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동학 또는 천도교(天道敎)의 사상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유불선 사상에 토속신앙, 그리고 새로이 전래된 서학(天主敎)을 통합한 것이다. 동학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사람이 곧 한울님’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과 사람을 한울님 섬기듯 하라는 가르침이다. 인간은 모두 신성(神性)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종, 계급,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 평등하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모두 한울님 섬기듯 해야 한다. 우리는 이 신성을 을 자각하고 이를 실현함으로써 스스로의 새로운 인격체로 변화할 뿐 아니라 이 자각을 통하여 민족과 인류, 그리고 자연계를 살리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동학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선천 세상이라 하고 새로운 세상을 후천세상이라고 한다. 선천 역사는 낡은 세계질서로 투쟁과 갈등의 상극 역사였으나, 이런 상극의 역사를 상존과 조화의 역사, 곧 상생의 역사로 바꾸어야 하는데 이것을 개벽이라 한다. 이 개벽은 구체적으로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윤리적 실천 덕목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런 후천 개벽 사상은 역사에 유례가 없는 이상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대략 이것이 동학사상의 줄거리를 이룬다.
 겉으로 표방하기로는 물밀듯 밀려들어오는 서학(天主敎)의 반대 입장에 선 것 같으나 내용은 기독교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인류애를 포함하고 있고, 우리 역사의 근원사상까지를 근간으로 하고 있어 가르침의 내용만으로 서학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의 동학이라 부르기에는 약간 이상한 느낌도 든다. 이 동학의 창시자는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1824-1864)로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해 경서를 배웠으나 서자 출신이라 뜻을 펼 길이 없어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며 청년시절을 보내었다. 그는 37세 되던 1860년 4월 경주 구미 산에서 도를 닦던 중 한울님의 계시를 받아 무극대도의 도를 깨우쳤다. 최제우는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한울님을 소개하고 인간은 모두 동등하다는 평등사상은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이 위의 동학사상이니 사람을 한울처럼 섬기고,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라, 그리고 널리 민중들을 구제하라는 가르침이다. 자연과 인간은 조화를 이루되 인간이 중심이어야 하고, 나라와 시대를 걱정해야 하고 백성들의 고통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전라북도 태인, 정읍 등 몇 개 시 군이 동학이 한참 뻗어 가던 조선 말기의 행정구역으로는 고부군 이었다. 고부군수 조병갑은 탐학하기로 유명한 인물로 고부군 백성들은 그의 착취에 견디지 못하여 유리걸식하거나 도망치는 등 마을이 텅 빈 곳이 많아질 정도였다. 농민들은 군수를 찾아 가 어려움과 억울함으로 호소했으나 매 맞고 쫓겨나거나 감옥에 갇히게 될 뿐이었다. 조병갑은 1894년 1월 익산 군수로 전근되었다가 한 달 후 다시 고부군수로 오면서 그 탐학은 더 해갔다. 이 지역에서 동학의 접주였던 전봉준을 중심으로 한 동학  교도인 농민들이 죽창으로 무장하여 반기를 든 것이 동학란이고, 관군의 힘으로 진압할 수 없게 되자 일본군을 불러 진압하기에 이르러 난은 끝이 났다.

 세계의 열강, 특히 영국과 프랑스가 동양에 눈을 돌리면서 산업혁명으로 수공업 아닌 기계에 의한 대량 생산된 제품 판매와 더불어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는 아편을 중국에 팔면서, 중국에 막대한 물적 정신적 피해를 가져왔다. 중국 정부는 임칙서라는 청렴한 관리를 파견하여 거래되고 있는 아편을 압류하여 불태웠고, 이를 빌미로 영국군이 중국에 쳐들어 와 중국은 참패하고 무릎을 꿇으면서 막대한 손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영국 등의 신제품과 아편을 마음대로 거래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당연히 중국과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는 잇따른 분쟁이 일어났지만 어쨌든 이로써 중국의 고립주의가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무역의 개방 뿐 만이 아니라 기독교 선교사 까지 들어와 제국주의 앞잡이 노릇을 단단히 했다. 전도사의 오만불손한 행동은 중국 법을 적용받지 않고 자기나라의 법에 의한다는 ‘치 외 법권’이라는 새로운 조약의 체결로 합리화 했으며 이로 인해 서양에서 온 외국인들은 모두 중국 재판이나 법률에 상관없게 되었다. 기독교로 개종한 중국인 까지 치 외 법권을 휘두르게 되니 그 뒤에 버티어 주는 선교사나 제국주의 열강이 버티고 있어 원칙 따위가 통할 세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자 주민과 선교사 사이에 일어난 충돌로 선교사가 폭행당하거나 살해  당하면 열강들은 먹이를 낚아채는 표범처럼 잽싸게 달려와 거액의 배상금을 빼앗아 갔다. 열강들로서는 그보다 더 좋은 장사가 없었고 이를 빌미로 이전보다 더 큰 특권을 요구했다. 중국에서 가장 무섭고 참혹한 반란을 일으킨 것도 한 기독교 개종자가 일으킨 ‘태평천국의 난’이다. 반란군의 수장 홍수전은 광동 성 화현의 한 농민의 아들로 그냥 살만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세 번에 걸쳐 향시를 보았으나 실패하고, 24세 때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거리의 영국 선교사에게서 ‘권세양언’이라는 책자를 얻어 읽으면서부터 기독교에 빠져들었다. 어느 날 고열로 인하여 잠에 빠졌는데 비몽사몽간에 노인이 나타나 ‘마귀가 세상을 유혹하고 있으니 마땅히 마귀와 싸워 이를 물리칠 것 이니라’라면서 칼을 건네주었다. 홍수전은 꿈속에서 본 노인이 바로 여호와이며 같이 있던 중년의 남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했다. 홍수전은 자신이 예수의 친동생이며 여호와의 친 아들이라며 모세, 그리스도에 이은  제 3의 구세주로서 이 세상에서 사탄을 몰아내라는 명을 받았다고 하면서 그리스도교 전도를 시작했다. 그는 1850년에 구세주의 군대라면서 군대를 모집하여 난을 일으켰다. 태평군의 군율은 모세의 십계를 기본으로 하여 매우 엄격했다. 그는 ‘우상 숭배자를 죽여라’라는 구호를 내걸고 무수한 백성들을 무참하게 죽였다. 서방 열강들도 처음에는 열광적으로 홍수전의 편을 들었으나 나중에는 등을 돌렸다. 태평군은 무려 14년이나 세상을 시끄럽게 하다가 자중지란으로 소멸되어갔다. 서방 제국주의의 ‘우선 선교, 다음엔 함포, 다음엔 영토 합병’이라는 수순 속에 일어난 작은 파동 중 하나에 불과했던 사건이다.

 어떤 역사적 사건도 기적처럼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갖가지 원인이 함께 들끓어 일어나는 필연적인 현상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원인이 늘 명백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깊숙한 내면에 숨어 있지만, 운명의 수레바퀴가 갑자기 고장을 일으키듯 굴러갈 때에야 깜짝 놀랄 뿐이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 과거에 내린 뿌리에 얽혀 오랑캐인 외국인의 침입에 화낼 줄만 알았지 그에 대한 대처방안에는 턱없이 서툴렀기 때문이다. 영국은 중국에서 엄청난 이권을 챙기면서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군대로 위협을 가해모니 별 수 없이 응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과 청이 망해가는 시기나 모습은 판박이처럼 닮은꼴이다. 종교란 그 자체만으로 좋고 나쁨을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기서 늘 분쟁이 일고 반란이나 전쟁을 불러오기도 하고 끊이지 않는 테러에 이르기까지 그 폐해 또한 막대함을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가 동학란과 태평천국의 난이다. 중국이 통째로 남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은 데는 영국에게도 만만찮은 견제 세력인 소련, 미국, 프랑스에 이어 나중에는 일본까지 가세해 그냥 꿀꺽 하기에는 덩치가 좀 컸다는 데서 잠깐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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