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하나님이 자기형상(形像) 곧 하느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느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느니라. 하느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시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리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천지의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느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에 다하므로 안식하시니라. 하느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느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구약성경에 있는 하느님의 천지 만물 창조 과정의 일부이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 사이에서 태어난 첫 아들 가인은 농사를 지었고, 둘째 아들 아벨은 양 치는 목동이 되었다. 두 아들은 각기 자신의 소산인 곡물과 양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올린 결과 아우 벨과 그의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을 열납하지 않으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그들이 둘이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이 사건이 인간 세상의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가인은 그의 손에 죽은 아우의 피를 받은 땅을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되었고, 하느님의 앞을 떠나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면서 에녹을 낳고 성을 쌓아 그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그의 자손들이 여러 가지 직업을 택하여 각각 그 직업의 원조가 되었다.

 하느님의 보호권 밖으로 쫓겨난 그들은 제일 먼저 하느님의 보호 아닌 자력으로 자신들의 신변을 보호받기위해 성을 쌓은 일이고 자신들의 힘으로 살아가기 위한 일거리를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느님과 인간간의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인 언어를 별자리에서 따 와 히브리어를 만들고 바로 그 히브리어로 성경을 기록하여 오던 중 주변의 열강들에게 시달리면서 아람어, 헬라(그리스)어 등을 사용하기에 이른 신약시대(약 2천년 전)에 이르러 신약이 기록되면서 구약시대의 모든 성경을 보완하여 새로운 의미로 해석한 예수에게 반기를 들고 십자가에 처형하기에 이른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신약을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구약의 여호와 하느님만을 그들의 신앙 대상으로 한 데는 신약이 히브리어 아닌 아람어로 또는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이유에서이기도 하다.

 하느님이 미리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복을 주셨기에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God)을 믿는다하여 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다. 이들 유대인들의 신앙과는 달리 예수님은 인류를 모든 죄에서 온전히 구원한 복음을 전파하려는 교회와 이 복음을 대적하고 변질시키려는 사탄과의 영적 전쟁을 선언한 것이다. 십자가 처형 후 로마제국의 무수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살고 복음을 지켜왔던 교회는 박해를 이기고 승리하여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에 이른다. 그 동안의 교회 핍박이 교회를 말살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고난 속에서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으로 더 성숙해 온 모습을 보여준다. 핍박은 종식되었지만 기독교 공인 이후 무한정 성장할 것으로 보였던 교회가 오히려 부패하기 시작한다.

 하늘에 속했던 교회가 새로운 양상으로 세상에 속한 국가와 타협하고 부패하고 타락한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핍박의 칼은 칼집에 그대로 꽂힌 채 그대로 녹슬어 있고 과거에 이방 종교들이 누리던 특권들이 교회에 부여된다.  기독교가 로마를 정복해 나가면서 공인된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얼마 후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교회가 로마제국 정부와 결탁하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구성원이 되기를 원했고 영혼이나 하느님의 말씀에 관심도 없는 세속적인 사람들이 사회적 위치나 정치적 영향력을 얻기 위해 욕망에 차 성직을 원했다. 교회가 국가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시기에 교회가 그리스도를 힘 있게 증거했던 것이다. 끊임없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을 거룩한 교제 안으로 인도하여 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성령이 인도하던 그 자리에 인간적인 생각과 세속적인 영광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영적인 순결과 탄력을 잃어갔던 것이다. 교회는 어두운 세상을 밝힐 빛이 되지 못했고, 병들고 썩어 들어가는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잃어 간 것이다. 교회는 국가와의 연합을 통해 교권제도를 형성시켜 나갔다. 이 교권제도가 오늘날 카돌릭 교회의 모체가 된다. 교회가 국가권력과 결탁하자 이에 반기를 든 믿음을 지키려는 기독교인들이 생겨나게 되고, 국가 교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법령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빼앗고 참 믿음을 지키려던 신도들이 이단으로 몰려 산골짜기나 동굴 등에서 피난처를 찾아야 했다. 위의 간추린 기독교 약사를 통해 언제 이디서 어떤 경우에 하느님이 임재하며 언제 어떤 때에 하느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는가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성경이란 하느님의 영인 성령의 감화를 통하여 하느님의 뜻과 가르침을 인간이 대필한 것으로 규정할 때, 바로 그 성경의 가르침으로 되돌아가는 것, 그리고 인간의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대로 살아내는 자신을 불사르는 신앙만이 그 답이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신앙인의 자세에서라면 너무나 불경한 말이 되겠지만, 성경의 많은 부분, 특히 그들의 역사 또는 선지자들의 고백 등을 성경 밖으로 벗어나 조금 넓게 또는 다른 시각으로 보면 유대인들의 신앙고백에 불과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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