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비슷한 시기에 위(衛) 나라에 위장공의 장자 위환공에 제위에 있을 때이다. 환공의 이복 아우인 주우(州吁)가 대부 석작(石爵)의 아들 석호(石厚)와 짜고 못된 짓을 꾸미고 있었다. 그 때 천자인 주(周)나라 평왕이 죽고 환왕이 즉위했다. 위환공은 선왕의 붕어를 조문하고 신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주(周) 나라로 가야 했다. 이튿날 주우는 서문 밖에 주공을 전송하는 척 하면서 장사 5백 명을 매복시킨 후 위환공의 행차를 기다렸다. 위환공이 많은 대신들을 거느리고 서문 밖으로 나오자 주우는 주연상을 차려놓고 절을 하며 술을 따라 올렸다. ‘주공(主公)께서 먼 길을 가시는데 아우가 박주(薄酒)를 올립니다.’주우가 두 손으로 공손히 술을 다라 올렸다. ‘동생이 길 떠나는 형을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하니 형제의 정이 더욱 두텁구나. 내가 없는 동안에 나라를 위해 수고를 해 다오’. 위환공은 주우가 고마웠다. ‘형님께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말고 다녀 오십시요’. 술이 여러 순배 돈 후 자리를 파할 때 주우는 형을 부축하는 척 하면서 갑자기 칼을 뽑아 위환공의 등을 푹 찔렀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500명의 장사들은 재빨리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미리 준비된 관 속에 위환공의 시신을 넣어 왕이 까닭 모르게 급사했다고 발표하면서 장례를 치룬 다음 주우가 왕위에 올랐다. 이 때 대부 석작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갑자기 일어난 정변이라 온 나라의 백성들 누구도 주우를 신망하지 않았다. 백성들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하여 이웃 정(鄭) 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아무런 성과도 없고 국. 내외의 여론만 더 악화시켰다. 주우는 그 동안 선왕 때부터 신망이 높았던 대부 석작에게 조정에 들어와 정사를 맡으라는 영을 내렸다. 아들 석후가 공자 주우와 어울려 못된 짓을 하고 돌아다닐 때 아들을 불러 회초리를 칠 정도로 엄격한 석작이었다. 석작은 주우가 군위에 오르자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주우가 내게 정사를 맡기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 석작이 아들 석후에게 물었다. ‘주공은 군위에 올랐으나 백성들이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백성들에게 신망이 높은 분이니 조정에 나오면 반드시 백성들이 따를 것입니다’. ‘누구나 제후가 되면 주 나라에 가서 천자께 아뢰고 인증을 받아야 한다. 천자의 말씀을 봉명하면 그 때 비로소 제후가 되는 것인데 백성들이 어찌 천자가 인증한 제후를 따르지 않겠느냐 ?’.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주 나라에 입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 ‘진(陳) 나라의 도움을 받아라. 진후(陳候)는 천자의 신임이 두터운 분이니 그 분과 함께 입조하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이다’. ‘과연 아버님 말씀이 지당합니다. 소자가 주공께 어뢰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석후는 석작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석작은 아들이 물러가자 혈서를 써서 진 나라에 보내었다. ‘외신이 엎드려 절하고 현군(賢君)께 아뢰옵니다. 위는 본래 작고 보잘것없는 나라이오나 신의 무도한 아들 석후와 주우가 감히 선군(先君)을 죽이고 군위를 차지하는 변란을 일으켰사옵니다. 노부(老夫)는 늙어서 아들을 처치하기가 어려우니 현군께서는 아들이 당도하면 즉시 일을 도모하시기 바라옵니다’ 일을 도모하라는 것은 처벌하라는 뜻이다. 석작의 편지를 받은 진 나라의 공론은 팽팽했다. 위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주장과 천하의 대의를 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 것이다. 진후는 주우가 포악하다는 말을 듣고 장사들을 매복시켰다가 주우와 석후를 결박해 버렸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 나는 위나라의 군후다.’. 주우가 대로하여 항의했다. 그러나 진후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위나라에 사자를 보내 두 사람을 처치할 것을 요청했다. 위나라의 충신 석작은 크게 기뻐했다. ‘나의 부친은 위나라의 대부 석작 어른이시다. 진나라 대부인 자검과도 친한 분이신데 어찌 나를 감금하느냐 ?’. 석후도 군사들을 향해 악을 쓰고 소리를 질렀다. ‘이놈아 네 아비가 너를 처형해 달라고 했다.’
위나라 군사들은 석후를 조롱했다.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자식을 죽인단 말이냐 ?’. ‘석작 대부께서는 너 같이 무도한 자식을 일찌감치 죽이지 못한 것을 지금도 후회하고 계신다’. ‘아아, 어찌 이럴 수가 ! ’ 석후는 마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석작은 가신을 진나라에 보내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석후를 죽였다. 주우 또한 목을 베어 죽였다. 군사들은 일제히 석작을 칭송했다. ‘위나라 석작은 참으로 충성스럽고 어진 신하다. 주우가 시역한 역적이라 미워하고 있었는데 그 자식도 역모에 가담하였었다. 그런데 자신이 국가의 대의를 위해서 부모형제도 돌보지 않듯이 아들을 죽이고 시역한 역적을 죽이니 이보다 더한 대의멸친(大義滅親)이 어디 있겟는가 ?’ 위나라 백성 모두가 한 입으로 칭송한 소리다.
한 번 붙들면 죽어도 놓지 못하고 자손만대로 대물림 까지 하려고만 하는 부(富)와 권력이 우리 현실임을 부인하기 어려운 이 때,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그 향기는 더욱 그윽하고 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