 자란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정신문화 또한 자라야 할 일이다. 국민건강을 해칠 것이 빤한 유해 음식물을 만들거나, 부실공사를 예사로 하거나, 겉만 번지르르한 제품을 만들어 팔거나, 큰 이익을 남기려고 유해 약품 또는 물질을 외국에서 수입하여 아무렇지도 않은 듯 유통시키는 행위와 같이 이웃을 불안하게하고  이웃을 해치는 행위로는 아무리 국민소득이 높아도 국민의 불안만 높아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원한과 원망만 쌓여갈 뿐이다.
 어떤 사람이 생강 한 묶음을 천원에 팔았다. 생강의 시장 가격을 몰라 궁금하던 차에 시장에 들러 값을 알아보니 한 묶음에 육천 원이라 한다. 그 파는 사람을 보니 자기 자신에게서 생강을 사 갔던 사람이고 생강 묶음도 자기가 묶은 그 대로다. 울컥 화가 치민 그는 생강 장사에게 ‘천원에 사서 육천 원에 파는 이 도둑놈아’ 하고 시비를 걸고 나서자 생강장사의 대답 ‘그게 바로 장사랍니다’이다.
 소득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새로운 부가가치의 창조가 모이고 쌓였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지, 저 주머니에 있는 것을 이 주머니로 옮겨놓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안정감과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존재가 되어주는 정신적 성장이 뒤따라야 한다는 말이다. 단결에 의해 작은 나라는 번성하고 불화에 의해 큰 나라가 망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활발한 경제활동에 대한 열기가 자꾸만 식어가는 느낌이 들고 우리 자신들의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고 불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인 것 같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달팽이가 껍질 속으로 들어가듯 가만히 우리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건강하고 활기찬 내일을 위한 숙면이 필요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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