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생득 권, 혹은 인연 또는 천륜이니 팔자소관이니 하는, 태어난 대로 받아들이면서 생존 그 자체를 즐기면서 또는 괴로워하면서 모두가 한 세상을 살다가 떠나게 되어 있다.  인간 끼리 인간 위에 군림하고 그 절대자 밑에서 신음하던 종들이 왕후장상이 씨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서 주인들에게 반기를 들었던 진시황 시대의 진승(陳勝)이나 고려 때의 만적 또한 모두가 그 갈등 속에서 한 세상 살다가 흘러갔다. 옛날엔 그래도 삼대 부자 없고 삼대 거지 없다는 말도 있었지만 지금의 부자는 영원한 부자고 가난뱅이는 영원한 가난뱅이를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세대 또한 예외 없이 바로 그 세상의 불공평을 가슴에 응어리로 품은 채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에게 생득적 신분이 있는가 하는 얘기는 매일 우리가 몸으로 부딪혀 살아야 하는 현실 속의 삶 외에도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 시대의 양반과 상놈이 있었고, 좀 더 대표적인 경우가 인도(India)의 캐스트(caste)제도가 있다. 인도의 선주민이었던 검은 피부의 드라비다족이 외계인인 아리안 족에게 침공을 받아 굴복한 다음 새로운 질서가 확립되었으니 이것이 곧 지금까지 존속하는 캐스트 제도가 그것이다. 아리안 족을 지지하였던 브라만의 문화 형태는 씨족이 농촌사회를 구성하는 기구 속에서 생겨났다. 그들은 몇 개의 촌락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 조직을 가지고 지극히 고립적, 폐쇄적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사제 자 브라만은 그 농촌사회에 있으면서 신비적인 제사와 이어 혹은 주술(呪術)에 의하여 대중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브라만의 사회적 지위가 아무런 의심도 없이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바탕이 캐스트 제도인 것이다. 원래 캐스트는 직업을 분화하여 서로 타인의 직업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원칙 밑에서 세워졌다. 이 브라만 외에도 크샤트리아(王族武士), 바이샤(庶民), 수드라(奴隸)의 네 계급으로 분화된 것이다. 특히 사제 자 브라만과 다른 세 계급 간에는 구별이 엄격하여 그로 인해 제사 지상(祭祀 至上)의 뿌리관념까지 뿌리 내리게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학식을 자랑하며 인간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신(神)으로 자처했다. 그리고 브라만이 생활에 곤란을 받는다는 것은 사회적 치욕이라는 통념까지 뿌리 내린 것이다. 그들은 또 사제 자로서의 특권을 이용하여 신비적인 주력(呪力)으로 대중 위에 군림하였다. 이러한 외면 지향적인 종교행위가 언제까지나 흔들림 없이 존속할 수는 없는 법이어서 반(反) 브라만 운동이 싹트면서 제사나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의 내면적 모습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기운이 일어난 것이며 이것이 브라만의 몰락을 가져왔고, 촌락 중심의 문화 조직이 무너지고 도시의 흥륭에 의한 자연적 흐름이기도 하다. 이들 브라만의 몰락에 크게 기여한 일파가 자이나교와 불교이다. 불교는 이러한 브라만의 횡포와 타락을 밑거름으로 하여 생겨 난 것이다. 불교의 생성이 바로 인간의 생득적 귀천을 타파하자는 데 있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인도의 전통 종교 힌두교에 큰 자정(自淨)의 물결이 휩쓸고 지나가긴 하였지만, 불교 자체는 종교로서 인정받지도 못한 채 거의 소멸 상태로 들어갔지만 오히려 국외로 널리 퍼져 나가면서 세계적 종교가 되어갔다.

 사람들이 석가에게 물었다. ‘지금의 브라만들은 옛날의 브라만들이 지녔던 규정에 따르고 있습니까 ?’ ‘ 지금의 브라만은 옛날에 지녔던 브라만 법에 따르지 않고 있다. 옛날의 브라만은 자기를 제어하는 고행자로서 일체 욕망의 대상을 버리고 자기의 신실의 의를 행하였지만 지금의 그들은 아니다’. 도시화와 물질만능의 풍조가 어김없이 휩쓸면서 사람들은 쾌락을 추구하게 되었고, 세상은 혼탁해지고 사교(邪敎)와 점술 등이 횡행하였다. 당시 대중들이 진정으로 바라던 것은 위에서부터 내리 누르는 종교, 신과 제사의 종교가 아니라 자긴 눈으로 확인하고 자기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신앙의 대상을 원했던 것이다. 과거 수 천 년이나 닫혀있던 인 간 마음의 창문을 개방코자 한 것이다. 이제까지 외부로만 향해있던 눈이 내부인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석가는 당시 인도 수행자의 예에 따라 고행에 힘써 하루에 한 알의 삼(麻) 씨, 한 알의 보리를 먹고 몸이 여윌 대로 여위어 길가에 가로지른 나무  뿌리에 라도 걸려 넘어 질듯 한 그의 고행이 심신에 소모를 가져 올 뿐이며 아무런 이익도 없다고 느끼게 되어 소를 치는 소녀에게서 우유를 공양 받고 몸을 추스린 다음 가야의 조용한 보리수 밑에서 조용한 명상에 빠져들었다. 석가는 이제까지의 종교, 사상에서 만족을 찾을 수 없었고, 신의 종교, 고행의 종교, 숙명론, 인식론 등이 참다운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 도움이 안 된다고 느낀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영속성이 있는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무상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으려 한 것이 힌두교와 캐스트 제도에 대한 반기를 든 석가였던 것이다.
 캐스트의 기본이 직업의 분업화라고 표방하였지만 실은 정복자인 아리안 족들이 브라만과 크샤트리아가 되고 피 정복자인 드라비다 족이 바이샤와 수드라가 된 것이다. 계급을 만든 후 이들은 이 계급이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신이 정해준 계급이라 하여 신성시하게 만들었다. 모든 계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의무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사회적 번영과 질서에 기여하고 자기 발전을 까할 때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설법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엄격한 계율을 정해놓고 이를 어길 경우 이들 네 계급 보다 더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불가촉   천민(untouchables)으로 내몰아 신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계급으로 버림받게 하는 장치까지 마련해 두었다. 지금도 인도인들은 캐스트를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이 전생에 현생의 일을 업보로 물려받을 일을 쌓아 두었기에 당연한 일로 믿는 것이며 생이란 잠깐 참으면 지나간다는 믿음에서 이다.  
 인도(India)라면 먼 나라 또는 나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남의 얘기 정도로 생각할 수 있으나 우리가 수 천 년 신앙해 온 불교의 온상이 힌두교이자 캐스트 제도이기에 그 근원을 고찰함으로써 남의 얘기가 아닌 인간 자신의 내면을 성찰해 보자는 계기를 삼고자 한다. 어쩌면 기독교의 발생지인 이스라엘이 예수를 메시아가 아니라 하면서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을 씌워 십자가에 처형하면서, 기독교의 뿌리인 유대교의 야훼(여호와) 하느님은 오로지 이스라엘만을 보호해 주는 신으로 빗장을 단단히 채워 두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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