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중국에 당 나라가 망하고 군웅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조광윤(趙匡胤)이란 인물이 무리를 이끌고 군소 군웅들을 평정하여 세운 나라가 송(宋)이고, 얼마 가지 않아 북방에서 일어 난 여진족의 금(金) 나라에게 연속 패함으로써 국토의 반이 넘는 북쪽 지역을 금나라에 내어주고 남쪽 일부만 지킬 수밖에 없는 초라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이로부터 금나라와의 전쟁이 있기 이전의 송을 북송이라 부르고 남쪽으로 밀려 내려 온 이후의 송을 남송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허약한 남송의 신하인 문천상(文天祥 1236-1282)은 금나라에게 시달리던 송나라가 다시 원나라의 침입을 받게 되자 만 명의 병사들을 모아 대항해 싸우던 중 송나라의 왕이 원에 항복하게 되자 문천상이 원나라에 가는 강화협상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패전국 대표이면서도 협상에서 조금도 물러섬이 없자 승전국인 원나라의 죄수가 되어 구금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그 후 북으로 끌려가던 도중 탈출하여 본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잔여 세력을 이끌고 황제의 후예인 익왕(益王)이 복건 성에 자리를 잡자 그를 위해 원나라와 싸우다 다시 포로가 되었다. 3년간 북경에서 옥살이를 하고나니 원나라 세조가 간곡하게 문천상에게 원나라의 벼슬을 권했지만 그는 죽기로 결심하고 이를 거절했다. 그에게 애국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고 그는 그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나주가 고향인 노인(魯認 1566-1622)은 스물여섯 살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 율 장군 휘하에서 참전한 무인이다. 5년 뒤인 정유재란(1597년)에 남원에서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왜군에게 포로로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가 끌려가니 그 곳에는 명나라 병사들도 끌려와 함께 갇히게 되었다. 임진혁(林震혁), 진병산(陳屛山), 이원장(李原장)등과 함께 탈출한 그는 항구에 정박한 배를 타고 황해를 가로질러 명나라 복건 성에 도착했다. 하지만 국제관계가 있어 마음대로 명나라를 떠날 수 가 없었다. 그는 조선으로 떠나게 해 달라고 명나라 관청에 탄원서를 내어 마침내 허가를 받게 되었다. 떠나기 전 노인은 북경에 들러 명나라 사람들에게 일본에 복수하는 길을 상세히 강론하면서 정주학(程朱學)까지 강론하게 되었다. 그는 명나라 황제 신종(神宗)에게서 말을 한 필 하사받기도 했다. 정주학의 본 고장인 명나라에 와서 그것도 명나라 황제로부터 학문의 깊이를 인정받게 된 것이고, 송나라의 충신 문천상에 못지않은 충신이자 학자라며, 그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귀국 후에 4년 후 늦은 나이인 37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군 지휘관이 되어 그의 파란만장한 경험을 나라사랑에 쏟아 부었다. 노인 또한 그가 할 수 있는 애국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이를 놓치지 않았다.

 천하범사에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을 이룰 때가 오게 되어 있다. 기회란 어떤 일이나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거나 알맞은 시기인데 바로 이 시기를 잘 포착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기회란 새처럼 금방 날아가 버리는 것이어서 왔을 때 잡아야 한다. 또 기회란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찾아가지만 이를 알고 붙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기회가 찾아와도 모르고 지나가거나 알더라도 준비 부족으로 그냥 흘려보내기가 일쑤다. 기회를 잡는데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 위대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의 차이란 역경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처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추사는 9년 동안 제주도에 유배되어 참을 수 없는 울분과 고독에 몸부림 나는 에너지를 자기발전의 기회로 삼았다. 원망과 억울함이 아닌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는 뉘우치는 마음으로 학문과 예술에 몰두하여, 그는 학문과 명필에 온 힘을 쏟아 역대의 명필을 모아 그 장점을 모아 독특한 추사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어려운 환경에 처하거나 위기를 만났을 때 그것을 기회로 여겨 오히려 새로운 활로를 여는 사람에게는 그 위기는 늘 기회로 탈바꿈하여 다가오게 되어 있다. 기회란 고난의 토양에서만 자라나고 그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일은 자신에게 달렸다. 하지만 기회란 늘 잃기는 쉽고 잡기는 어렵다. 그러기에 때가 이르렀을 때 이를 잃지 않는 것이 기회다. 이 기회란 반드시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기회가 좋지 않았다 거나 운이 좋지 않았다거나 하는 변명을 늘어놓는다면 기회가 찾아왔지만 그것을 잡을 능력이 없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또 그 어려운 기회가 찾아왔다면 반드시 붙들어야 할 일이다. 좀 떠 적극적으로는 그 소중한 기회라는 것이 오지 않을 때 자신이 만들어야 할 일이다.
 흔히 인간은 길흉화복과 흥망성쇠가 이미 정해진 절대적인 힘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고 여기는 운명론에 빠지기 쉽다. 수많은 사람들이 점술가를 통해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액을 방지하거나 자신의 성공을 위해 부적을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기도 한다. 사실 운명이란 새옹지마(塞翁之馬)가 말해주듯 현실의 행복과 불행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미리 대비하라는 충고임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운명이란 그럴 수도 있는 일 중 하나일 뿐 꼭 그렇게 된다는 말은 아니다. 축축한 습지에 사는 식물은 햇살이 따갑게 비치는 메마른 땅에서 살기 어렵다. 건조한 땅에 잘 자라는 선인장을 습지에 심는다면 이내 죽고 말 것이다.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성향과 자질이 잘 반영되는 일이 있다. 이 때 무리하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려는 것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내어 그 일에 매달리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길일 때가 훨씬 많다. 운명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에게 맞는 일과 장소를 찾아내는 것이 지혜롭게 운명에 대처하는 길임을 말해 준다. 따라서 운명에 기대하거나 운명을 탓한다는 것은 자신이 나약한 존재임을 실토하는 말일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을 찾을 수 없을 때 당장의 고난이 나를 훈련시키기 위한 기회로 알고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일이다. 눈앞에 닥친 작은 일을 차근차근 성취해 나갈 때 저절로 자신감이 생겨날 것이다. 적성이 있을 자리에 끈기가 대신 할 때 남들보다 늦을지언정 그 성공이 오히려 더 공고하고 확실할 수도 있다. 운명을 탓하고 불평하기보다는 직면한 고난과의 화해를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이리하여 여기서 얻는 성취란 그어는 성취보다 더 값질 수 있다.

 고뇌와 슬픔은 인간에게 책 속에서는 얻을 수 없는 지혜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어지는 기회일 뿐이다. 왕성한 식욕 끝에 얻는 위장병은 과식의 잘못을 꾸짖기 위함이고 찬   바람과 기후를 무시한 감기 또한 사람의 만용이나 부주의를 일깨워 주기 위함이다. 자기의 목적에 대한 수단을 알고 그것을 포착하여 이용할 줄 알아야 함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곤란한 일이나 위험이 닥친다면 더 한층 용기와 결의가 필요하다. 인간의 용기는 그 사람이 곤란한 위험에 빠졌을 때에만 나타나게 되어있다. 고통과 번민은 위대한 자각과 깊은 심정을 가진 사람에게 필연적으로 오게 되어있다. 사람이 깊은 슬픔과 고민에 빠졌을 때 이 고뇌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맨 밑바닥에서 뒷받침하고 있는 지주이며 가장 보편적인 고뇌에 연결되는 가교가 될 것이다. 그 고뇌를 긍정해 줌으로써 세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그 자신의 위치인 위대한 자각과 깊은 심성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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