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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의 四門遊觀과 솔로몬왕의 傳道書를 통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과 인간에게 던지는 Mes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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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16  21: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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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덕 현
전 초등학교장
 1. 싯다르타 편

 四門遊觀(사문유관)을 간단하게 말하면 부처님이 싯다르타 태자 때에, 가비라성의 동ㆍ남ㆍ서ㆍ북 4문으로 나가 다녔는데, 동문에서는 늙은이를 보고, 남문에서는 병든 이를 보고, 서문에서는 죽은 사람을 보고, 북문에 나가서는 승려를 보고서 드디어 출가할 뜻을 가진 것이라고 특별한 의미가 없는 보편화된 상식적인 뜻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필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나타내어 독자들의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어느 특정 종교에 지우치거나 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이들이 깨달음의 길로 가는 방향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우리 인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인간들의 행복한 삶이 어디에서 오는지도, 또한 인간들의 욕망의 끝은 무엇인지도 밝혀보고자 한다. 불교의 성자 싯다르타는 왕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삶의 이치를 깨달았고 기독교의 지혜자 솔로몬왕은 유대의 신 여호와의 축복으로 지혜를 얻었지만 왕의 권세를 모두 누린 다음에 삶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점이다. 엄청난 차이다. 그 평가는 독자들의 몫이다. 그럼 먼저 불교의 성자 싯다르타의 깨달음에 대해 불경을 근거로 실제를 밝히며 그 이후 지혜자 솔로몬왕의 깨달음을 구약성경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다만 싯다르타와 솔로몬의 다른 부분에 대한 논의는 가급적 억제하고 깨달은 부분에 대해서만 독자들과 담론을 나누고자 한다. 먼저 싯다르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는 인도 북부 카필라성  정반왕(精飯王)의 아들로 태어나 하루는 부왕과 함께 농촌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농부들이 힘겹게 쟁기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야 국왕에게 세금을 바칠 수 있다는 농부의 말에 싯다르타는 왕궁에서의 호화로운 삶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의 고통위에서 자신의 편안한 삶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가 불행하고 하나가 풍요롭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가 빈곤하고 하나가 편리하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가 불편해야 하는 현실, 농부가 소를 마구 때리며 일을 시키니 소가 구슬피 울며 일을 하고, 쟁기로 흙을 파니 지렁이와 같은 벌레가 꿈틀거리고  그러자 새들이 날아와서 그 벌레를 잡아먹기 위해서 서로 싸우고, 처참하고 냉엄한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왜 하나가 살기 위해 다른 하나는 죽어야 하는지 다 같이 행복하게 살 수는 없는지 의문에 쌓이게 된다. 이것이 싯다르타의 유명한 四門遊觀(사문유관)의 출발점이 된다. 싯다르타가 동쪽 문으로 나아가 늙은이를 보았을 때의 신하들과의 대화이다. “저것은 무엇인가? 어째서 저렇게 고통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가? ” 라고 신하에게 물었을 때 “저 자는 노인이며 늙어서 저렇게 된 것입니다.” “세간 가운데에는 무엇을 늙었다고 하는가?” “무릇 늙었다 함은 기력이 쇠하고 정신이 혼미하여지며 모든 기관이 점점 쇠퇴하여 음식을 소화하지도 못하고 뼈마디는 서로 어긋나게 되며  눈은 흐리고 귀는 어둡고 문득 돌아서면 곧 잊어버리고 하찮은 말을 들어도 갑자기 슬퍼지며, 앉거나 서는데 있었어도 혼자서는 힘이 들고, 눕더라도 편하지가 않습니다. 노인이 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가족에게 구박을 받으며, 의지할 곳을 잃고 남아있는 목숨도 오래지 않아서 낮에나 혹은 밤에 죽게 됩니다. 이것을 늙음이라 합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또다시 신하에게 질문했다.
 “그렇다면 이 사람만 홀로 이렇게 된 것이냐? 아니면 일체 세간들이 다 그런 것이냐?” “태자여! 일체 세간의 중생도 다 이렇게 되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이 몸도 또한 역시 장차 이 늙는 일을 받게 되는가?”
 “그렇습니다. 태자시여. 귀하고 천함은 비록 다르지만 무릇 태어남이 있으면 이처럼 늙는 법을 면할 수가 없나이다. 사람의 몸에는 처음부터 이러한  늙고 쇠퇴한 상을 갖추고 있으나 다만 나타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싯다르타는 신하에게 말하였다. “내 몸 또한 늙게 되어 이러한 추하고 더러운 쇠악상을 면하지 못한다니 나는 이제 왕궁의 동산 숲에 가서 놀고 웃을 겨를이 없도다. 빨리 수레를 돌려 궁으로 돌아가라. 내 이제 마땅히 어떤 방편으로든 이 괴로움을 멸할 도리를 생각해 보리라.” 그 노인의 머리와 귀밑과 수염은 서리같이 쇠하였고 검은 얼굴은 주름으로 구겨져 있었으며 눈에는 눈물 코에는 콧물을 흘리고 이는 모두 빠져 있었다. 온 몸은 검게 주름지고 살빛은 검은 점으로 얼룩져 있었으며  오직 뼈와 껍질뿐 살이 없어서 늘어진 목 줄기가 밑으로 쳐진 것이 마치 소의 염주 끝이 늘어진 것과 같았다. 입은 옷은 다 떨어져서 몸을 제대로 다 가리지도 못하였으며 가래가 끓고 숨이 차서 목 안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마치 톱질하는 것과 같았고 사지는 부들부들 떨고 숨이 끊어질 듯 할딱거렸다.  허리는 굽어 삐딱거리고 걸으며 몸이 시들고 기운이 쇠하여 걸음이 안전치 못하며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서 걷다가 제풀에 넘어지고 혹 붙들며 겨우겨우 싯다르타 태자 앞을 걸어갔다. 그런 다음 남쪽 문을 향하니 길 가에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병자를 만나게 된다. 병자의 몸은 야위어서 피골이 상접하였으며 배만 유독 불렀고 안색은 누렇다 못해 푸르렀다. 기침을 하고 구역질을 심하게 하였으며 모든 뼈마디는 격심하게 쑤시고 쓰레기 더미 위에 버려진 체 아홉 개의 구멍에서는 썩은 물이 흐르고 대소변을 그대로 싸고 그 위에 앉았거나 누워있어 악취가 심했다. 눈으로는 사물을 보지 못하고 귀로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거칠게 숨을 쉬며 손과 발로 허공을 더듬으며 신음하며 부르짖되 ‘아버지! 어머니!’ 하고 애타게 찾으며 ‘내 아내여! 내 아들아!’ 하고 슬퍼하고 그리워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서쪽 문을 들어서며 죽은 자를 보게 되며 죽은 자가 어떻게 변하여 가는지 살펴보게 된다. 죽은 자가 정신을 떠나 육신이 흩어지려 하면서 혼신이 편안하지 못하여  바람 기운이 떠나가서 숨이 끊어지고 불기운이 꺼져서 몸이 차갑게 식고 빳빳하게 구겨지며 다시는 아는 것이 없어진다. 십 여일이 지나기 전에 살이 허물어지고 피가 멈추며 온 몸이 팅팅 부풀고 문드러져 썩은 냄새가 나며 취할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리곤 몸 안에 벌레가 있어서 육신을 뜯어먹으며 힘줄과 근육은 짓무르고 뼈마디는 어긋나고 해골 등. 갈비, 팔, 지라, 종아리, 발, 손가락이 각각 서로 제자리에서 떨어지게 된다. 개다가 나는 새나 산짐승이 다투어서 그것을 뜯어 먹으며 썩어서 악취를 풍기고 사람의 형태를 잃는다. 또다시 북쪽 문으로 향하자 그곳에서  수행자를 만난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태자여! 저 사람은 사문이라 하며 출가한 사람입니다.” 태자는 또 물었다. “출가 사문이란 어떤 행을 하는 사람이냐?”
 “출가 사문이란 세상의 악한 법을 떠나서 선한 법을 행하고 욕망으로부터 모든 근본과 자신의 집착을 잘 조절하여 모든 두려움을 없앴으며 일체 모든 중생들에게 큰 자비를 내어 평등행과 보시 행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일체 모든 중생들에게 큰 자비를 내어 모든 중생들을 공포로부터 구제하며, 모든 중생을 살해하지 않으며, 모든 중생을 잘 보호하고자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이러한 사람을 출가 사문이라 하나이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출가 사문이 되었는가?” “내가 일체 세간의 모든 일을 보매 모든 것이 다 고통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관하고(살펴보고) 나서 일체 세속의 모든 영화와 안락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권속들을 떠나 영원한 안락을 구하고 ”어떤 방편을 행하여 모든 고통 받는 생명을 살릴 것인가?“ 하는 길을 구하고자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에 족함을 알고 언제나 맑은 행을 닦고 굳건하게 계율을 지켜서 번뇌를 등지고 감관과 의식을 조복 받아 망령된 생각을 내지 않고 진실한 행을 법답게 수행하여 일체의 모든 생명을 고통에서 구하고자 합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하였으며 출가하여 깨달음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하여 부처가 되었다.(참조: 불경. 불본행집경)

 2. 솔로몬 편

 솔로몬(Solomon:Shlomo, 히브리어: שְׁלֹמֹה 쉴로모)은 구약성서에 기록된 이스라엘 왕국의 제3대 왕으로서, 기원전 971년부터 기원전 931년까지 유다와 이스라엘의 민족을 다스린 것으로 여겨진다. 솔로몬 혹은 샬로모라는 말은 ‘평화’라는 뜻을 갖고 있다. 다윗 왕의 아들로 이집트 왕녀와 결혼하여 동맹을 맺고, 국내 건설과 국경 방위에 힘썼다. 예루살렘 신전을 비롯한 장대한 도시를 건설하는 한편, 외국과의 통상을 맺어 이스라엘 전성기를 이루어 '솔로몬의 영화'라고 칭송되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한없이 많이 주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의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그는 3,000개의 잠언을 말하였고 1,005개의 노래를 지었으며 또 레바논의 백향목에서 부터 담벽에서 자라는 우슬초에 이르기까지 모든 초목에 대하여 논하였으며, 또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해서도 논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지혜를 들으려고 솔로몬에게로 모여 왔으니, 그들은 그 지혜에 관한 소문을 들은 모든 왕들이 그 지혜를 듣고 배우려고 솔로몬에게 사람을 보내기도 하였다. (참조: 구약성경 열왕기상) 필생의 꿈이었던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역사가 시작되며 솔로몬 왕은 나무 베는 벌목공 3만 명과 운반인부 7만 명과 돌 캐는 채석인부 8만 명을 동원 시키고 감독하는 관리가 3천300명이나 된다. 도합 18만이 넘는 인원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대공사에 동원되었고 7년 6개월에 걸친 대역사 끝에 화려한 솔로몬의 성전이 완공된다. 하나님의 전은 돌로 건축된 다음 백향목과 잣나무 재목으로 입혀지고 황금으로 화려하게 입혀지고 장식되며 그야말로 꿈같이 아름답고 멋진 여호와의 성전이 완성되게 된다. 하나님의 전은 돌과 백향목과 전나무로 건축되고 온갖 기명과 기구, 천사들의 모양과 종려와 꽃 등, 장식들이 황금으로 덮이고 황금과 온갖 보석으로 꾸민다. 솔로몬은 자기가 살 왕궁도 건축하였다. 이 왕궁을 완공하기까지는 무려 13년이나 걸렸다. (참조: 구약성경 .열왕기상)
 또한 "왕후가 육십 명이요 비빈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참조: 구약성경. 아가서) 솔로몬을 시중드는 시녀가 무려 1,000명이나 되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참조: 구약성경. 열왕기상) 솔로몬의 궁전 건축은 우선 건축기간이 13년으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소요된 기간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궁전의 높이는 하나님의 성전과 똑 같은데 넓이는 4 배가 넘고 거기다 성전보다 좀 더 큰 규모의 낭실과 전을 3 개를 더 건축하게 된다. 결국 왕궁의 건축규모가 하나님의 전 건축 규모의 일곱 배가 넘는 셈이다. (참조: 구약성경. 열왕기상) 솔로몬 왕은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다.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었다. 왕은 후궁이 700명이고 첩이 300명이었다. (참조: 구약성경. 왕상).  솔로몬이 젊은 시절 전무후무한 영화를 누렸다.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고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이었지만 그가 늙어 인생 말로에서 깨달은 것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참조: 구약성경 .전도서). 세상만사 헛되다는 것이다. ‘헛됨’의 원어는 ‘숨’으로서 쉽게 사라지는 걸 말하는데 즉 인간의 삶, 세상일에 어떠한 의미나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자연은 목적 없이 되풀이되고 인간사도 새로운 것 없이 반복된다는 의미다. 이 이야기 뒤에는 ‘과연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그 의미와 답을 찾으려는 처절한 물음이 들어 있다. 그리고 “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내 마음에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었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기도 하였으며 은금과 왕들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참조: 구약성경 .전도서)

 지혜자 솔로몬은 행복해지기 위해 술에도 빠져보고 각종 향락에도 몰두하는 등 부귀와 쾌락을 즐겨 보았으나 결코 행복해지지 않음을 알았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혜로운 자도 죽음 앞에서는 어리석은 자와 다름이 없고, “제 아무리 애를 태우며 수고해 본들 돌아올 것이 무엇이냐”는 생각이다. 일시적인 세상 것이 아닌, 하느님 안에서 삶을 즐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그리고 “ 하느님의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 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 이에 내가 희락을 칭찬 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해 아래서 나은 것이 없음이라.”(참조: 구약성경. 전도서) 하나님의 하는 일을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말이며 사람의 운명이 똑같음을 계속 지적한다. 다 같이 죽을 운명에 처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살아 있음이 무척 소중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복대로 살기를 권장한다. 그걸 솔로몬이 늙어서 깨달은 것이다. 우리는 위 두 성자의 깨달음을 깊이깊이 새겨서 우리 인생의 이정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이며 우리들의 당면한 문제이다. 우리의 죽음은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되어있다.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나를 위한 행복인지를 깨달아서 진정으로 사람다운 삶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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