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종 암
시사평론가
 또 쓰기 싫은 글 한 번 쓰자. 본지에 어떠한 글(산문, 칼럼, 에세이, 촌평 등 불문)을 기고하든 불문하고‘정종암 칼럼니스트 또는 시사평론가’란 동일한 이력이 붙는 모양이다. 그 글에 맞게, 즉 기고하는 게 에세이면 수필(가), 비평이면 평론(가) 등 이력이 붙지 않는다. 그러나 개의치 않는다. 평론가도 아닌 아마추어리즘 글꾼 주제에 자신의 위치나 신분을 망각한 채 가소롭게도 이러한 글에 대해 평했겠다. 아니, 꼴값이었다. 독자들로부터 제보됐다. 어떠한 금권에도 굴한 적이 없는. 신분상 철저한 검증까지 받은 전문칼럼니스트에게 더 이상 무례한 어리석은 짓은 않으리라 본다.
 필자가 본지에 '고을원님' 예비후보군에 실리자 일부 독자가‘신문에 글 쓰는 양반도 출마하되’였다. 맞는 말이다. 글 쓰는 게 직업이라면 직업일 수 있다. 그러나 전념하지는 않는다. 더 나아가서는 “당신의 신분이 뭐요?“ 라고 물었을 때 정확하게 답한다면 출판기념회까지 곧 가질 출간할 책의 이력에는 이렇게 표기돼 있다. 전직은 제외하고 현직만 여기에 옮긴다면 ‘평론가(문학. 시사), 연구원, 시민사회단체 대표. 객원논설위원’으로 표기돼 있다. 통상 ‘정 평(평론가)’또는 20년 넘게 쓴 아호인 ‘백산’으로 많이 칭한다.
 이러다보니 많지는 않지만 전국에 걸쳐 일정한 팬들이 있다. 고로 그들을 관리(?)할 어떤 책무가 있다. 본지에 칼럼을 기고할 시간이 사실상 없다. 또한 전국적이 아닌 좁은 지역을 상대로 자신을 더 이상 어필시킬 필요도 없다. 그러나 발행인과의 인간관계, 그리고 나름 이 시회에 기여한다는 의미로 인해 기고는 해야겠기에 팬들과 주고받은 테마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세평’이다. 열흘간 주고받은 세평 몇 편을 각설한다.

 *“탑골 공원에서 84세 된 노인이 성매매를 하다 발각되었다. 박카스 할머니로의 변신이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대한민국 노인복지가 이 정도로 씁쓸한 암흑이다”고 하자, 검사 출신 모 법무법인 대표변호사는 이렇게 화답한다. “백산! 세종대왕이 이 글 보고 부덕의 소치로고, 부덕의 소치로고... 어쩌다 내 백성들이 저런 질곡에서 헤매이노. 대성통곡할 일이로다.”고 화답한다.

 *“입을 열면 왕따이고, 닫으면 비겁함에서 속을 부글부글 끓여야 하는 신세가 애달프다. 왜, 내 아버지는 힘겨운 뒷바라지로 오늘의 나를 만들지 않으셨다면 차라리 무뇌아로 살 것인데... 아, 대~한~민~국아!”에 예전 여성 동지는 “선생님(?)까지 침묵하시면 안 된다”고 답한다. 다시 나는 이렇게 말한다. “박 동지! 우리가 바랐던 게 이게 아니었기에...”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슬픈 현실이지만 어쩌겠어요. 다시 한 번 힘을 주세요” 다. 또 다시 나선다. “의리냐, 원죄에서 벗어 나냐? 아몰랑~” 에 ”“둘 다 아닐까요? 그러니 선생님께서도 책임이 있습니다.”

 *“빈곤 속 풍요인가. 풍요 속 빈곤인가. 갈비 한 대 뜯으려고 친구와 함께 국회의사당에서 목동을 거쳐 비싼 택시를 타고 뚝섬 근처 서울의 숲 갈비촌에 왔다. 출석부에 명단을 올리고 대기를 해야만 먹을 수 있는 현실에 웃어야 하나? 참, 대한민국 알다가도 모를 나라다.” 팬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요즘 갈비 뜯는 게 하늘의 별따기다. 많이 드시라. 나도 그곳에 가고 싶다”고.

 *중장년 사내의 삶이란 피곤하다. 아침에 집을 나서 막 귀가하니 자정이 가깝다. 강아지야 반긴다만은, 식솔들은 벌레 껌 씹은 듯하다. 후딱 샤워를 하고 서재에 앉는다. 아직도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꼴에 신사랍시고 화이트셔츠에 자켓으로 다녔으니 땀에 절이고 술에 절였다. 점심시간 전후로 소싯적 동창(친구?)을 만나니 고객을 끌어 모아 투자수익률 30%에 투자하게 했다나? 1주 전부터의 선약에 아까운 시간을 내 나가니 “상황을 보고 언론에 대서특필 또는 압력(?)을 가할 수 없겠냐”다. 난, 내일 당장 굶어 죽어도 부정의에는 동참 못하겠다.
 그 정도 수익을 주겠다고 유인한 이나 투자한 이나 내 잣대로써는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체 돈에 절은 쓰레기 군상들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 망해 가는 회사에 원금만 받아도 감지덕지 하겠건만, 수익률까지 고집한다. 1~2억에 목숨을 거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건강은 나빠져 곧 죽음이 도래할 것 같은데... 그 광경을 안 보았어야 했다. 부대끼다가는 내 인격을 다 구길 것 같았다. 이건 완전 썩은 영혼판이다. 곧 출간될 사회적 담론집 제목처럼 <인생, 별 거 아닌데 다들 왜 그래>를 부르짖고 싶다.

 *문학평론가 신분으로 이번 표절문제에 대한 촌평을 언론에 던졌다. 통상 일간지는 전날 온라인에 먼저 뜨고 그날 밤 기차에 실려 익일 아침에 전국으로 배포된다.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이에 해설을 곁들인다. “아~휴, 친일문인들이 판쳤던 전신이 현 한국문인협회이니 내 그곳에 문인이랍시고 회원가입으로 이력에 넣을 수 있겠냐.
 그 이력을 가지고 대단한 시인 또는 작가란 명함을 내미는 군상들은 문학보다는 감투가 먼저이니 통탄할 일이 아닌가. 전형적인 친일시인 서정주를 숭상한답시고 그 졸개(?)들이 그 상을 제정한 우도 범한다. 대한제국을 멸한 일제의 강점기 식자들의 일탈의 역사도 모르고, 그들에 대한 연구는커녕 자신의 가입하려는 단체 역사쯤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선글라스 낀 사내인 류시화란 시인이 “문학의 길을 걷겠다고 집과 결별하고 자신이 노숙자가 되자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고 포문을 연다. 이에 나는 “문을 사랑하고, 부정의에 탐닉되지 않는 삶은 유목민을 넘어 누구나 노숙이자 방랑자가 아닐까? 세속에 찌든 삶은 흉내조차 내지 못한다. 고로 자신만의 생철학이 견고하다. 그리고 이기가 아닌 공존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절대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화답하다. 이번에 출간될 저서를 추천한 전 앵커이자 방송사 사장도 나를 ‘전형적인 지적 노마드(유목민)’라 평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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