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하느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지으셨다. 그러나 인간을 창조할 때는 직접 개입하셨다. 동물과 식물은 하느님의 명령으로 그 존재가 드러났다. 그러나 사람의 창조는 하느님이 계획하셨고 직접 손으로 흙을 가지고 사람의 모양을 만드셨다. 그리고 친히 하느님이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하느님은 자신의 창조에 만족하셨다. 첫 사람인 아담의 독처를 좋지 않게 보시고, 그를 돕는 배필인 하와 또한 직접 창조하셨다. 하느님은 이렇게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를 위해 특별한 거소로 에덴을 허락하셨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 형상대로 지음 받아 사람 안에 하느님의 모형이 일부 나타났다는 말이니, 곧 인간은 이성, 양심, 의지등과 같은 하느님의 형상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흙과 하느님의 생기로 구성된 사람이니 영성과 체성을 동시에 가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의 몸은 영혼과 연합하여 하느님의 형상을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을 상대할 수 있는 고등한 성분에서 완전 성인으로 성숙할 수 있는 요소로 이루어져 있어, 에덴이라는 낙원 생활에 합당하게 지어졌다. 결코 죽지 않는 불사의 성질을 가진 인격체로 지음 받은 것이다. 하느님은 이렇게 작은 인간에게 인격적인 관계로 교제하시기를 원한 것이다. 하느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것을 가지도록 허락하셨다. 또 아담이 이 행복한 에덴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선악과에 대한 순종 여부를 걸고 계약을 체결하셨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따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는, 아담에게는 선한 의미의 시험이고 이 시험 결과는 후손들이 물려받는 유산으로 되어 있었다. 불행히도 아담은 하느님의 은혜를 잊은 채, 자신이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할 피조물임을 잊은 채 하느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범했고, 그것으로 그는 하느님을 배신하고 이 땅에 죄를 불러들이는 장본인이 된 것이다. 안타깝게 여긴 하느님은 그의 죄에 대한 고백을 전제로 그가 선악과를 범한 이전의 모습으로 돌려놓으려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라고 묻자 ‘내가 동산에서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그의 회개 없는 변명으로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하느님의 천지창조와 인간의 원죄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를 보여준다.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중동 가나안 지역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실은 이 지역에 젖과 꿀이 흐르기는커녕 황막하고 척박한 모래사막 광야였지만 억척같이 옥토로 일궈 낸 이스라엘인들의 노력으로 실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변모시켜 놓았다. 젖과 꿀이 흐른다는 말은 그 땅이 황야로 있을 때의 예언이었으니 ‘너희 힘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라는 하느님의 메시지이기도 하고, 또 그 땅에 잘 자라는 감람나무의 수액이 젖같이 희고, 종려 열매에서 얻는 잼이 꿀 같은 단 맛이 있어서이기도 한 데서 이며, 이 종려나무를 승리의 상징으로 삼기도 한다. 예수님이 사역의 마지막 일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승리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다 펴면서 환호하고 환영했다. 당시 로마 통치하의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조세(성전세)를 내지 못하는 농민들의 토지를 압류하여 소작 민으로 만들고, 빼앗은 주인의 뜻에 다라 종려나무를 심어야 하는 그 억울함을 전지전능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해결해 줄 것으로 믿고 환영한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인 가롯 유다 또한 이들과 같은 심정이었으니, 예수님이 비록 잡혀 있어도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 로마 정부를 타도하고 화려했던 옛 이스라엘 다윗 왕국을 재현시킬 것을 굳게 믿었으나 무저항으로 일관하자 너무나 큰 실망이 분노로 바뀌면서 며칠 전 승리의 감람나무를 든 메시아 환영의 열광적인‘호산나’에서 강도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를 십자가에’라는 실망과 분노의 함성으로 돌변한 것이다. 여기서 한국교회에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유다의 배신이니, 또 당시 이스라엘 열혈 애국자였던 바라바(강도), 한 입으로 ‘호산나’ 를 외졌던 그 입으로 ‘예수를 십자가에’로 외친 군중들을 비난하는 따위의 설교는 크게 수정하여 할 대목이다.. 

 세월이 많이 지나 15-16세기에 들어서면서 만인 공통의 종교로 선포한 로마의 카돌릭 교회가 제후와 인민에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고, 거대한 토지를 소유하게 된 교회에 대한 농민의 반감 도한 커져만 갔다. 이 반감의 선두에 섰던 카돌릭 신부 루터가 로마를 방문하다가 교회의 호사스러운 타락에 치가 떨리는 반감을 일으켰다. 그가 지도한 종교적 항쟁이 확대일로에 이르러 마침내 교회를 양분하기에 이르렀고, 종교적, 정치적 두 진영으로도 분리되기에 이르렀다. 또 지방 제후들은 그들을 지배하려는 의도에 반기를 들었고 면죄부를 파는 등의 타락상을 수술하러 나섰다. 이 새로운 세력인 루터가 이끄는 프로테스탄트 세력의 위협에 굴복한 카돌릭 교회는 기존에 만연했던 부패를 현저하게 줄이게 되었으니 루터의 종교개혁에 어느 정도의 성공은 있었다. 루터가 힘없는 일반 서민들에게서 인기를 한 몸에 받았지만 농민들의 생존권을 요구하는 ‘농노제 철폐, 어획 수렵 권부여’ 같은 목숨이 걸린 소박한 외침을 정면으로 외면한 ‘이 조항은 만인을 평등하게 만들어 그리스도의 정신적 왕국을 실제 현세의 왕국으로 개조하려는 것이다. 그건 불가능한 것이고, 지상의 왕국은 인간의 불평등 없이는 존재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은 지주고 나머지 사람은 농노며 또 어떤 사람은 임금이고 또 어떤 사람은 신하가 되어야 한다’ 라면서 농민군을 저주하고 농민 반란군을 죽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공공연하게 혹은 은밀하게 농민 반도들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들을 죽이게 하라. 대체로 반도들은 유해 유독하며 그들은 악마의 화신이란 점에서 그들 보다 더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대들은 농민 반도들을 죽이기를 마치 미친개를 잡듯이 해야 한다. 만약 그대가 그들을 공격하지 않으면 그들이 그대를 공격할 것이며 그대의 토지를 모두 빼앗아 갈 것이다.’ 이것이 종교계, 특히 개신교의 최고 존경 받는 종교인 루터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기가 막힐 일이고, 우리나라의 교회에서 루터가 설교의 한 대목에 비치기만 해도 까무러지듯 찬양 일색으로만 흘러가니 위의 대목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면 무슨 답이 준비되어 있는지 궁금해진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 전래 된 것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왜장 소서행장을 비롯한 일부 왜병들과 서방 선교사들이 기독교 선교에 나섰으나 서로 사람을 죽여야 하는 전쟁 속에서 선교가 이루어 질 수가 없었고, 이보다 한 참 지난 1,784년에 가서야 제대로 된 선교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18세기 후반부터 중국(청)에서 들어 온 저작 가운데는 북경의 카돌릭 전도 본부의 회원들에 편찬 된 그리스도 교리를 내용으로 한 책들이 있었고, 이 내용이 한국 학자들의 발랄한 비평의식을 자극함으로써 아주 새롭고 이제까지 들어 본 일이 없는 불가사의의 개념에 대하여 주목을 끌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지금까지의 공자와 불타의 가르침과 조상숭배 사상과 비교한 후 한국인들은 그리스도교의 심오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그리스도교의 새 가르침이 유학자들의 머리에 매우 강하게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의 책자들 속에서 알아낸 바를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일반 학자들은 그리스도교의 혹독한 적이 되었다. 그들은 즉각 새 종교가 한국의 국가 신앙을 근본적으로 파괴할 뿐 아니라 한국의 신성한 관습까지 파괴한다는 이유로 새 종교에 대한 박해에 들어갔다. 기독교가 이 땅에 발을 붙이게 된 시발점은 말해준다.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에서 더욱 타락의 길로 들어서서 영혼이 더욱 병들면서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부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며, 교만하며, 쾌락을 좋아하며,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부(富)하기를 하느님 사랑하기 보다 더 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교회라 해서 예외가 아닌 이런 영혼의 중병에서 회복되고 돌아서는 기독교 본래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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