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종 암
칼럼니스트
 고향에서 며칠 간 머물렀다. 틈이 나면 고향을 기준으로 한 인접시군의 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태어나 청년기까지 25여 년을 산 고향에 자주 가는 편이다. 10여 년 전 만해도 시제나 성묘 때만 당일치기로 오가기에 바빴다. 어쩐 일인지 상경해 여의도 정가에 가니 내가 고향에서 맴돌았다는 소문이 퍼져있음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하기야 이번 주에도 머문다. 그러면 한 주간 SNS에서 내뱉은 말을 다시금 설파한 후, 말미에는 2006년도에 쓴 비망록에서 <가진 자의 오만함과 비열함>이란 에세이로 마무리한다.

 *어제, 여의도 소재 모 박사 연구소에서 내 졸저에 대해 자필 사인해 그에게 건넸다. 이에 자신의 수필집(내가 보건대, 수필 근처에도 X)을 주겠다고 해 건네받았다. 저자가 자필 사인한 저서에 대해 좀처럼 공짜로 안 받는 예의를 표하나, 나도 건넸기에 서로 간 답례는 셈셈(?)이었다.
 그러나 집에 와 엄청난 실망을 안았다. 막 저녁 식사 후 산보하던 차에 파지수집상 리어카에 처박아 버렸다. 한 문장은커녕 보존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빈자의 서재가 천장과 맞닿아 있기에 비집고 들어갈 공간조차 없다. 수필, 즉 에세이가 흔히들 무형식이라지만 보이지 않는 형식이 있다. 그래서인지 등단 절차도 거치지 않고도 건방지게 자신이 수필집이라 칭했다. 근데, 이건 자서전도 이러한 졸작이 없었다.
 난, 여기서 이 친구가 자신의 학문에 대해서만 지식팔이에 불과할 뿐, 근접 학문에 대한 지식에 대해서는 제로였음을 느꼈다. 이건 독자에 대한 우롱이다. 그래도 몇 테마는 읽을 게 있어야 않는가?
 이 정도의 책이라면 감히 말하지만 월 1권은 족히 출간하고도 남겠다. 그런데 이 친구 몇 달 전, 첫 대면 때 엄청 요란스러웠단 점이다. 내가 주구장창 부르짖듯이 "괴수(교수)나 박사라고 이 세상의 온갖 지식을 다 가진 양, 깐죽이지 말라"다. 활자화될 땐 엄청 조심해야... SNS나 비망록 등의 글과 활자화시켜 신문이나 세상의 독자에게 내놓을 땐 분명 다르다. 독자가 읽었을 때 다는 아니라도 몇 테마는 감동이나 감성을 건드려야 않겠는가?

 *나는 자본주의사회에선 결격자일까? 어떤 일에서든 돈을 먼저 앞세우면 두드러기 증상이 발생하는지 모르겠다. 그게 먼저라면 문의 길을 가겠는가? 그렇다고 이 세상에 채권은 많아도 채무는 일 푼도 없다. 없으면 없는 데로 살면서 내 사전에 구걸은 없으니 기죽이지 마라. 사악한 아우야! 돈이 뭔지? 내 사업가도 아니올시다. 분명, 좀 불편할 뿐 그걸 목숨 걸고 추구하는 삶은 아니니... 예전 내 것이나 좀 갚아라.

 *종북몰이하는 저것도 국개이원(國犬夷員)이라고? 저 인간 저거(이하 1인칭을 사용할 가치를 두지 않는다) 죽으면 천당 가겠냐? 저 건, 대통령과 대표에겐 존칭을 넘어 경칭까지 쓰면서도, 동료 국개원(國犬人)에게 슬슬 비꼬면서 반말조다. '저 거만의 준거법'에 놀아나 딸랑이들이 박수치나 뒤통수 맞을 게 문제고, 저것 참, 문제다.
 19댄 자질 없는 군상들이 너무 많다. 저것 보니 혈압 오르는 아침이다. 참, 세금 아깝다. 인간이 저렇게 망가지나? 어이~ 저거 위에 사람 없고, 저거만 똑똑한 줄 안다. 저 거 차기 총선 때 공천 안 주면 떼 쓸 게 아냐.

 *내, 서울특별시민으로서 정치적 성향에선 반대편이나, 서울시장이 잘 하지 않냐? 메르스 사태에 잘 대응했다. 암만, 정적이라도 인정할 건 인정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만에 하나 박원순이 대권에 나서거나 재선 시 표 찍는다는 여론이 비등해졌다. 부패공화국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이러한 행정스타일이 필요한 시점이다. 내가 만약 지방자치단체장이라면 좋은 점은 벤치마킹하면서 돈에 대해서만은 초연해지고 싶다.

 *이 나라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들 참, 비겁하다. 내 인생의 의미를 알기 시작한 10대 말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식자들은 넘치나 이렇게도 '지식인 부재의 시대'가 없었다. 말 한 마디, 숨죽이며 세상을 리더 못하는 비겁한 족속들... 왜, 사냐? 꼴에 책장 속에 묻힌 모습을 보이건만 죽은 삶, 죽은 지성 아냐. 차라리 내가 낫겠다. 금권을 탐하고, 민중 위에 '가장된 지식'으로 군림해 사는 게 그렇게 편한가?

 *잠을 1시간도 안자고 강행군이다. 정의를 부르짖으면 대한민국에선 정치를 할 수 없다. 반면 부정의에 능해야 한단 말에 필이 꽂혔다. 지인과 SNS 친구들도 남도에서 제법 만나다. 며칠 간 고향에 숙소를 정하고 밤이면 인근에 사는 팬과 지인들과 어울리다. 통영 강구안 해안과 거북선이다. 멀리 산등성이는 동피랑이다. 진주 남강변에서도 새벽까지 회포를 풀다.

  
 가진 자의 오만과 비열함

 규모가 큰 기업이야 자체 빌딩을 갖고 사업을 영위하겠지만, 대부분의 영세사업가나 중소기업은 임차하여 경영하고 있다. 어찌나 임차료 지급일은 그렇게도 하루가 빠르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심정은 자신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리다. 경영이 어려워도 '오너'라는 알량한 자존심을 상하지 않으려는 처사에 임대료를 좀처럼 밀리지 않는 편이다.

 여태까지는 직원들이 온라인으로 입금시키거나 임대인이 직접 수령하게 했다. 그러나 임대인과 마주치기 싫어 온라인으로 입금시키려 직접 은행에 갔다. 그런데 어제와 오늘은 임차료를 지불하기 위해 애를 먹었다. 성격상 임대인 은행 입금계좌번호까지 착실하게 챙기지 못하는 편이다. 대충 알고 있는 계좌번호로 입금시키려니 좀처럼 계좌입금이 되지를 않는다. 그것도 수 십 번이나 말이다. 이러함은 임대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판다고 했던가? 임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계좌번호가 틀리는지 입금이 안 됩니다."
"어, 저번까지는 잘 들어 왔던데."
"아니 그때까지는 우리 부장이 대신하여 입금시켰는데, 퇴사해버려 이번 달은 제가 입금시키려니 안 됩니다."
"하하, 위대한(?) 사장이야. 세상에 누굴 안 믿어도 정 사장은 믿어."
시쳇말로 속으로는 "영감쟁이(?) 놀고 있네." 고 중얼거렸다. 물론 여태껏 실수를 안 한 것만은 사실이다. 또한 평소 시 친구처럼 많은 대화도 오가는 사이다.

 근간에 만나는 임대인들은 한사코 몇 백 억 대 부자들이다. 나는 진정한 부자들을 존경한다. 그러나 수전노 같은 베풀 줄 모르는 부자는 경멸하는 편이다. 그리고 후자의 부자들이 자신에게 안하무인격으로 실수를 저질렀을 때는 혼쭐을 내는 습성도 있음이다. 이 임대인은 나에게 고고한 척 하다가 한 번 혼쭐이 났었다. 그는 주변에서 '회장님'으로 호칭된다.

 그에다 일흔이 넘어서도 근력이 좋아 매일 골프를 치고 다닌다. 내 회사에 가끔 방문하면 내 연습용 골프채를 잡기도 한다. 나는 그를 '회장님'이라고 호칭하지 않는다. 그렇게 부르기에는 함량미달(?)이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지난여름에 실수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내 회사 상품을 가지고 해외시찰을 가자고 먼저 제의해 왔었다. 그런데 출발일자를 불과 며칠 앞두고 파기한 것이다. 그것도 해외경비 때문이었다.

 그 경비는 최대한으로 적게 산출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파기한 탓에 해외 거래처와의 신용문제에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5명이란 항공권을 취소해야 했고, 해외에 연결된 외국인들에게 망신창이가 되고 누를 안기게 된 것이다. 회사에서는 금전적으로도 피해를 입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손해부분에 대해 이러한 임대인에게 배상하라는 말도 꺼내지 못하는 벙어리 냉가슴 앓은 적이 있었다.

 인력제공과 노하우만 따져도 재산적 가치로 얼마인데, 어디 패키지여행 가는 것도 아니었다. 내 사업체와 연결된 외국의 지인들에게 "죄송하다." 고 연일 고개를 숙여야 했다. 한 번 나서려면 조그마한 내 회사의 고급인력이 총출동된다. 그리고 그 고급정보(?)도 잃을 수 있다. 이를 기화로 나는 임대인에게 "향후 1년간 임대료 동결한다." 고 통보했다.

 경상도에서 그것도 장남으로 태어난 죄로 웃어른에게는 부모같이 최대한 예우를 다하는 편이다. 그러나 임대인에게 이번에는 예외규정을 둘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흐른 후, 나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정 사장 회사에 손해를 입혔으니 3개월 임대료를 받지 않겠다." 는 답신이었다.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수전노 영감님의 제의를 끝내는 수락했지만 뒤끝은 개운하지가 않았다.
 그래도 신용이 실추되었지만 부모 같은 연배이기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외국에서도 나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메시지도 오면서 그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2006.9.14;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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