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심혈을 기울인 일들이 노력을 기울인 보람도 없이 헛되게 되면 흔히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본래 도루묵은 우리나라 근해의 수심 200-400m정도의 모래가 섞인 뻘 바닥에 살고 있는 농어목 도루묵과의 물고기이다. 조선의 14대 임금이었던 선조(1552~1608)가 임진왜란 때 피난가시면서 먹을 것이 궁하자 한 어부가 '묵'이라는 물고기를 바쳤다. 무척 시장했던 선조 임금은 가릴 것도 없이 먹어보고는 너무 맛이 좋아서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끝나 궁궐에 돌아온 선조임금은 문득 피난지에서 맛보았던 '은어(銀魚)'가 생각나서 다시 먹어보았더니 옛 피난지에서의 감칠 맛이 없었다. 그래서 선조 임금은 "도로 묵이라고 불러라."고 말했다. '도로 묵'이 나중에 '도루묵' 으로 바뀌어 '노력을 기울인 보람도 없이 헛되게 되는 일'을 '도루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화가 되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위나라 왕의 총애를 받던 미자가(彌子珂)라는 소년이 있었다. 위나라 법에 허가 없이 왕의 수레를 타는 자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다리를 자르게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밤 미자가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게 되었다. 급한 나머지 미자가는 왕의 허락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둘러대면서 왕의 수레를 끌고 궁전을 빠져나가 어머니의 병을 간호했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이 죄를 묻기는커녕 오히려 기특하게 생각하여 칭찬했다, ‘얼마나 효성이 깊은가, 다리가 잘릴 것도 생각 않고 짐의 수레를 썼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왕과 함께 과수원에 간 미자가가 복숭아를 따서 먹어보니 그 맛이 기막히게 좋아서 먹다 말고 그것을 왕에게 바쳤다. 그러자 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다 먹지 않고 내게 주다니 ....’ 그 후 세월이 흘러 어느덧 아름답던 미자가의 용색이 미워지고 뼈마디가 굵어지면서 귀여움이 사라지자 왕의 총애도 식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가가 사소한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다. 그러자 왕이 꾸짖으며 말했다. ‘저놈은 감히 왕을 속이고 나의 수레를 훔쳐 탄 놈이다. 그리고 먹다 남은 과일을 짐에게 준 불충한 놈이다..’ 사실 미자가의 행동은 변함이 없는데 전에는 칭찬을 듣고 나중에는 죄가 된 것이다. 위나라 왕의 애정이 변했을 뿐이다. 상대에게 애정을 느낄 때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 미운 것도 예뻐 보였는데 애정이 식어지면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해도 그것이 좋게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의 의견을 타진할 때 그 상대가 어떤 마음의 상태인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사실 흑인 노예들에게 유럽인들은 주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은 그 어디에도 없으면서도 물건을 사고팔듯 주인 행세를 했고 도루묵의 맛은 인진왜란 전이나 후에나 변함이 없었건만 입맛이 변한 왕의 마음에서 그 이름 ‘도루묵’을 얻게 된 것이고, 위나라 미자가 또한 왕의 마음 여하에 따라 곱게도 밉게도 보인 것뿐이다. 인간의 마음, 거기에는 신과 악마의 싸움이 그칠 새 없는 싸움터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동일 인물이지만 그의 이중생활을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악의 양면성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내 마음이면서 내 마음대로 지배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 선을 원하면서도 선을 행하지 못하고 악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악을 향하게 되는 나약한 인간상, 이것이 인간 본래의 모습에 가깝다. 마음이 곧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주인임을 말해 준다. 주인이나 왕이 되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그 한 예가 될 수 있다. 보통사람은 시간을 소비하는데 마음을 쓰고, 재주 있는 사람은 시간을 이용하는데 마음을 쓰게 되어 있다. 인생이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간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무엇보다 소중한 마음을 갈고 닦는 방법으로는 굳센 의지력을 기를 일이고, 이 굳셈이 곧고 바름에 근거해야 할 일이며, 착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길러야 할 것이며, 거기다 옹고집 아닌 열린 마음과 일관성을 잃지 않는 집중력을 기르는 일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주인이거나 왕이 되기를 원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대로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주인이나 왕이 아니더라도 왕과 다름없는 의지와 권능으로 통제해야하고 끝내 이기는 싸움으로 이끌어야 할 할 싸움터가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싸움터는 남들에게 들킬 필요조차 없는 자신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