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규범에 따라 벌칙이 무서워서 따르는 조직의 성원들이 얼마나 자발적이며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엄격한 규칙이 무너질 때 한 순간에 그 조직의 기반마저 흔들릴 수도 있다. 그러기에 현명한 관리자는 엄격한 규범과 벌칙으로 조직을 통솔하는 대신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가운데 진정한 조직의 힘이 나온다는 것을 믿는다. 가정, 학교, 사회, 국가 등 많은 크고 작은 조직들은 나름대로의 도덕이나 법규가 있어 사람의 행동과 사고(思考)체계마저 일정하게 고정된 틀에 가두어 놓고 살아간다. 또 저마다의 이기심이라는 본능적 욕구를 무질서하게 펼쳐놓을 수 만 없는 것이 공동체이니 일정한 범위 내에서의 통제는 부득이하다. 이러한 틀에 익숙하게 수십 년 살고 보니 가장 자유로워야 할 개인의 사고(思考)체계마저 나이가 들수록 굳어져 감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반드시 법령과 규칙이 필요하다. 법령에 위반할 때 처벌도 엄격하고 단호해야 한다. 처벌하지 않으면 통제할 수 없으므로 나라를 다스리기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규칙과 법령만 늘어나면 백성들이 활력을 잃고 의욕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또한 법률의 허점만을 찾아내어 법망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마저 생겨난다. 이렇게 되면 점점 더 법률을 강화시키게 되고 사회문제가 극단으로 치닫는 등의 사회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학문을 한다거나 창의력을 기른다는 것은 인류 발전과 행복에 이바지하고 싶은 열망이 그 전제가 된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창의력의 밑바탕에는 인간 사랑이 깔려 있다.

 자신이 생각할 때 맞다고 생각되는 것이 모든 사람이 틀렸다고 주장한다면 혼자서만 반대의견을 내세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창조적인 일이란 틀에 박힌 사고가 아닌 상식이나 규범 또는 반대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아이가 남들과 다른 소리를 하며 자기주장을 펴기라도 하면 ‘비뚤어진 아이’라는 딱지를 붙여 문제아 취급을 하는 분위기 속에서 창의력이란 점점 멀어져 갈 뿐이다. 남과 똑 같은 의견 밖에 내놓지 못하는 아이가 실은 좀 부족한 아이인데 우리는 스스로 그 부족한 아이로 키우고 있는 셈이다. 그 아이의 의견이 다소 유치한 것이라 할지라도 조용히 듣고 난 다음 부모가 반론을 펴면서 열띤 논쟁을 할 줄 아는 자세에서 창의성이 싹이 튼다는 말이다. 아이가 부모의 의견에 반대하고 나섰을 때 무조건 건방지다거나 하여 나무랄 일이 아니라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바람직한 발상의 전환을 요한다는 말이다. 또 아이의 생각이 틀렸다고 판단되면 그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듣고 바로잡아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 부모의 태도에서 아이에게는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창조적인 머리로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창조적인 머리라는 것은 고정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부로부터 솟아나오는 힘으로 형태가 없는 소재를 어떤 구조물 같은 것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일 것이다.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회사에서 일하고, 푸른 초원 위에 지은 내 집에서 사는 것’ 같은 ‘평범한 것이 제일 행복’이라는 어른들의 일반적 가치판단과 창의성과는 먼 거리에 있다는 얘기다.

 말로는 쉬운 고정관념 탈피 또는 창의력이 어디서 오는지 살펴보면 먼저 문제의식이 그 발단이 될 것이다. 그 문제의식이란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이것 외에 사고의 유연성이 중요한 요건 중 하나다. 발상의 전환을 기대할 수 없거나 융통성 없는 성격 또는 정형화 된 사고방식의 틀에 얽매어 있는 사람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내기는 어렵다. 또한 문제 해결을 위한 집중력 있는 숙고와 연구가 뒷받침 되어야 할 일이다. 집중력과 성실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창조력에 있어서 생생한 체험이 최고의 연료가 될 수 있다. 이 연료는 마음속에 머무르며 필요할 때 솟아나오게 되어있다. 간접적인 경험이나 피상적으로 읽고 듣고 보는 것은 화력이 좀 약한 연료가 될 것이다. 발명왕 에디슨은 열두 살에 기차에서 사탕장수를 했고, 열네 살이 채 되기 전에 신문을 발행했고 청과물 장사도 하였으며, 전신국에서 통신업무도 보았다. 이처럼 젊은 시절의 생생한 경험이 그에게 풍부한 창조력의 연료를 제공한 것이다. 그는 2만 5천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나서야 전지를 발명하였다. 그의 미련함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나는 전지를 만드는데 성공하는 방법은 한 가지만 알고 있지만 실패하는 방법은 2만 5천 가지나 안다’ 고 답했다. 기차를 발명한 스티븐슨은 열여덟 살이 되도록 글을 배우지 못했다. 그는 고된 광산 일을 하면서도 밤늦도록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독학으로 읽기, 쓰기, 산수를 공부했다. 그는 석탄광에서 캐낸 석탄을 해안까지 운반하는 데 마차보다 힘들이지 않고 한 번에 몇 대씩 운반하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했다. 그 때부터 그의 기계에 대한 공부가 시작된 것이다. 1810년 7월 스티븐슨은 드디어 30톤을 실을 수 있는 화차 8대를 끌고 한 시간에 4 마일을 갈 수 있는 기관차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여행 또한 창조력을 키우는 데 풍부한 자원이 된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진 지역을 두루 돌아다니거나 이것저것을 기록한 자료를 섭렵하는 것도 상상의 날개를 펴는 데는 좋은 연료가 될 수 있다. 또 그 여행이 주제와 목적이 있을 때 더욱 뜻 깊은 여행이 될 것이다. 독서 또한 창의력을 위한 연료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원천이다.

 목표를 향한 노력을 촉구하기 위해 상벌을 남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상과 벌이라고 하는 당근과 채찍이 목표를 향해 노력할 마음이 생기게 하는 하나의 수단임은 부언할 필요가 없을지 모르지만, 상이란 괴롭고 하기 싫은 일이라도 그것을 이루고 나면 멋진 것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여 아이들로 하여금 의욕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며, 벌이란 잠시 동안의 편안함에 더 괴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여 열심히 공부하게 하는 방법이다. 둘 다 상반되는 방법이지만 이 당근과 채찍의 공통점은 한 결 같이 외적 동기를 부여하여 목표를 달성시키려는 작전이라는 점에 있다. 경우에 따라 이 방법이 적절할 때도 있으나 모든 경우에 있어서 일률적으로 성과를 기대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상을 받거나 벌을 피하는 것이 목적으로 바뀌면서 원래의 목표를 잃기 쉽다는 데 그 맹점이 있다는 말이다. 공부에 있어서 이 상벌작전이 되풀이 될 경우 오히려 지금가지 가지고 있던 흥미마저 잃을 우려가 있다. 공부를 싫어한다면 상벌 미끼보다는 공부를 싫어하는 근본 원인을 찾아내어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일이고, 나아가 ‘하면 된다’의 자신감을 심어주되 말만이 아닌 체험적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할 일이다. 이처럼 고정관념을 깨거나 창의력을 기른다는 일에는 수많은 장애가 가로놓여 있어 이를 제거할 부단한 노력을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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