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종 암
시사평론가
 그간 뜻하는 바 있었으나 결정이 미루어지고, 저서를 출간하느라 독자들을 뵙지 못했다. 위 제목 중 <갑甲을乙정政변變 2015대한민국>은 오는 9.1일에 출간돼 전국 서점에 시판되면서 9.17일(목) 15시 서울 관악구민회관 홀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 필자의 네 번째 저서다. 거대 출판 권력에 종속되지 않은 채 10년 반 동안 써내려간 사회적 담론이자 비평에세이 중에서 골랐다.
 일곱 개 장과 부록으로는 무궁화에 대한 칼럼, 공정사회에 대한 패널 원고, 고대4국(3국X)간의 암투로 인한 중원을 잃은 고대사에 대한 개인적 소고 3편을 담았다. 344페이지 분량(정가 17,000원)에 출판사 자치와 협동에서 맡았다. 탈고하는 시간만 6개월이 더 걸리다보니 쉽게 아무렇게나 자서전류 책을 내는 얼간이 정치패거리들이 경이스럽기도 하다.
 저서에 대한 추천서는 구본홍 MBC앵커이자 YTN사장과 법무법인 서광 박종환 대표변호사가 썼다. 고향 서점에도 납본할 것이나 출판기념회는 다른 지역에서도 12월쯤 한 번 더 개최할 공산이 크다. 그때는 기존 발간된 정치평론집 후속편이 될 수도 있겠다. 다음 주에는 보도 자료와 함께 전국에 산재한 지인, 동문, SNS친구, 향우 등에게 초대장을 발송할 계획이다. 막 출판사에다 마지막 디자인에 대해 수락을 한 후 다음 글을 이어가고자 한다. 시간관계상 테마별로 논한다.

 *X사모, 이제 그만 불렀으면 좋겠다. 2012년 승리를 쟁취하면 해체키로 했으면 이행해야지, 또 나를 그 동우회에까지 포섭하려 할까. 기나긴 세월, 굶어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계속적인 딸랑이를 하라고? 또한 내 인생 멋은 어데서 찾고 보상은 어데서 받으란 말일까. 인간이란 그 자리에 계속 머무는 것도 좋을 수 있지만, 내려올 순간도 필요하더이다. 과실은 어인 놈들이 다 차지하고, 똥 닦아 주고 국개원 들처럼 밥 한 끼는커녕 시계라도 하나 받았던가. (2015.8.26)

 *이번 군사분계선 북괴(북한)의 지뢰도발사건에서 전역을 미루는 장병이 속출함에, 애새끼 병역미필이거나 온갖 머리 굴려 멀쩡한 신체에도 불구하고 공익요원으로 빼돌린 청와대를 비롯한 고위공직자와 대기업 총수들, 그리고 그 애새끼들은 오금이 안 저릴까. 또한 입으로만 애국을 논하는 기득권층 애국놀이패, 좌우논리에 전도돼 편 가르기로 인한 분열 위에 권력을 쫒는 부나방들은 짬을 내 동서울터미널에서 전방을 오가는 젊은 장병들을 보라. (2015.8.26)

 *"국회의원 최소 360명까지 늘려야 한다." 고 250개 시민단체가 정치개혁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이들의 급(級)을 떨어뜨려 봉사하는 국회가 되도록 하면 기를 쓰고 원내 입성을 노리지 않을 거라 본다. 단 현세비 등을 절반으로 낮추고 그 대신 절반의 비용으로 600명으로 늘리자는 것이다. 그러면 현 세비 등으로 300명을 증원해도 비용은 그대로라는 논리다. 물론 지방의회가 출발 시 무급봉사였다가 슬그머니 유급으로 전환했다. 이를 막기 위한 제도적인 법의 장치가 우선 필요하다. (2015.8.25)

 *이른 아침 기상이다. 먹물 좀 먹고 이 정권에서 한 자리 한 여자가 있다. 개인적으로도 한때 같은 정당에서 활동을 같이한 바 있다. 난데없이 극우 행동으로 극좌들의 분노를 사게 해 편 가르기 발언이다. 나는 이렇게 응수한다.
 소위 우빨 짓에 좌빨 짓을 부추기는 쌍연(년?)이나, 사상과 철학이 다르면 오만 욕을 갖다 대는 럭셔리한 극우 할배나 좌빨 할매나 초록동색임을 보면서 아침을 연다. 대가리(?)에 뭐가 들었는지 개뿔 지성녀(知性女)라. 너희들만 보면 없는 혈압이 오른다. 이번 남북 간 다툼을 보면 힘을 합쳐도 열강 속에 대한민국호가 살아날까 말까 한데, 힘없는 민초들 생각은 않고 그릇된 애국심을 강조하는가. 내 사고에 반론하고프거든 하라. 단, 만에 하나 비겁한 논리비약에 욕설로 응대하면 친일가계도까지 파겠다. 권력 쓰레기에 딸랑이로 갑질 하는 에~라~기 민충이 같은 것들! 혈압 올라 언어순화가 안 되는 내 아침도 씁쓸하다. (2015.8.25)

 *1945년, 일본 제국주의의 착취와 공포 속 말발굽 아래에서도 새 생명은 태어났다. 그 생명은 동족상잔 속에서 어린 동생을 업고 피난을 가야했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세력이 득세하는 꼴을 보면서 배고픔을 안고 '자유 수호'라는 미명과 '용병'이란 손가락질을 받으며 십자성 아래 머나먼 이국 땅 베트남 전선에 투입되었다. 용하게도 살아서 돌아온 그들은 또 허기진 누이에게 배를 채워주기도 했다. 먼 세상을 바라보듯 작금의 우리는 그들의 헌신적인 희생 덕에 그 별을 보며 이웃집 드나들 듯이 동남아 여행을 즐긴다.
 더구나 태국에 여행들 많이 간다. 미얀마 국경을 맞댄 칸차나부리(KanChaNaBuRi)에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가 있다. 우리는 1957년에 데이비드 린 감독에 의해 제작된 영화 <콰이강의 다리>와 그 속에서 울러 퍼지는 <콰이강 행진곡>은 아는 듯하다. 피에르 불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허구이지만 1942~3년에 미얀마 침탈을 위한 일본군의 철도 건설이 주제인 것은 사실이다. 일본군 내 한인사병들은 잔인했다.
연합국 포로 1만6천여 명, 강제노역 4만9천여 명의 동원 하에 매클롱 강 위에 세워진 일명 '죽음의 다리'에 세계인이 모여든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전국에 산재한 골프장이 모자란 탓인지, 골프채를 산더미처럼 싸들고 인근의 유명 골프장은 찾아도 일제의 만행이 저질러진 이곳에는 한국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곳에는 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 포로들이 묻혀 있다. 우리의 조상들도 끌려갔었다. 빼앗긴 대한제국의 청년들은 일본군에 편입돼 연합국 포로를 가혹하게 다룬 완장 찬 삶과 위안부로 끌려간 성 노예의 삶이 부끄러워서인가. 광복 제70주년, 진정한 애국자에게 쇠고기 한 근을 하사하라.(201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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