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진시황이 죽고 왕위 계승의 첫 순위인 진시황의 장자 부소가 사실무근인 죄명으로 처형당하고. 막내 이들인 호해가 2세 황제의 위에 오른 원년 많은 인력이 노역에 동원되어 먼 북방의 어양(漁陽)으로 가게 되었다. 900 여명이 길을 가던 도중 대택향(大澤鄕)이란 곳에서 숙영하게 되었다. 그 중에 진승(陳勝)과 오광이란 사람도 끼어 있었다. 큰 비로 길이 물에 잠겨 행군이 중지되고 날자가 지연되어 기한 내에 어양에 당도하기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기일 내에 당도하지 않으면 목이 잘린다. 진승과 오광은 각오를 굳혔다. 물론 도망치다 잡히면 죽는다. 반란을 일으켜도 역시 끝장은 뻔하다. 그래도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 일반일 바에야 한 번 온 나라가 뒤집힐만한 짓을 저질러 보고 죽는 게 어떨까 ? 그들의 생각이 여기에 미친 것이다.
 진승은 젊었을 때 남의 집 머슴 이었다. 어느 날 주인 집 밭에서 일을 하다가 밭둑에 나와 잠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한숨을 토하고 나서 이렇게 뇌까렸다. ‘아무리 출세를 하더라도 옛 친구는 잊지 말도록 해야지....’ 옆에 있던 친구가 코웃음 쳤다. ‘웃기는 소리 그만 좀 해. 머슴을 사는 주제에 무슨 출세를 한다고.’ 진승은 개탄했다. ‘참새가 어찌 홍곡(鴻鵠)의 뜻을 헤아리겠느냐.’
 결심이 선 그들은 무리를 인솔하던 장위(將尉)들 앞에 나서서 먼저 오광이 ‘나는 도망을 칠테다’ 하고 여러 번 소리치니, 장위 하나가 오광에게 매질을 했다. 이 때 재빨리 그 장위의 칼을 빼어 든 오광이 그 장위의 목을 베어버렸다. 진승도 가세하여 또 다른 장위의 목을 베었다. 진승은 소집한 일동에게 부르짖었다. ‘우리들은 비 때문에 길이 막혀 기일 안에 어양에 당도하기는 이미 글렀다. 늦게 당도하면 목이 달아난다. 설사 처형은 면할 수 있다 하더라도 국경의 경비에 배치되면 우리들의 절반 이상은 살아 돌아오질 못한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개죽음을 당하다니 말이 되는가. 어차피 죽을 바에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 주자. 다 같은 인간이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 우리도 될 수 있다.’ 병사들은 일제히 외쳤다. ‘대 찬성이오 ! 명령대로 따르겠소.’ 그들은 우선 대택향을 점령하여 무기와 병력을 확보하고, 이어서 기현(蘄縣)을 공략했다. 이어서 기현의 동쪽 여러 고을을 점령해 들어갔다. 이렇게 진(秦)을 위협할만한 진승의 장초(長楚)가 진의 상장군 장한에게 대패하면서 진승이 마부인 장가(壯賈)에게 살해당함으로써 큰 소란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를 시발점으로 하여 유방, 항우를 비롯한 곳곳의 군웅들이 할거한 끝에, 유방이 항우를 쓰러뜨리게 되면서 진(秦)에서 한(漢)으로 왕조가 넘어가게 되었다. 한의 창업주 유방은 새 나라 한(漢)을 창업한 후 진승의 기일(忌日)에는 빠짐없이 제사를 올렸다 한다.  

 고구려 14대 봉상제(烽上帝=王)의 아우인 돌고 에게 을불 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왕의 아우인 돌고가 왕의 의심을 받아 자결하고 을불 또한 죽이려 하였으니 궁에서 도망을 쳤다. 을불은 시골로 찾아들어 수실촌의 음 모라는 사람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였다. 음 모는 원래부터 성질이 고약하고 심술이 많은 위인이었고, 을불을 심하게 다루었다. 심지어는 집 앞의 연못에서 개구리가 울면 음 모는 수면에 방해 된다하여 을불로 하여금 개구리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밤마다 돌을 던지게 하였고 낮이면 나무를 해 오도록 독촉하는 등 을불을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을불은 그 집에서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다. 이제는 머슴살이를 떠나 동촌사람 재모와 함께 소금 장사를 시작하였다. 그는 압록에서 소금을 구해다가 주변 마을에 머물며 장사를 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소금을 팔았기 때문에 그의 거처는 일정치 않았다. 어떤 곳에서는 한 달을 머물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며칠만 머물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압록강 동쪽의 사수 촌에 머물게 되었다. 그가 머물던 집의 주인은 늙은 노파였다. 그녀는 방세로 소금 한 말을 요구했고 을불은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 을불이 그녀의 집을 떠나려 하자 노파는 소금을 더 내어놓으라 하였다. 하지만 을불은 그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노파는 어떻게 해서든 을불의 소금을 빼앗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을불의 소금 짐에 몰래 자신의 신발을 넣었다. 을불은 이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소금 짐을 지고 다른 곳을 향해 떠나는데 노파가 소리를 지르며 쫓아왔다. 그리고 을불의 소금 짐에서 신발을 찾아낸 다음 을불을 도둑으로 몰아 관가에 고소하였다. 이렇게 하여 을불은 졸지에 신발 도둑으로 몰리게 되었고, 노파의 말을 곧이들은 압록 성 성주는 소금을 빼앗아 노파에게 주어 버렸다. 그리고 성주는 도둑질에 대한 형벌로 을불에게 매질을 했다. 이 무렵 봉상제는 전국에 군사를 풀어 을불을 찾고 있었다. 자신의 악행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역모를 염려하여 을불을 죽이려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을불은 숨어 다녀야 했고, 그래서 노파가 씌운 도둑 누명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을불은 이처럼 한 순간에 장사 밑천인 소금을 다 빼앗기고 매질까지 당한채로 관가 문 앞에 내 팽개쳐 졌다. 민간엔 흉년이 들어 백성들은 서로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온 거리에 거지가 넘쳐나고 있었다. 을불도 그 거지 행렬에 끼여 동냥을 하며 목숨을 부지하였으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얼굴은 깡말랐고 몸은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게다가 옷은 남루하고 머리카락은 지저분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이런 그의 모습 때문에 아무도 그를 황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봉상제가 미친 듯이 날뛰며 을불을 잡아들이는데 혈안 되어 있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이런 그의 남루한 행적과 형편없는 몰골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이 때 궁중에서 국상 창조리를 주동으로 하는 반정이 진행되고 있었으니 봉상제의 학정을 더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고 그들은 동지를 규합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하들을 시켜 을불을 찾도록 했다. 반정에 성공하려면 새로운 황제를 옹립해야 하는데 그 황제 자리에 을불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조리가 북부의 소우와 동부의 조불로 하여금 을불을 찾아오라고 명령하였다. 그들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을불을 찾다가 비류수 근처에서 인상착의가 비슷한 을불을 발견하였다. 비록 옷은 남루하고 몰골은 형편없었지만 행동거지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임이 드러난 것이다. 조불과 소우는 그의 행동과 말을 주시하며 말을 걸었다. ‘지금 대왕이 무도하여 나라가 어지럽고 백성은 굶주리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국상께서 황손을 찾아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니 부디 허락하소서.’ 하니 을불로서는 난데없는 소리라 당황했다. 혹 봉상제가 보낸 사람들이란 생각에서 시치미를 뗐다. ‘이보시오 선비님들 나는 거지나 다름없는 떠돌이 백성이오. 그런데 어째서 당신들은 내게 절을 하며 난데없는 소리를 하는 거요’. 하지만 조불과 소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시치미를 떼는 을불의 행동에서 새로운 확신을 얻고 있었다. ‘저희는 국상께서 보낸 사람들로서 북부의 조불과 동부의 소우라고 합니다. 저희는 언젠가 먼발치에서 대군을 뵌 적이 있습니다. 부디 저희를 의심하지 마시고 함께 가셔야 합니다. 그래서 악행을 일삼고 있는 지금의 대왕을 몰아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반정에 성공한 이들이 옹립한 을불이 고구려의 15대 미천제(美川帝=王)이다.
 미꾸라지가 용이 되고,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종이나 머슴이 아닌 늘 이 땅의 주인으로서의  빈틈없는 준비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할 일임을 말해 두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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