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덕 현
전 초등학교장
 우리가 경험하는 어떤 시대적 사건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비유해서 말하면 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다는 이야기다. 낮이 너무 길어서도 안 되고 밤이 너무 길어서도 안 된다. 이것의 균형이 깨어지는 것을 ‘상식에서 어긋났다거나 객관성이 없다.’ 라고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사에 사건의 중심에 서서 그것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그것을 기준으로 사물을 바라본다면 그건 매우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물론 인간의 습성은 ‘강자의 편에 서서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본능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인간세계에서는 객관적인 상식이 필요하다. 우리민족은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고 일제 식민지 36년을 거치는 동안 강자에게 붙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역사적 패배의식에 오염되어서 그렇다고 이해하더라도 현 시대는 그런 상식을 넘어설 때가 된 것이다. 요즘의 각종 언론매체에서 보도하는 내용을 보면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마치 정권의 홍보역할을 하는 것 같고, 왜곡되고 비사실적인 내용들로 국민들을 세뇌하는 모습 같아서 아예 언론을 멀리하는 시대적 상황에 당면한 것 같다. 그리고 현 정권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라는 간판을 내걸고 불통의 장벽을 쌓아서 그 장벽 뒤로 온갖 비리를 감추고 은폐하기에 바쁘다.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언론기관의 오염정도가 너무 심해서 악취가 풍기고 있으며 일반국민들의 언론표현은 갖가지 장치로 완전 차단되어있다. 현 정권에서는 국민의 배만 불려주면 되었지 무슨 불평불만이 그렇게도 많으냐고 하면서 국민들을 마치 우리에 갇힌 돼지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할 곳이 없고 표현할 장소가 없다. 갖가지 법으로 통제하고 가로막고 마녀사냥을 하니 마치 전제주의 국가에서 사는 것 같다. 인간은 빵 만으로는 살 수 없다. 생각이 있고 정의가 있고 객관적 상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을 아무리 배불리 먹여도 사면이 꽉 막힌 지하 동굴 속에 며칠만 가두어 놓으면 미쳐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사회의 인간에게는 언론 표현의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지난번 11월 14일 민주노총과 전국농민회 등 53개 노동. 농민.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한 민중총궐기대회가 시민 약 13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광장 등 도심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노동자들은 정부의 ‘노동개혁’이 노동자를 죽이는 ‘노동개악’이라며 규탄했고, 농민 참가자들은 쌀값 폭락 문제에, 청년들은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 정부에 항의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쏟아져 나왔다.

 이것은 불통의 정권에 대한 국민의 아우성이었다. 물론 민중 총궐기 참여 시민일부 시위대가 폭력적인 행동을 한 잘못은 있겠지만 10만 명 이상이나 되는 시민들이 왜 거리로 나섰는지부터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서민들이 얼마나 살기 힘들었으면 거리로 나왔을까? 그런데도 새누리당에서는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민중 총궐기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경찰에 더 강한 공권력 행사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도대체 이 정권은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헌법에서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집회결사는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는 강력한 수단이지만 그 마저 강자들이 만든 법규의 테두리 안에서만 행해져야 한다면 우린 이걸 자유라고 부를 수 있는가? 소통 없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자유라는 옷을 입히고 넌 자유롭다고 말하는 건 오만하고 불쾌할 뿐이다. 시위대의 특정 방식을 문제 삼지 말고 10만 명 이상이나 되는 시위대가 왜 모였는지부터 알아야하는 것 아닌가? 시위대의 요구는 다양했지만 기본적으로 국정교과서 이슈와 노동개혁에 대한 문제가 큰 줄기를 차지한다. 이 메시지는 간단명료하다. 정치 권력자들의 입맛대로 하지말구 국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우리라는 외침인 것이다. 그런 국민들의 목소리를 수용하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정권이 이들을 종북이네 빨갱이네 하면서 폭도로 규정하고 있으니 우리나라가 진정한 민주국가라고 부르기에는 창피할 뿐이다. 누구의 권유도 없이 10만 여명이나 되는 국민이 자발적으로 모인 것 자체가 자유의 상징이지만 그런 현장에 차벽을 치고 물대포를 직격으로 쏘면서 폭도로 취급하는 건  너무나 유치하다. 이런 외침마저 틀어막으려는 정권의 속셈은 무엇일까? 더욱 더 황당한 것은 새누리당의 막말 주장이다. 폭력 시위에 부서지고 불탄 차량이 50대가 있는데 원형을 보존해서 광화문 광장에 전시하자. 폭도들의 만행이 어땠는지 직접 국민들이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핏대를 세웠다.  폴리스라인을 넘으면 경찰이 그냥 국민을 패버린다. 최근에 미국 경찰들이 총을 쏴서 시민들이 죽는데 10건 중 80~90%는 정당하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선진국의 공권력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이들이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과연 국민의 대표자를 자처하는 국회의원들이 맞는가? 경찰의 과잉진압을 감싸고 나선 새누리당 의원들의 발언을 접하면서 드는 의문이다. 미국에서는 집회·시위 현장에 차벽이 등장하는 일도 없을뿐더러,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는 시위대에 경찰이 발포하는 일이 없음은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일이다. 모든 것을 떠나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일흔에 가까운 농민 한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결코 해서는 안 될 말이다. 국민의 대표자로서 경찰의 안전지침 위반 행위 등을 추궁하지는 못할망정 사람의 생명을 갖고 막말을 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심리인가. 한마디로 ‘혼이 나갔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리고 어용언론인 종편 방송에서는 ‘대통령이 위수령을 발동해야 한다.’고 까지 주장하였다. 위수령은 군 병력의 주둔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특정 지역에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치안과 수비,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되는 대통령령이다. 군이 지휘 통솔을 맡는 계엄령과 달리 치안 유지에 관련한 조처는 그 지구를 관할하는 시장이나 군수, 경찰서장과 협의 한다. 집회 시위 현장에 군부대를 투입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이게 말이 되는 주장인가? 지금이 유신정권이냐? 5공 정권이냐? 정당한 집회를 폭도로 매도하려는 이들의 언론횡포가 금도를 넘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말기에 차지철 경호실장은 “각하께 불충하는 놈들은 탱크로 다 밀어버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는데, 지금 벌어지는 충성경쟁도 결코 이에 못지않다. ‘차지철류 인간들’이 박 대통령 주변을 겹겹이 에워싸는 사이 나라는 더욱 참혹한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는 노동시장 개편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청년실업과 쌀값 폭락 등을 비판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시민. 청년. 학생. 농민들을 폭동을 일으킨 ‘폭도’로 폄하하며 범죄자 취급을 한 것이다. 국민의 의사표시를 폭도로 규정하다니 그들의 지적수준이 북한 독재자 김일성이의 수준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을것 같다. 그러면서 국민들은 공권력이 불법 무도한 세력들에게 유린되는 무능하고 나약한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으며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청장은 이런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엄격한 법집행을 하는데 그 직을 걸어야 한다. 며 경찰에 더 강한 대응을 주문하기도 했다.

 독재정치권력에 의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사망선고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이런 위정자들의 선동에 경찰들은 국민들에게 정면으로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최루액과 함께 날아온 물대포에 강타당하며 비틀거리다 땅바닥에 주저앉기도 하였다. 공권력이란 이름 아래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범죄 집단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국민들이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이후 7년 만에 최대 인파. 황금 같은 휴일을 반납하고 제 돈 내고 광화문으로 쏟아져 나온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행복시대’를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정권 치하에서 더 이상 “못 살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불법시위를 엄벌하겠단다. 법 좋아하는 정부에 묻는다.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판정한 차벽은 합법인가? 최루원액 물대포를 얼굴에 직사한 것은 준법인가? 대기업에 수두룩한 사내하청, 비정규직 ‘쪼개기 계약’은 불법인가, 아닌가? 사내유보금 710조원을 금고에 쌓아놓고, 재벌 3~4세를 위해 골목상권까지 잡아먹는 ‘갑질’은 합법인가? 재벌 일가와 대기업 노조 중 누가 개혁의 대상인가? 대한민국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국민을 적으로 취급하고 생명에 위협을 가하며 나라의 주인으로서 가진 정당한 권리를 침탈하는 권력자에게 국민은 저항할 권리, 아니 저항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는 사실을 현 정권은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 물론 폭력적 집회·시위에 찬성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어떤 명분으로도 폭력은 배격돼야 한다. 그러나 어느 한편의 폭력만 거론하는 것은 폭력의 반민주성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것은 의도적인 편파적일 뿐이다. 공명정대하지 않은 국가운영은 국민 불신만 살 뿐이다. 정부는 민중대회를 열기도 전에 5개 부처 장관 명의로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불법·폭력 시위로 몰아갔다. 집회 때도 광화문 광장을 열어주면 될 것을 차벽을 쌓고 물대포를 뿌려 시위대를 자극했다. 정부야말로 이번 집회를 불법으로 몰아가기로 사전 준비를 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번 민중대회 참가자들의 핵심 요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 철회다. 그동안 정부는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사실 왜곡, 날조, 거짓말을 동원했다. 절대다수 국민의 반대도 묵살했다. 정부 주도의 공청회는 열지도 않았고, 의견 수렴한다면서 팩스를 꺼놓더니 급기야는 찬성 의견조작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번 민중대회는 소통 창구를 막은 정부에 직접 말해보려는 국민의 마지막 안간힘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답은 엉뚱하게도 ‘폭력시위 엄단’이었다. 정부는 왜 10만 여명이 넘는 시민이 거리로 나왔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민중대회 참가자 대다수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정부는 이들에게 성실히 응답할 의무가 있다. 현 정권은 시위대의 폭력은 부각하면서 60대 농민을 중태에 빠뜨린 경찰의 과잉진압은 거론하지 않았다. 또 시위진압 때 다친 경찰들을 위문하면서도 농민에게는 “회복을 빈다”는 의례적인 말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다.  민중대회 참가자도 세금을 내는 엄연한 국민이다. 일제식민지 상태가 끝나도 친일의식은 살아남았고, 독재시대가 끝나도 독재 추종의식은 별반 줄어들지 않은 현실이 서글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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