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후속 대책 내용 ‘주시’

 농민들은 지난 18일 발표한 정부의 쌀 관세화 선언으로 올 가을 수매문제와 가격폭락 발생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다들 뿔난 표정이 역력했다. 어두운 낯빛은 ‘멘붕’을 짐작하게 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쌀시장 전면개방’이라는 안개 속을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답답함과 걱정스러움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쌀 관세화 선언 후 농업인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벼농사를 짓는 대부분의 농민들은 “정부가 내놓을 대책도 별반 새로울 게 없을 것 같다”고 기대치를 낮추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몇 십년 농사를 지어온 고성읍 a씨는 “이렇게 서둘러 쌀 관세화를 선언한 저의가 궁금하다”며 “농업인과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부족한 것은 말 없고 표현하지 않는 대다수 농업인들을 무시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거류면 b씨는“3만3000㎡(1만여평)에서 보통 3000만원가량 조수익을 올리면 생산비를 빼고 1500만원 정도 떨어지는데 대학생 1년 학비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벼농사 포기하고 날품을 파는 게 더 낫겠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도는 것을 정부가 아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이렇듯 농업인들은 당장 부닥칠 현실적인 문제와 불만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대가면 c씨는 “재고물량에다 올해 최소시장접근(MMA)물량 쌀을 수입해야 하고 그기에다 햇벼까지 나오면 쌀값 폭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며 “30년째 볏짚을 논에 돌려주는 ‘생고시용(生藁施用)’을 실천하며 고품질 쌀생산에 전력했던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 두렵다”고 걱정했다.
 또 “정부가 말한 대로 불가피한 선택이라면 쌀 생산농가들이 신뢰할 수 있는 대책들을 내놓고 농업인들을 설득해야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농민들은 쌀 관세화에 대한 속내를 하나둘 털어놓기 시작 했다.
 직접 벼농사를 짓는데 조수익이 연 3000만원이 안 된다는 a씨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밝힌 대로 자유무역협정(FT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TP)에서 쌀을 제외하고 관세율을 500%로 한다는 분명한 원칙을 농업인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기회에 소비자가 원하는 안전한 쌀생산과 미질향상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때’라는 주장도 나왔다.
 동해면에 거주하는 a씨는 “외국쌀과 직접 경쟁하는 시대를 맞아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밥맛 좋은 쌀, 친환경쌀, 건강기능성 쌀 등 품질 고급화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면서“고성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생명환경쌀도 아직 홍보가 부족하다“며”행정의 적극적인 홍보와 대안 마련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벌써부터 올가을 추곡수매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삼산면에 거주하는 c씨는 “올 들어 역계절진폭이 발생하면서 농가들은 지난해 가을 수매가격을 고집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게 됐다”며 “수매가를 높일 수 있게 특단의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농업인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해 하면서 “정부가 관세화 외에 대책이 없다는데 어떡하겠느냐”고 반문하며 “이제는 정부가 최대한 높은 관세율을 지켜 낼 수 있기를 지켜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쌀농사에 대한 농업인들의 의지는 확고했다. 아무리 국내외 여건이 어렵더라도 쌀농사만큼은 포기해서 안 된다는 게 들녘에서 만난 농업인들의 한결같은 주장이었다.
 상리면 a 씨는 “만약 쌀농사를 짓는 농가들이 이를 포기하고 대체작목을 선택할 경우 되풀이되는 감자·양파 등 채소 값 폭락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고성농협 최판진 조합장은 “농가소득 보전을 통해 안정적으로 영농에 종사할 수 있게 고정직불금을 대폭 인상하고 쌀이 남아돌 수밖에 없는 만큼 생산을 제한하는 정책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벼락맞은 심정’인 농업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정부의 2015년부터 쌀 관세화 선언은 여러 가능성을 배제한 쉬운 선택으로 마지막 카드를 사용했다는 지적과 함께 고율관세 유지, FTA·TPP에서 쌀 양허제외를 법률로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회 박완주 의원, 김승남 의원 공동 주최로 지난 2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쌀 관세화 문제 해법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다.
 김 의원은 “정부는 당초 25일 쯤 발표 예정이었으나 지난 18일 쌀 관세화를 기습 선언했다”며 “사회적 합의기구를 반드시 만들었어야 했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중앙대학교 산업경제학과 윤석원 교수도 다양한 카드 중 맨 마지막 카드를 제시해 버렸다고 말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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