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황금이 온 산과 들에 널려 있어 발길에 채이고 짐승의 발길에 짓밟혀도 거들떠보는 이 없는 시대, 이때가 황금시대인지, 아니면 풍요와 발전의 극치라 할 만한 오늘날이 황금시대인지  대답이 선뜻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은 처음 세상이 열렸을 때, 세상에 죄악이 없었을 때, 행복만이 가득했던 시대를 ‘황금시대’라 부른다. 법과 규율에 얽매이지 않아도 진리와 정의가 행해졌고, 위협을 가하거나 벌을 주는 관리도 없었다. 그 무렵에는 집을 짓거나 배를 만들기 위해 나무가 벌채되는 일도 없었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나 도시 주변에 성곽을 쌓을 일은 더더구나 없었다. 칼이나 창, 투구 같은 것이 없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대지는 인간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지 않더라도 인간이 필요한 모든 것을 산출했다. 늘 안온한 봄날이 계속되어 씨를 뿌리지 않아도 꽃이 피어났으며, 냇물은 우유와 술이 더불어 흐르고 노란 꿀물이 상수리나무에서 흘러내리는 시대였다.
 그 다음으로 ‘은의 시대’가 왔다. 이 시대는 항상 봄을 맞이한 황금시대보다는 못하지만, 요 다음에 오는 ‘청동시대’보다는 훨씬 더 나았다.

 얼마 후 봄의 기간이 줄어들면서 한 해가 네 계절로 나뉘어졌다. 그 때부터 인간은 추위와 더위를 견뎌야 했으며, 비로소 집이 필요하게 되었다. 최초의 주거지는 둥글었으나 점차 숲속의 나뭇잎으로 덮었던 은신처가 이제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오두막집으로 바꾸었다. 이제는 농작물도 재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씨를 뿌리고 소가 쟁기를 끌어야 하는 시대가 왔던 것이다.
 다음에는 ‘청동시대’를 맞이하자 사람들의 성격이 앞의 전 시대보다 훨씬 거칠어졌고 걸핏하면 무기를 들고 싸우려했다. 그러나 아직은 그렇게 사악하지는 않았다.
 인간이 가장 무섭고 악해진 시대는 ‘철(鐵)의 시대’였다. 이 시대는 죄악이 홍수처럼 넘쳐흘렀고 겸손과 진실과 명예도 헌신짝처럼 내던져졌다. 간사한 무리가 나타나 사기와 책략과 폭력을 일삼는가하면, 인간에게 사악하고 이기적인 욕심이 나타났다. 뱃사람들이 숲에서 나무를 벌채하여 바람에 돛을 달고 항해하면서 바다를 괴롭혔다. 이제까지 공동으로 경작되던 땅이 분할되어 사유재산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땅으로부터의 소출에 만족하지 않고 그 내부까지 파서 끄집어내기에 이르렀다. 당연한 일이지만 황금 또한 땅에서 꺼낸 중요한 품목 중 하나였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 우화적, 자연 현상적 인간의 발전단계를 말해주고 있다. 인간 출현 당시 황금이 무엇인지 모르던 원시시대가 황금시대였다면, 철의 시대가 지나고 황금이 난무하는 컴퓨터 시대에 접어드는 오늘이야말로 점점 지옥으로 급히 달려가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싶은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황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을까. 물론 있다. 인간이 평생 동안 쓸 수 있는 것 중 가장 귀중한 것은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보물이다. 인간이 돈이나 부(황금)는 마음껏 손에 넣을 수 있으나, 일생에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한정되어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생명이자 시간이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돈을 쓰는데 조심스럽고 인색하면서도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거나 가치 없게 만드는 것 쯤 예사로 하는 경우를 너무 흔하게 보게 된다. 특히 인간이 남의 돈을 맡아서 쓸 때는 매우 조심스러우면서도 시간을 낭비하는 것 쯤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약속시간에 늦거나 쓸데없는 일로 남의 시간을 뺏는 것 쯤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시간과 돈(황금), 그 어는 것도 소중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러나 그 둘 중 무엇이 더 소중한가에 대한 구별을 잘 못 짓는 일이 일쑤라는 말이다. 시간의 부자, 시간의 가난뱅이, 이런 관념을 만들어 봄직하다는 얘기다. 금전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라 해서 시간적으로 가난해 져서는 안 될 일이다. 시간으로 돈을 살 수 있지만 돈으로 시간을 살 수는 없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우리의 주변에는 모두 자신이 반드시 남을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하고 남의 가르침(잔소리)에는 무시하거나 과민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따분한 사람, 바로 그가 남의 시간을 빼앗고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지만 대부분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교양, 학문 등이 따분함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남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는 사람이 따분한 사람인 것이다. 장사 일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에게 현재 상황이나 기분을 무시한 채, 일을 멈추게 하고 공자, 맹자, 석가, 예수,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논한다면 남과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자 따분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낚시에만 열중하고 있는 강태공에게 화학이니 물리학이니 미적분이니 하는  하루 종일 강의했다면 짜증밖에 돌아올 것이 없을 것이다. 따분한 사람이 옆에 있다가 자리를 뜰 때 누군가 딴 사람이 내 곁에 다가와 앉아 내 일을 도와주는 느낌이 든다.

 좋은 손님이란 집안에 들어서면서부터 집안을 밝게 하고, 나쁜 손님은 집 밖으로 나가면서부터 집안을 밝게 해 주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이 소중한 보물인 시간으로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이루어 내려고 의도했던 목적지로 나아갈 때 어디서나 막아서는 관문, 어느 한 관문이고 자동문이라곤 없으니 반드시 말거나, 당기거나 치켜들었을 때에만 그 길이 트인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할 일 이다.

저작권자 © 고성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