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탕, 탕, 탕, 탕, 탕, 탕,’ 드디어 민족의 숙적 이또오는 쓰러졌다. 하르빈 역두는 순식간에 수라장으로 빠져들었다. ‘범인을 잡어라’ 하고 떠드는 사람들로 법석댔다. ‘대한독립 만세, 만세 ’. 천지를 흔드는 것 같은 안중근의 만세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동지. 성공하셨소. 축하하오’.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세 동지 마침내 원흉을 넘어뜨렸소’ 시베리아의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초겨울의 하르빈 역두에는 이 겨레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한 원한의 총탄이 마침내 이또오의 가슴을 꿰뚫은 것이다. 한 방은 오른쪽 폐부에, 다른 한방을 복부에 명중시키면서 한국 침략의 원흉 이또오 히로부미가 드디어 쓰러진 것이다. 이또오는 하르빈에서 한국 병합문제에 대하여 러시아의 재무대신인 코코프체프(Kokovtsev)의 양해를 구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안중근에 대한 재판은 관동도독부 여순 지방법원에서 재판장 마나베쥬우조오(眞餶十藏), 검찰관 미조부찌 다까오(溝淵孝雄) 주관하에 열렸다. ‘피고는 작년(1909년) 10원 26일 오전 아홉시 지나서 하르빈 정거장에서 추밀원 의장 이또오 히로부미공을 총기로 살해하고 그 수행원 총영사 다까가와 도시히꼬, 궁내대신비서 모리따이찌로오, 남만철도 이사 다나까 세이지로오를 부상시켯다는데 이 사실을 인정하는가 ?. ’그렇다. 나는 그들을 저격했다‘. ’울라디부스톡 근처에서 3년간 있었다는데 시종 그 목적 때문이었나 ?’. ‘울라디부스톡에 있을 때에는 민족적 사상을 고취하기 위하여 국권을 회복할 때 까지 농업이든 상업이든 각자 천부의 직업에 정진하여 어떤 노동이라도 기꺼이 참고 견뎌 국가를 위해 일해야만 한다고 동족간에 유세하며 다녔다.’ ‘이또오공이 탄 열차가 하르빈 역에 도착할 때 어떻게 접근했는가?’. ‘이또오는 기차 역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있었고 또 누가 이또오인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잘 살펴본 끝에 군복을 입은 사람이 아라사인이고 사복을 입은 사람이 이또오라고 생각했고 그가 군대 앞을 통과할 때 나도 그의 뒤를 따라가서 이또오가 다른 외국 영사단의 2.3인과 악수하고 막 돌아설 때 군대 사이에서 쏘았다.’ 국내 조정에서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반역자들이 엄청난 모의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었다.
 일찍이 황해도 해주에서 나서 14세에 신천(信川)에 와 있던 프랑스 신부 밑에서 천주교 신자가 된 다음,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뒤엔 강원도에 들어가 의병으로 활약하다가 드디어 민족의 원흉 이또오 히로부미를 쓰러뜨린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밝고 맑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국민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조선(朝鮮), 고구려(高句麗), 신라(新羅), 백제(百濟), 발해(渤海 =大震國), 고려(高麗), 대한민국(大韓民國)등 모든 국호가 모두 태양을 숭배하는 천손족(天孫族)임을 선언하고 있다는 데서도 역력히 나타나고 있다.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인간선언 또한 광명선언의 한 표현이고 남을 생각할 줄 알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자는 ‘함께’ 문화의 표상이라는 말이다. 태양과 같이 밝고 따뜻한 평화가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기원하면서 살아 온 것이 얼른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생명의 끈이라는 말이다. 광대무변한 천지(天地)에 못지않게 크다는 것을 말할 때 우리는 온 ‘누리’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이 또한 이 ‘누리’는 무한히 밖으로 뻗어나간다는 뜻이 아니라 온 천지 우주를 포근히 감싸 안아 준다는(內包) 의미이고 ‘둘레, 둘러앉다’ 등과 같은 계열이기도 한 ‘누리’에서 ‘ㄴ'이 떨어져 나간 ’울(fence), 우리(fold), 우리(we)와 같은 말은 우리가 모두 한 울타리 안에 갇혀서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외국인에게 ‘우리 집사람(my wife)’을 소개할 때 글자 그대로 ‘우리 집사람(our wife)' 했다면 아마 기절초풍하게 어리둥절할 것이다. 너의 집사람도 되고 나의 집사람도 되는 공동의(our) 집사람이 되는 셈이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바로 이를 위해 '우리’의 ‘울’ 문화가 있는 것이고 너와 나는 분리된 따로가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 속에서 ‘우리 둘 중’ ‘집사람’임을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의 정의(定義)가 설명되고 있다는 말이다.
 시키는 사람만 있고 직접 일을 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All chiefs and no Indians)는 자신은 물론 그가 몸담고 있는 울타리마저 망가뜨리고 있다는 사실은 잊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처럼 우리 또한 각 분야의 엘리트(elite)들을 필요로 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엘리트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원래 엘리트란 ‘밖’이라는 뜻의 e(out))와 ‘가려 뽑다’는 뜻의 lect(choose or gather)가 결합된 말인 ‘선택하다(select), 선거하다(elect)' 등과 같은 계열임을 말해준다. 뽑힌 엘리트는 ’우리의(our)’의 ‘우리(fold)’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우리’ 안에서 ‘우리’만의 이익을 생각하고 ‘우리’만을 위해서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이며, 남들이 하지 않거나 못하는 어렵고 궂은일을 자신의 손으로 해내겠다고 나선 사람인 것이다. 나아가 국제경쟁에서 이겨나가는 강력한 나라 건설을 위해 모든 분야의 기술향상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나서야 할 일이고, 이를 위해 모든 인력과 자원을 놀리지 않고 힘껏 가동할 일이다. 또한 일에 대한 충분한 이익이 보장 될 필요가 있다는 점도 빼 놓을 수 없다. 수많은 분야의 많은 우리의 엘리트들이라면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표본 중 표본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는 체 하면서 뒷짐 지고 게으른, 자칭 엘리트가 있다면 엘리트 자격은 고사하고 ‘우리의(our)’ ‘울타리(fence or wall)’속에서 같이 숨 쉬며 살아 갈 자격조차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늘 게을러지려는 자신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말 것이며, 노력 없는 지름길 따위는 생각도 맑아야 할 일이다. 온 누리의 우리국민 모두는 모두가 열성적인 한 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안을 때 까지 우리의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져가야 할 일이다.

 남이 보건 안 보건, 하는 일이 크건 작건 간에 순리에 따라 행하며, 시행착오가 나더라도 항상 다시 우뚝 설 수 있는 그 엘리트 말이다. 말도 안도는 소리라고 할만한 ‘자신의 행복을 위한다면 남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라’ 가 ‘우리’의 답임을 말해준다. 우리는 생활이 유지될 수 있는 안정된 수입과 자산으로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할 일이다. 이 때 비로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나쁜 곳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각자 천부의 직업에 정진하여 어떤 노동이이라도 기꺼이 참고 견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라’는 안중근 의사의 간절한 소망이자 우리민족에게 보내는 간곡한 당부는 우리에게 게으르지 말고 각자의 생업에 열중하라는 당부이다. 자신처럼 적을 쓰러뜨리는 애국투사가 되라고 외친 것이 아니다. 무엇이 우리자신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길인지 생각하라는 그 고귀한 목숨을 건 당부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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