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종 암
칼럼니스트
 *새누리당 유승민 축출, 아니 좀 저속한 표현을 빌리자면 '찍어내기'에 국민의 사람으로서 착잡하기 그지없다. 더구나 헌법학을 공부한 이로서는 '이게 아닌데'라고 더욱더 분노를 자아낸다. 결국에는 그는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차라리 무의식 상태이고 싶다. 소위 친박과 비박을 떠나 비겁한 행정부 졸개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내같으면 쪽 팔려서 배지 떼겠다. 그 배지가 한 번이면 어떻고, 두 세 번 한다고 별반 다를 게 있겠는가.
10년 반 동안 써내려간 사회적 담론이자 에세이 편이 지난주 숱한 탈고과정을 거쳐 출판사에 넘겨져 완간되는 데로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려 한다. 그 속에 <나는 국회의원이 아닌 국개원(국견인)이 되겠다>는 테마가 있다. 이 말이 무엇이냐면, 내 나이, 아니 중장년세대가 되니 애완견, 즉 애견만이 주인인 내게 충성하듯이 국가와 국민을 향해 개처럼 충성하겠다는 의미이다. SNS나 개인적 친분에 의했을 때는 전자로 표기하거나 지칭하지 않고 후자에 의한다. 설사 상대방이 내게 반론을 제기하더라도 재반론에 있어 자신만만함도 있다. 한때 골프와 헬스를 때려치운 후 등산광이었을 때, 애완견이 내 목숨을 일정 부분 구해준 적도 있어 피부로 느낀 터럭이다.
대한민국 헌법전에 불충실한 국개원에게 철없는 일부 궁민들은 애교를 부리거나 딸랑이로 동원돼 '의원님' 또는 '의원나리'라 칭하면서 악수를 못해 안달할 필요가 없겠다. 물론 내가 소위 센 자나 부정의한 군상에게는 유독 까칠한 탓에 원외, 아니 변방에서 헤매는지는 모르겠다. "아주 더럽고 암적인 존재들, 국가와 국민은 없는 보신주의 일당들! 헌법도 안중에 없는 송충이 그대들이 군림하니 삶의 질에 있어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꼴찌다" 고 일갈했다.
더 나아가 이렇게 재차 일갈했다. "죽었다. 뭐가? 민주주의가 죽었다. 또 죽었다. 뭐가? 3권 분립이 죽었다. 이에 대한 죽음의 앞잡이는? 슈퍼갑질 국개원과 헌법학자들이다. 근조. 근조.... 내 20대 암울했던 그 시절 삶으로 돌아가니까?" 유승민이 21세기 한국판 당 태종대 위징이었건만, 새우리당이 업그레이드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게 안타깝기 그지없다. 자당 내에서도 건전한 비판을 내리치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SNS에서 일족인 연하의 띠 동갑이 자기 홈페이지에 시조 묘소 사진을 올렸다. 이에 이렇게 말했다. 내겐 증조부 할배께서 또 그 옆 어린 할배랑 내 시조 '정 분'의 묘 앞에 선 모습이다. 사진 속 부자는 내보다 어리지만 항렬이 높은 어르신들이라고 설명을 붙인다. 어릴 때 제법 다녔건만, 가물가물하다. 진양(진주)정씨 충장공파 35세손 '종'자 항렬을 쓴다. 경남 진주시 큰들(상대동)에 묻혔다. 단종대 김종서, 황희와 함께 3정승의 한 분이었다. 다들 수양대군의 칼날에 난도질당한 인물 중 하나다.
처남인 정인지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수양대군에게 반기를 들고 사사된 절육신이다. 고려조 찬성공 정신중, 려말 조선조 대문장가 문정공 정이오, 그리고 시조인 정 분이 3대가 분묘를 이루어 '진주 상대동 고분군'으로 불러지고 있다. 쿠데타에 참여했으면 후손들은 역적 아닌 역적으로 몰리지 않았겠지만 선조의 청백리 삶을 존경한다. 나도 그 반골의 피를 물러 받았는지 이 정권, 저 정권 하나같이 냉대 받는 삶에 이 땅의 평론가로 산다. 그러나 권력의 부나비에서 벗어났기에 후회는 없다.

 *아침 9시 30경 지하철 안이었다. 한 사내가 노약자석에 기대 서있다. 얼굴도 야위고 혁대아래 허리는 잘록해 노인 형색이다. 체구도 왜소하고 조금은 병약해 보인다. 큰 키에다 신사풍인 내랑 대비된다. 내 또래로 보이나, 언뜻 보면 훨씬 나이 들어 보인다. 내 시선은 그가 모르게 그의 형색에 고정된다. 분명, 내 연배인데 측은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나 나나 가장일 테다.
지하철 요금 등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 서민의 삶, 너무 팍팍하다. 호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어도 빈자로 보이지 않는 내 형색이라면 그도 측은해 보이지 않았을까. 지하철을 타면 삶이 보인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현실과 미래가 보인다. 진정한 정치인이 없는 이 나라의 정치꾼들이 검정차를 버리고 1주에 한번만이라도 대증교통을 이용하면서 국민과 함께 하면 어떠할까 생각이다.
이들에겐 불쌍한 게 안 보일까? 국민을 긍휼하게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약자를 짓밟지 않는 사회이면 좋겠다. 내 배 부르다고 상대도 배부른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 국개원 당신들만 똑똑하냐? 원내에서 어느 의원 나리가 3권 분립 위배를 운운하자 자기들끼리 "당신만 똑똑냐?" 고 싸우기에 나도 이렇게 일갈할 수밖에 없다.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탐욕에 찬 "당신들만 똑똑한 게 아니다. 똑 바로 하자. 인생, 별 거 아냐!"

 *그리스는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았다. 영원한 제국은 없다. 아테나의 몰락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나? 우리나라도 부패공화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많은 숫자의 공무원들의 부패가 큰 몫을 했다. 남의 일이 아니다. 이에 내, 내년 거사(?)에 실패하면 라오나 미얀마에 이민을 가겠다고 하자, 어느 고향 후배는 "선배님, 인도네시아도 괜찮습니다." 하고 한다.

 *20대 총선 출마 예정자 헌법재판소의 선거구별 인구 편차 위헌 결정에 따라 어느 밭(?)에 씨앗을 뿌릴지 선거구 분구에 눈독 올린다는 기사를 접하고는 내가 접했던 일이 생각난다.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일이기도 하다. 19대 때, 야당에서 시인이나 작가를 비례대표로 영입하자, 싹쓸이 기득권 여당 한 X은 SNS에서 "시인 주제에~" 폄훼했었다. 나는 그때 그를 바로 쏘아붙였다. 그가 다시 국회에 입성 못하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참, 뭔 주제에 꼴값이었으며 천박 그 자체였다.
그땐 모 문학인단체에서 기자성명 직전까지 갔으나 끝내 내가 만류한 적이 있다. 나도 그가 속한 자당의 예비후보였던 탓에 순간 비겁함이 작용했다. 물론 그는 깁스하다 보기 좋게 낙선했다. 빙신 같은 X이 인문학과 정치사, 그리고 역사를 몰랐으니... 조조와 나폴레옹이란 정치가가 문학을 얼마나 독려했는지, 심지어 이들은 전쟁 중 말 잔등 아래에서도 시를 읊고 문학을 했단 사실은 모른다. 고래로 문학 없는 정치가 없었고, 정치 없는 문학이 없었단 사실이다. 길거리 노숙자나 배추 장수는 정치 등 국개원 못하냐? 다양한 직업군에서 선출돼야...,

 *순진한 삶, 아니 바보의 삶은 이 사회의 부정의와 상충될 때 순한 양이었다가 불독이 된다. 그러기에 비평가의 독설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독설가는 자기 삶에는 정석으로 걷는다. 이기보다 공존의 삶이다. 본래의 성격대로 입을 닫고 싶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이 도래하지 하지 않으니 '아름다운 독설가'라는 닉네임이 따라 붙을 때가 있다.
군홧발로 짓누르듯이 연배나 선배가 위법부당한 명령, 다시 말해 꼰대 짓을 할 때는 반발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행위는 상대의 영혼에 상처를 주는 행위일 수 있다. 후배의 의견을 경청하는 나로서는 좀처럼 이해를 못한다.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누구나 걸어온 길이 다 옳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생은 누구나 하나 정도는 상처를 안고 산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꽃 위에 얹힌 아침이슬에도 상처가 있더이다. 인생, 어느 정도 살다보면 "인생, 별 거 아닌데 다들 왜 그래(이번 편찬되는 저서의 가제목)" 탄식하는 자아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더이다. 이생에 온 것도 동지요. 약자에게 군림하는 삶도 아주 미미한 시차를 두고 가진 부, 권력, 사랑하는 가족도 하나도 가짐 없이 저승으로 떠나는 초로인생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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