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어느 작은 출판사를 겸한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 서점에 어떤 신사가 찾던 책을 고르더니 책값을 물었다. 이 책을 얼마지 ?‘ ’예 이만 원입니다‘ 그러자 그 손님이 책값을 좀 깎아 달라고 했다. 점원은 한 푼도 깎아줄 수 없다고 했지만, 그 손님이 좀 비싸다고 생각했던지 사장을 만나게 해 달라고 청했다. 사장이 몹시 바쁜 줄을 알고 있는 점원은 신사에게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 말했지만 잠깐이면 되니 만나게 해 달라고 간청하여 결국 사장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값을 좀 깎아줄 수 있겠습니까 ?‘ ’이만 오천 원 내어야하겠습니다‘ 손님은 사장이 말을 잘못 알아들은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책값을 깎아주기커녕 부득부득 올린 값을 요구하니 화가 치밀 수밖에 없었다. ’아니, 책값을 좀 깎아 달라고 하는 데 왜 점점 책값이 더 올라 갑니까 ?‘ ’지금은 이만오천원에 팔아도 손해가 납니다‘. ’여보시오 농담 하십니까 ? 도대체 꼭 받아야 할 책값이 얼마요‘ ’지금은 삼만 원 받아야 하겠습니다.‘ ’여보시오 같은 책을 가지고 값을 깎아달라는 데 자꾸만 오르기만 하니 어찌된 셈이오 ?‘ ’손님, 시간은 돈보다 귀한 것인데 소님께서 자꾸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도록 하였으니 책값에 시간의 값을 계산하는 게 마땅하지 않습니까 ?‘ 손님은 말뜻을 이해하고 삼만 원을 내밀자 사장은 받은 돈 중에서 만원을 돌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저의 말을 알아주시고 시간의 값을 계산하시니 감사의 뜻으로 책을 이만 원에 팔겠습니다.‘ 이 서점의 주인은 미국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이고 피뢰침을 발명한 과학자이기도 한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이다.

 생물학자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체의 형질이 시간이라는 변수를 매개로 어떻게 변모해 가고 있는가를 설명해 주는 학설이다. 바로 그 진화가 오랜 시간을 두고 사람을 통해 나타나기도 한다. 진화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우리에게 참다운 진화를 가로막아버리는 질서의 변화를 진화인 것으로 착각하는 과오가 우리 자신도 모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가 믿는 진화는 그 광명이 우리의 발길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머나먼 길 위에 불을 밝혀 준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인간에게 오는 진화를 기술적, 과학적 혹은 예술적인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인간에게 오는 이 진화는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안내해 줄 뿐 한 군데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앞을 보고 나아가려는 인간에게는 오직 진화가 있을 뿐이다. 변화이든 진화이든 인생항로 자체가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느껴질 때 우리는 상황이 바뀌기를 기대하게 된다. 그 중 가장 긴요하고 효과적인 변화, 즉 자기 자신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점에 생각이 미쳐야 할 일이다. 참된 변화란 외계의 물질적인 변화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관념이나 신념, 기대 등에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는 한 순간도 가만있지 않고 온갖 요인에 의해 항상 변화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소중한 시간이란 개념은 바로 코앞에 다가 와 있는 현재만이 우리 인간이 쓸 수 있는 시간이고 이 시간이 쌓이거나 흘러갈 때 이를 과거 또는 역사라 부르기도 한다. 개인에게도 누구나 과거의 업적이 쌓여 오늘의 내가 있게 해준다. 인간에게는 나의 좋았던 과거가 먼저 떠오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좋지 않았던 나의 과거를 떠올리기 쉽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자존심이라는 것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 대한 업적과 경험에 대한 평가의 차이로 오늘의 나를 제대로 못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되짚어 보아야 할 일은 사람의 과거가 경력이 아니라 현재의 능력으로 판단되어야 함을 잊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 변변치 않았으나 피나는 노력으로 현재에 괄목할만한 발전과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면 현재의 모습으로 바르게 평가해 주어야 할 일 말이다. 과거의 화려한 경력에 집착한 우월감에 젖어있는 사람은 현재의 형편이나 실력이 부족해도 그의 자존심이 오늘의 그를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기 쉽다는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남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를 한 두 가지씩은 안고 살아간다. 창피했던 일, 거짓말 했던 일, 지금의 직위나 수준에 걸맞지 않는 행적 등 사소한 일에서부터 중대한 것 까지 다양한 모습의 과거사들이 문득문득 떠올라 혼자 쓴 웃음만 짓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달라진 내 모습이 이미 과거의 내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부끄러웠던 과거 때문에 오늘이 자유롭지 못하고 위축되어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과거는 단지 과거로 간주해 버리고 적극적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삶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과거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은 그저 안타깝기만 한 삶일 수밖에 없다. 과거에 좋았던 기억은 추억으로 남고 좋지 않았던 기억은 갚아야 할 빚으로 남겠지만, 과거에 집착한다는 것은 과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무리 회상하고 떠올려도 그냥 과거일 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과거가 오늘을 살아가는 거울이 되고 나침반이 되기도 하고, 선인들의 경험이나 지혜를 통해 보다 나은 내일을 설계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과거는 지금 하고자 하는 일에 편견을 스며들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할 일이며, 과거를 불문한 현재 나의 길을 올바르게 잡아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다. 과거사에 집착해서 오늘의 일에 장애가 되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암초가 되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자신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마저 그냥 흘려보내어서는 곤란한 일이다. 우리 자신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는 항상 기억해야 할 일이듯, 우리 눈에 완벽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그런 약점은 있다. 자신의 약점을 잘 알면서도 그것을 사랑한다면 곧 불행을 즐기는 태도일 뿐이다. 자신의 약점에 열정적으로 이끌린다면 타인에게는 혐오감만 더할 뿐이니 자신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용감하게 벗어나야 할 일이다.

 과거는 오늘의 거울이나 초석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더 이상 오늘의 일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오는 나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채우기 위해 오늘은 살아야 하고, 마음에 갚아야 할 빚이 있다면 그 빚을 오늘을 살아야 할 일이다. 자신의 잘못된 과거는 스스로 용서하고 흐르는 세월 속에 흘려보내야 할 일이고, 잘못된 과거도 나의 인생이고 잘된 과거도 나의 인생임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과거에 집착할 때 과거의 일이 투영되어 현재와 미래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더구나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저질러진 아픈 과거나 명예롭지 못한 과거에 사로잡힌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걸림돌이 될 뿐이다. 성공했던 과거에 집착하는 것도 오늘을 오늘이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이며 불행했던 과거에 집착할 때 지금 쌓아가고 있는 성공을 허물어뜨릴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상대방뿐만 아니라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때 과거의 일들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단지 내 마음에 스쳐지나가는 바람일 수 있고 그 바람 때문에 내가 이성을 잃고 폭풍우 속으로 나를 던져 나의 자존심을 난파시킬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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