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필자가 어릴 때 우리 어머니는 잠이 없는 사람으로 알았다. 아침에 아무리 일찍 일어나 봐도 벌써 몇 가지 일은 해 치우고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아무리 밤늦게 까지 잠을 안자고 있어 봐도 여전히 뭔가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머니가 열심히 재봉틀을 돌려 바느질을 하다가 잠깐 자리를 뜨셨다. 이제 때가 왔다고 생각한 나는 얼른 재봉틀에 다가가서 왼 손을 꽂히는 자리에 얹은 채 오른 손으로 재봉틀 손잡이를 돌리자 재봉틀 아래 꼭지에 달려있던 바늘이 왼 손에 꽂히면서 피가 났다. 겁에 질린 나는 손을 빼 내려고 했지만 손의 상처만 커지고 피가 많이 나는 가운데 그래도 손을 뺀답시고 자꾸만 오른 손으로 돌리니 더 깊이 바늘이 왼 손으로 파고들자 이젠 ‘으앙’ 하는 울음소리가 안 날 수가 없게 되었다. 누군가가 허겁지겁 달려와 문제는 간단히 해결 되었다. 누구에게나 경험이란 삶 그 자체이지만 늘 지나간 경험과 발자국은 뒤돌아보며 구경만 하라고 주어진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슬기로운 지표를 세우는 데 요긴하게 쓰이기 위해 그 흔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 바로 그것인데 그냥 지나 간 발자국만 열심히 더듬어 찾는다는 것만으로는 그 의미를 찾을 수가 없고 우리에게 앞으로의 삶에 대한 올바른 지표로서의 활용에 더욱 큰 의미를 두어야 함은 물론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는 변화하며 인연과(因緣果) 원리에 의하는 역사적 존재이다. 인(因)은 직접적 주체적 원인을, 연(緣)은 객체나 간접적 원인이나 조건, 환경 등을 의미하고, 과(果)는 인과 연이 서로 관계를 맺은 결과이다. 그 결과는 또 새로운 연이 되고 다시 연을 만나 중중무진하게 전개하게 되어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살아왔던 발자취는 일제 강점기에 근년의 조선 역사 빼고는 뿌리째 말살되고 진실의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운 가운데 그들이 맘대로 조작해 놓은 역사를 후세대들에게 그대로 가르치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 일본의 초대 총독 대라우찌(寺內)에 이어 2대 총독 사이도(齊藤實) 총독이 이른 바 문화정치를 한답시고 그의 조선에 대한 역사교육 시책을 천명한 것이 있으니, ‘조선 사람들은 그들의 진정한 민족 역사를 알지 못하게 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조선의 민족 혼, 민족정신 그리고 민족문화를 상실케 하라. 조선인 자신들의 조상들의 무능과 악행들을 폭로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조상들에 대한 경시와 멸시의 감정을 유발하게 하고, 동시에 역사상의 인물이나 사적에 대한 부정적 역사지식을 유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조상들에 대한 실망과 허탈감에 빠지도록 하라. 바로 이때에 일본 제국의 역사상의 사적, 문화 및 위대한 인물 등을 소개하면 이것이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반 일본인으로 만드는 동화정책이다.’가 그것이다. 이 허위 역사사업 편찬에 편수관으로 일본의 사학자 이마니시(今西龍)가 있었고 그를 도운 친일 사학자들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로도 그 맥을 이어 비틀어지고 일그러진 역사를 지금도 가르치고 있다는 말이다. 좀 더 그들이 어떻게 우리 역사를 엉터리로 날조했는지 보면, 신라통일 이후만을 조선의 역사시대로 하고 그 이전의 마고, 환인, 환웅, 단군, 부여로 이어지는 인류문명을 선도했던 대부분의 민족사를 역사에서 배제한 것이다. 이는 마치 땅 속에 있는 초목의 뿌리를 끊어 그 생명을 시들게 하는 행위로 민족의 유래를 잘라 없앰으로써 민족의 생명, 자각, 사명, 이상, 그리고 긍지의 근원을 없애버리고자 함이다. 또한 우리 민족사의 영역을 한반도에 국한시킴으로써 민족사를 대폭 축소하여 민족사를 조작한 것이다. 원래 우리겨레 상고 조선의 영역은 파미르고원, 천산산맥, 태백산, 알타이산맥 등의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사인데, 이 역사를 축소하여 왜소하고 협소한 반도사관으로 조작한 것이다. 게다가 민족사관을 말살하여 독립운동으로 확산되는 것을 역사교육으로 막아보자는 저의까지 깔려 있었다. 역사가 길다는 것이 반드시 자랑꺼리라 할 것 까지는 없지만 현존하는 각종 사서만으로도 명시되어 있는 역사를 식민지 통치 수단으로 일그러뜨린 역사를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을 그들 방식대로 짧게 잡아야 할 이유는 없다.

 중국인들은 우리민족을 동이족(東夷族)이라 일컬었다. 동이는 동방의 대인으로 활을 잘 다루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온다. 흔히는 동이의 이(夷)자를 오랑캐로 해석하여 동쪽 오랑캐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모든 문명이 앞섰던 동이인들에 대한 중화인들의 시새움, 두려움, 적대감이 나중에는 경멸적 표현으로 까지 이른 것일 뿐이다. 상고시대의 동이는 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중화족으로 섞여 살고 있었던 복희, 신농, 헌원, 치우, 공자, 백이, 숙제 등도 동이족이었음을 그들 중화족 스스로 밝히고 있다. 우리민족은 동이족의 한 갈래인 삼묘족(三苗族)으로 이어진다. 삼묘족은 우리민족의 조상이자 인류의 조상이다. 지금의 중국 돈황 지역 삼신산(三神山)이 그 출발지인데 험하고 거친 이 산이 인류의 발상지이기도 하다고. 삼묘족에서 갈라진 우리 조상은 파미르 고원에서 시베리아로 옮겼다가 바이칼 호수에 이르렀다. 우리민족이 처음으로 세운 나라가 환국(桓國)이고 그 통치자인 한님(桓因)은 하느님에 대한 호칭으로 우리민족 고유의 신칭(神稱)이고, 백성들은 그를 존경했으니 우리민족사를 여기서부터 잡아야 한다. 환국의 넓이가 남북이 5만리 동서가 2만리에 이르렀으니 거의 아시아 대륙 전체 넓이에 해당할 것이다. 이들이 열 두 개의 제후국으로 되어 있었으니 비리국(卑離國), 양운국(養雲國), 구막한국(寇莫汗國), 구다천국(句茶川國), 일군국(一群國), 우루국(虞婁國), 객현한국(客賢汗國), 구모액국(句牟額國), 매구여국(賣句餘國), 사납아국(斯納阿國), 선비국(鮮卑國), 수밀이국(須密爾國)이다. 이들은 정치적 집단으로서의 결속력은 약하지만 오히려 혈연적 씨족들의 생활공동체로서 이들 상호간의 협력관계가 수 만 년 간 계속되는 가운데 그 중에 우세한 어떤 공동체를 중심으로 유대가 점점 긴밀하게 이루어짐으로써 하나의 씨족 연합체로 규합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진행된 것이다. 이 환국은 최초 파미르 고원의 마고성에서 유인(有因)의 시대를 거쳐 환인의 시대로 이르기까지에는 68,182년 또는 3,301년인데 이는 마고성 시대의 모계사회가 유인 시대의 부계사회를 거치는 과정이 6만여 년이고 인류 최초의 국가이자 왕권이 확립된 환인의 환국시대(기원 전 7197년)가 3,301년이고 이어 배달나라인 환인의 시대로 넘어간다는 말이고, 아직은 씨족사회의 틀 안에 있던 사회였다. 환한 나라, 광명의 나라, 하느님 나라 환국은 광명의 힘(斯白力)에 찬 하느님이 계셨는데 홀로 신이 되어 우주를 비췄다. 세상에서 우주를 만물을 낳아 오래 살면서 언제나 즐겁게 지내게 했다. 이에 백성들은 부유하고 수도 많았다. 하늘에 계신 신이 주신(主神)이 환인이고 그 밑에 많은 신들을 거느렸다. 환인이란 대 생명이며 하느님이며 광명 본원을 의미하고 사랑과 자비를 뜻하는 최초의 신선이었다.

 태고의 조상 또는 지도자를 높이 받들어 존경함은 지금보다 옛날이 더했을 것이니 신선 또는 신이라거나 하느님 등으로 높인다 해서 이를 신화의 세계라 치부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그래도 뚜렷한 건국 또는 통치이념은 광명(光明) 사상임은 분명히 밝히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바로 이 환국이 우리의 출발점이니 이를 놓치고서는 그 어디에도 우리의 뿌리는 더듬어 찾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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