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15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는 저마다 신항로 개척에 나서 서양은 아프리카를 점령하여 식민지 통치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서양의 강대국들은 광적으로 아프리카를 침략해 들어갔고 인류 역사상 가장 가혹한 노예무역에 몰두했다. 사람이 사람을 팔아먹는 혈육무역은 거의 4세기에 걸쳐 성행했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는 장기간에 걸쳐 빈곤에 시달리면서 비참한 환경에서 살아야 했다. 노예무역을 맨 먼저 시작한 나라는 포르투갈로 1502년 아프리카 흑인들을 카리브 해로 이동시켰고 이어 스페인 네델란드,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이 모두 이 악랄한 계략에 가담했다. 이들은 효과적으로 노예무역을 하기 위해 노예무역 회사를 만들고 군대를 파견하는 등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그 규모는 날로 커져만 갔다. 그들은 먼저 유럽에서 값싼 물건들과 무기들을 배에 싣고 출발하여 이 물건들과 흑인 노예들을 바꾸어 미국으로 가 팔아넘겼다. 그리고는 그 곳의 특산물인 담배, 면화 등으로 바꾸어 유럽으로 가는 것이다. 배 한 척이 도착하면 흑인 노예는 세 번에 걸쳐 팔리는데 그 이윤이 몇 배, 몇 십 배, 혹은 몇 백 배로 뛰었다. 처음에는 흑인 촌을 습격해서 노약자나 병약자들을 죽이고 건강한 청년들을 강제로 끌고 오는 방식이었으나 나중에는 마을의 수장에게 값 싼 물건이나 무기를 팔아 각 부락이 싸우도록 부추겼고, 그 싸움에서 생겨난 포로들을 노예로 끌고 갔다. 수갑과 족쇄를 찬 흑인 노예들을 항구로 데리고 오면 시장에서 노예 매매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매질에 견디지 못한 수많은 노예들이 사망했다. 매질에 얼마나 견디는지를 보고 흑인 노예의 건강상태를 확인해 가격을 매겼다. 한 번 때려서 넘어지면 싼 값에 팔렸고, 열 번 때려도 쓰러지지 않으면 높은 값에 팔렸다. 매매가 이루어지면 인두로 노예의 팔이나 가슴에 노예무역 회사의 낙인을 찍었다. 흑인 노예들을 배에 태울 때에도 한 번에 많은 수를 태우기 위해 선실에 가득 몰아세웠고 비좁은 공간에서 노예들은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실의 공기는 탁했고 음식도 썩거나 상해 수많은 사람들이 굶거나 여러 가지 질병으로 사망하였으며, 노예가 숨질 것 같은 위급한 상황에는 바다로 던져버렸다. 사망률이 높을 때에는 삼분의 일 또는 절반이 바다로 던져졌다. 배가 바다를 지날 때면 시체를 먹기 위해 상어 떼가 몰려들었다. 이러한 피비린내 나는 잔혹한 노예무역을 기반으로 유럽인들은 거대한 부를 쌓았다. 노예무역이 강대국에게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시켰으나 아프리카는 오랫동안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우리들은 심혈을 기울인 일들이 노력을 기울인 보람도 없이 헛되게 되면 흔히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본래 도루묵은 우리나라 근해의 수심 200-400m정도의 모래가 섞인 뻘 바닥에 살고 있는 농어목 도루묵과의 물고기이다. 조선의 14대 임금이었던 선조(1552~1608)가 임진왜란 때 피난가시면서 먹을 것이 궁하자 한 어부가 '묵'이라는 물고기를 바쳤다. 무척 시장했던 선조 임금은 가릴 것도 없이 먹어보고는 너무 맛이 좋아서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끝나 궁궐에 돌아온 선조임금은 문득 피난지에서 맛보았던 '은어(銀魚)'가 생각나서 다시 먹어보았더니 옛 피난지에서의 감칠 맛이 없었다. 그래서 선조 임금은 "도로 묵이라고 불러라."고 말했다. '도로 묵'이 나중에 '도루묵' 으로 바뀌어 '노력을 기울인 보람도 없이 헛되게 되는 일'을 '도루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화가 되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위나라 왕의 총애를 받던 미자가(彌子珂)라는 소년이 있었다. 위나라 법에 허가 없이 왕의 수레를 타는 자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다리를 자르게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밤 미자가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게 되었다. 급한 나머지 미자가는 왕의 허락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둘러대면서 왕의 수레를 끌고 궁전을 빠져나가 어머니의 병을 간호했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이 죄를 묻기는커녕 오히려 기특하게 생각하여 칭찬했다, ‘얼마나 효성이 깊은가, 다리가 잘릴 것도 생각 않고 짐의 수레를 썼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왕과 함께 과수원에 간 미자가가 복숭아를 따서 먹어보니 그 맛이 기막히게 좋아서 먹다 말고 그것을 왕에게 바쳤다. 그러자 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다 먹지 않고 내게 주다니 ....’ 그 후 세월이 흘러 어느덧 아름답던 미자가의 용색이 미워지고 뼈마디가 굵어지면서 귀여움이 사라지자 왕의 총애도 식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가가 사소한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다. 그러자 왕이 꾸짖으며 말했다. ‘저놈은 감히 왕을 속이고 나의 수레를 훔쳐 탄 놈이다. 그리고 먹다 남은 과일을 짐에게 준 불충한 놈이다..’ 사실 미자가의 행동은 변함이 없는데 전에는 칭찬을 듣고 나중에는 죄가 된 것이다. 위나라 왕의 애정이 변했을 뿐이다. 상대에게 애정을 느낄 때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 미운 것도 예뻐 보였는데 애정이 식어지면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해도 그것이 좋게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의 의견을 타진할 때 그 상대가 어떤 마음의 상태인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사실 흑인 노예들에게 유럽인들은 주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은 그 어디에도 없으면서도 물건을 사고팔듯 주인 행세를 했고 도루묵의 맛은 인진왜란 전이나 후에나 변함이 없었건만 입맛이 변한 왕의 마음에서 그 이름 ‘도루묵’을 얻게 된 것이고, 위나라 미자가 또한 왕의 마음 여하에 따라 곱게도 밉게도 보인 것뿐이다. 인간의 마음, 거기에는 신과 악마의 싸움이 그칠 새 없는 싸움터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는 동일 인물이지만 그의 이중생활을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악의 양면성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내 마음이면서 내 마음대로 지배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 선을 원하면서도 선을 행하지 못하고 악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악을 향하게 되는 나약한 인간상, 이것이 인간 본래의 모습에 가깝다. 마음이 곧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주인임을 말해 준다. 주인이나 왕이 되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그 한 예가 될 수 있다. 보통사람은 시간을 소비하는데 마음을 쓰고, 재주 있는 사람은 시간을 이용하는데 마음을 쓰게 되어 있다. 인생이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간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무엇보다 소중한 마음을 갈고 닦는 방법으로는 굳센 의지력을 기를 일이고, 이 굳셈이 곧고 바름에 근거해야 할 일이며, 착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길러야 할 것이며, 거기다 옹고집 아닌 열린 마음과 일관성을 잃지 않는 집중력을 기르는 일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주인이거나 왕이 되기를 원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대로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주인이나 왕이 아니더라도 왕과 다름없는 의지와 권능으로 통제해야하고 끝내 이기는 싸움으로 이끌어야 할 할 싸움터가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싸움터는 남들에게 들킬 필요조차 없는 자신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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