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종 암
시사평론가
 해마다 8월이면 퇴직공무원들의 훈장잔치가 판친다. 그 잔치에는 일반국민은 없다. 부패공화국의 견인차 역할을 한 그들만의 잔치니까 지각 있는 국민들 사이에서는 개목거리 잔치라고 비웃는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이력에는 호박넝쿨처럼 더덕더덕 붙이나 외국과 달리 가슴팍에 달고 다니는 이는 없다. 국화인 무궁화가 냉대 받는 속에 그나마 뜨거웠던 광복 제70주년 2015년 8월의 함성도 서늘한 바람과 함께 사라져간다.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이 오면 그 열기가 삽시간에 식는 냄비처럼 잊혀 질까 겁난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의 착취와 공포 속 말발굽 아래에서도 새 생명은 태어났다. 그 해방둥이는 곧이어 터진 동족상잔 속에서 어린 동생을 업고 피난을 가야했다. 그것도 모자라 청산되지 않은 친일세력이 득세하는 꼴을 보며 배고픔을 안고 자유 수호라는 미명과 용병이란 비난 속에서 십자성 아래 머나먼 이국 땅 베트남 전선에 투입되었다. 용하게도 살아서 돌아온 그들은 또 허기진 누이의 배를 채워주기도 했다. 작금의 우리는 먼 세상을 바라보듯 그들의 헌신적인 희생 덕에 그 별을 보며 이웃집 드나들 듯이 동남아 여행을 즐긴다.
 가깝고도 먼 태국 그곳에 가면, 미얀마 국경의 길목인 칸차나부리(KanChaNaBuRi)에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가 있다. 1957년 데이비드 린 감독에 의해 제작된 영화 <콰이강의 다리>와 그 속에서 울려퍼지는 <콰이강 행진곡>은 아는 듯하다. 피에르 불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허구이지만 1942~3년에 미얀마 침탈을 위한 일본군의 철도 건설이 주제인 것은 사실이다.
 연합국 포로 1만6천여 명, 강제노역 4만9천여 명이 동원되어 매클롱 강 위에 세워진 일명 '죽음의 다리'에 세계인이 모여 든다. 주변에는 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 포로들이 묻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우리 선조들의 체취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전국에 산재한 골프장이 모자란 탓인지, 골프채를 산더미처럼 싸들고 인근의 유명 골프장은 찾아도 일제의 만행이 저질러진 이곳에 한국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로 그랬었다. 지난 1월 방콕에서 2시간 거리인 콰이강의 다리에 갔었다. 주변에는 연합국포로 묘지는 물론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전쟁박물관도 있다. 그 박물관에는 제2차세계대전 연합국 국기와 가해국인 일본의 일장기, 그리고 태극기도 있었다. 왜 태극기가 있는지에 대해 의아한 눈초리와 어설픈 영어로 현지인에게 물었다. 이 다리를 건설할 때 징용된 한국인이 있었고, 포로감시원이었던 그들은 악랄했다는 뜻밖의 전언에 놀랄 수밖에 없어 씁쓸한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다. 우리도 연합국에 대항한 가해자였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의 청년들은 그렇게 끌려갔었다. 조국을 빼앗긴 대한제국의 청년들이 일본군에 편입돼 연합국 포로를 가혹하게 다룬 완장 찬 삶과 위안부로 끌려가 성 노예의 삶이었던 게 부끄러워서일까. 그곳, 그 많은 세계 각국의 인종 속에서 한국인은 혼자였다. 반면 귀국하는 공항에는 그 많은 골프채 수하물 때문에 입국수속이 늦어지는 아이러니가 있었다.
선조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있었기에 오늘의 윤택한 삶이 주어지는지 모르는 게 안타깝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에는 그들이 있었다. 반면에 양극화의 그늘에서 생을 포기하는 해방둥이는 물론 서민들이 삼복더위가 더해 기아선상에 놓였었다. 이러함에도 소위 기득권세력은 더 가지려고만 한다.
 이들은 이런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서민을 위해' 란 콧노래로 예찬하면서도 궁민(窮民)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국민을 팔고 서민을 파는 전주곡은 신물이 난다. 해방 70주년을 맞아 기업을 살린다는 미명하에 범털들이 특사로 석방되었다. 이들은 대오각성하고 나눔의 문화에 누구보다 이바지해야 한다고 기도해 보지만 어림없어 보인다. 왜냐면, 신생 대한민국에서 대기업들의 태동은 헐벗은 굶주림 속에서도 국가의 지원과 국민들의 성금으로 토대를 닦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들의 어머니와 오누이들의 머리카락까지 잘라 보탰다. 하지만 낙수효과가 없다보니 콩고물도 없다.
 그러면 일부라도 사회 환원이 있어야 하는 게 인간의 도리다. 메뚜기도 낯짝이 있는 법이니 이기가 아닌 공존의 늪에서 함께 하자는 것이다. 그 8월은 가고 9월을 맞이한다. 다음해 8월에는 진정한 애국자인 선조들의 후손과 민초들에게도 훈장을 수여하고, 삼계탕 한 그릇이나 소고기 한 근이라도 하사하는 대한민국을 기대한다.


 *정종암/ 시사평론가. 문학평론가. 문필가. <저서>로는 문학서와 정치평론집인『내가 사는 이 좋은 세상에』, 『 보통사람의 아름다운 도전』, 『내가 이 세상에 있어 당신이 행복하다면』,『갑甲을乙정政변變 2015 대한민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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