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세상의 어떤 사람도 태어나기 잔에 부모, 민족, 나라, 가난뱅이, 부자. 총명한 마리, 둔한 머리, 건강, 수명, 길운, 악운 등을 미리 마음대로 선택하여 태어 난 사람은 없다. 인간이 아닌 다른 동식물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서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제 날 탓’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모든 것이 자기 선택이나 판단에 있고, 세상을 열려 있으니 본인이 알아서 그 세상을 받아들이고 자력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말일게다. 어찌 보면 우리 인간에게는 공통 관심사가 하나도 없는 제각각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집단성이 있으니 그 중 어느 것 보다 강한 것이 민족이라는 집단일 것이다.
 우주 속에 삼라만상의 생성과 구성, 그리고 진화는 하늘의 이치(天理)에 따라 이루어진다. 만들어진 것은 모양이 있고, 천지를 창조하심 참 임자에게 모습은 없으나,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만들고, 진화시키고 기르는 이가 곧 하느님이오, 형상을 빌어 나고, 죽고, 즐기고 괴로워하는 것들이 사람과 만물이니, 이는 우주를 창조하기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는 무극((無極)의 허허(虛虛) 공공(空空)한 것으로 우리들은 보는 것이 태고 우리 조상들의 기본 우주관 이었다. 혼돈과 빛과 어두움으로 규정하는 성경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단군신화는 어른 아이 모두 교과서에서 만나게 되지만 동화책 속의 한 토막 이야기처럼 흘려버리거나 어른들 쯤 되면 신화라 하여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래 우리 민족의 출발지는 지금의 키리기스탄에 있는 파미르고원이고 여기서 시베리아, 돈황, 바이칼 호 등지로 옮겨 다니다가 그 일부가 먼저 만주 땅으로 들어선 선주민이 곰 토템(웅녀)의 집단이고, 곧이어 도착한 집단이 태양 토템(환웅) 집단과 혼인을 매개로 화합 속에 평화롭게 살게 되었다는 뜻이 간추린 내용이다.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환웅의 소도(蘇塗) 문화와 웅녀의 땅굴 문화가 결합된 천하대장군(환웅)과 지하여장군(웅녀) 간에 화합의 만남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태양의 기운(아버지)을 생명의 근원으로 이해하면서 그 기운을 받아 싹트고 자라게 하는 물이 흐르는 땅이 있을 때 새로운 생명체가 온전히 태어나서 자라고 건강하게 살다가 그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인간의 최초 삶의 터전이 땅굴이었을 것은 확실한 일인데, 태어나서 살아보니 인간과 비슷하게 땅굴에서 사는 동물(곰)을 만나게 되면서, 이 곰을 인간에게 액운을 막아주고 생명을 보존케 해 주는 수호신으로 섬기게 되었다. 땅굴의 ‘굴’이 ‘굼, 굽, 구멍, 구덩이’이고 더 나아가 사람이 태어나게 만드는 어머니의 자궁(굼, 곰)에 이르게 되니 곰이란 곧 지모신(地母神)을 이름이고, 더 나아가 만물을 길러내는 물의 신을 포함하는 말이기도 하다. ‘곰’의 ㄱ과 ㅁ의 자리를 바꾸면 ‘목(물)’이 되고 고성 말로 ‘목(멱) 감는다’ 하면 물을 뒤집어쓰는 것이고 ‘여기서 ’목욕‘이 되고 일본 말 ’모구리(잠수부)‘도 동 계열의 말임이 이를 보여준다. 또 땅굴을 덮고 있는 바깥쪽은 우뚝 ’솟아‘ 있는 곳이므로, 이 ’솟‘에서 솟대 또는 소도 문화가 성립되니 소도란 하늘(태양)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안테나이자 굴(곰) 속으로 전달해 주는 통로인 것이다. 그래도 그 안테나(솟대) 만으로 하느님과의 의사소통에 부족하다는 생각에 미친 인간은 하늘과 땅 사에를 오가며 소식(의사)을 전달해 주는 심부름꾼을 두게 되니, 곧 하늘과 땅 ’사이‘라는 뜻인 ’새(사+이=새 =봉황)‘를 솟대 위에 올려놓게 된다. 하늘 신을 뜻하는 ’환웅‘의 ’환‘은 광명의 ’환함‘이지만 지상 세계로 내려오면, 생명의 근원이라는 의미가 되면서 ’환‘, ’안‘이 되고 ’안‘의 ㄴ이 ’안‘의 앞자리로 가서 ’나‘가 되면 ’나 또는 낳(生 produce, beget, bear)‘으로 되니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힘이란 의미가 된다. 또 ’나‘가 ’님‘으로 되면 지극히 공경하고 사모하는 배우자 또는 지극히 존경하는 대상이라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또 우리가 아는 단군왕검은 원래 단군환검이고 이 환검은 태양신 ’환‘과 지모신 ’금‘의 결합임을 말해준다. 이 환검의 ’환‘이 ’완‘, ’왕‘으로 발음되면서 한자(漢字)인 ’왕(王)‘의 독음으로 변하기도 하고 또 ’환‘이 ’님‘일 때 지모신인 ’금‘과 합하여 ’임금‘이 되어 초기 신라 통치자를 이르는 ’니(이)사금‘의 용례도 있고, 이것이 남미 대륙으로 건너가 ’잉카(ruler or king)'가 되기도 한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모신 ‘금’을 사람의 성씨로 삼기도 했으니 그것이 오늘의 김씨(金氏)인 것이다. 또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고맙습니다’ 한다면, 바로 지모신 ‘곰’을 말하는 것으로, ‘당신은 나에게 신(神)이십니다’라는 공경의 표시가 된다. ‘고맙’의 ‘고’에 ‘맙’의 ㅁ을 붙이면 ‘곰(神)’이 됨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 이 ‘곰’이 ‘감 또는 가미(神)의 형이 되더라도 여전히 신(神)이라는 뜻을 지닌 채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가서 ’가미가제(神風)‘ 라 느니 하여 널리 쓰이고 있다. 거기다 또 소도 또는 땅굴은 궁실 또는 행정관청을 겸했을 뿐 아니라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이기도 하였으니 ’굴‘이 곧 ’굿(신에게 올리는 기원)‘이 되고, 신에게 올리는 기원은 춤과 노래를 곁들여 입으로 표현하는 말(言)이니, ’굿‘과 동 계열인 ’가라사대‘, 잠’꼬대‘, ’고자질‘에서 보여주는 ’말(言)‘의 의미임을 말해준다.

 이들 조상들 중 일부가 한반도의 남쪽으로 내려와 낙동강이 흐르는 김해 근처에서 자리 잡게 되어 더 이상 곰을 볼 수 없게 되자 그 곳이 흔히 보게 되는 거북을 곰을 대신한 지모신으로 받들게 되었다. 기 거북 또한 곰과 같이 땅을 파서 굴을 만들고 거기에 알을 낳기 때문이고 물과 뭍을 마음대로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곰’에서 ‘검’, ‘겁’, ‘거붑,’거북‘으로 된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야 문화의 탄생인 ’구지가(龜旨歌)‘가 생겨나게 되고 이어 수로왕의 가야국이 구지가라가 되어야 할 일이지만 금관이 손에 들어왔다 하여 금관가야가 되고 또 다른 네 개의 가야도 각각의 이름이 있고 보니 자연스럽게 고성(固城)을 도읍으로 하는 지역 곧 고성, 통영, 거제, 사천, 남해를 아우른 ’구지가라‘가 된 것이고, 일본의 서기에서는 ’구차국‘ 등으로 불러왔고, 이 구지가라가 ’고자미동국‘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신라 경덕왕 때에는 ’고자군‘으로 되었고 이어 고려 태조(王建) 23년 ’소가야‘로 불리다가, 고려 성종 14년 ’고주‘로 승격 된 후 철성(鐵城), 고성(固城) 등의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려 말기의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는 고려 태조 때의 관행에 따라 고성을 ’소가야‘라고 불렀을 뿐이다. 구지가라든 고자미동국이든 한자(漢字)의 의미는 없고 독음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고성(固城)의 고(固) 또한 굳을 고가 아닌 ’고‘에서 ’크(大)‘를 유추하고 성’(城)‘에서  ’재(고개, 성벽=城)‘를 뽑아 낸 다음, 이 ’재‘가 왕이 통치하는 도성이라는 점에서 ’쥐고(‘쥐’=‘재=城’) 통치한다는 뜻이 이를 때, ‘큰 정치 또는 통치’라는 풀이도 가능해진다. ‘고자미’는 당연히 ‘고미’, ‘곰’(地母神)‘이 분명하니 태고의 토템 신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모습이고,’고자‘에서 ’구지가라‘의 ’구지‘ 또한 보존되고 있다.  우리 고성 사람들은 우리의 가야를 ’소가야(小伽倻)‘라 하여 마치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르고 있지만 세상에 어떤 사람도 자기 이름에 작을 ’소(小)‘를 붙이는 사람이 없는 데, 하물며 나라 이름 앞에 소(’小‘)자를 붙일 수가 없다. 다만 이웃나라 또는 먼 타국 사람들이 자기네들 끼리 그렇게 호칭할 수는 있을 것이다. 또 ’곰‘의 잔재로는 대가면 ’금산리‘가 있고 “구만면(‘구만’은굴, 곰, 구멍의 뜻)” 등이 ’곰‘의 변형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또 가야가 철기문화가 앞서고 있어 ’쇠(金 또는 鐵)가야‘가 ’소가야‘로 된 것으로는 유추할 수 있는 개연성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발해(渤海)의 참 국호는 ’대진(大震)‘인데 당나라에서 부른 이름이 발해인 것이다. 이 외에도 많은 얘기들이 생략되거나 더 붙여야 할 내용이 많으나 우리 민족의 생명에 대한 근원사상은 또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저작권자 © 고성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