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이 둘을 이어주는 끈이 있을 것인데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문제는 두고두고 우리 인간에게 때로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어떤 때에는 영 종잡을 수 없는 어리둥절함 속으로 이끌어 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우리 인간의 머릿속에 확립되어 필연이라고 여기는 믿음과 신념과는 거꾸로 가는 인간의 행동을 보여주기도 한다.
 회의(懷疑)라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절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오히려 그 회의 속에서 자연 그대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인간 스스로를 자랑하기도 하고 천시하기도 하고 또 사랑하기도 하고 증오하기도 하는 공감 속에 살아있는 인간의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 구조를 파헤친 인간해부학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 볼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의 모든 지각은 각 개인의 인상(impression)과 관념(idea)라는 둘로 분리할 수 있다.

 닫혀있는 인간 마음의 창(窓門)에는 여러 가지 영상이 그림자를 이루며 나타났다하여 그림자가 아닌 창 안쪽의 실상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창은 닫혀 있다는 것이다.
 창에 비치는 그림자만이 인간에게 있어서 전부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모습을 늘 보게 된다. 이 때 창밖으로 비치는 그림자를 우리는 인상이라고 하고 창 안쪽의 실상을 관념이라고 부른다.
 인상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며 우리의 뇌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고 관념은 본유적으로 우리의 뇌리 속으로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의 지각을 형성하는 데에는 유사(類似), 접근(接近), 인과(因果)가 있다 할 수 있고 그 중에서도 인과가 가장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원인과 결과는 서로 떨어져 있는 듯이 보여도 실제로는 원인의 연쇄 고리로 연결된 모습을 보게 된다. 약간 부질없는 공론 같지만 원인과 결과를 자신의 인식 또는 인상만으로 단정 지운다는 것이 얼마나 큰 독성을 뿜어내며 원인 규명을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갈 수 있음을 말해준다.

 진실로 지혜로운 사람이란 모든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을 가지는 사람일 것이다.
 말을 삼가라. 한 마디 말이 측량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상의 부피를 알아내지 못한다. 우리 인간 내부에 싹트는 각 개인의 사상은 내용 여하에 따라 저주를 받기도 하고 존중 받기도 한다. 우리가 상대에게 보다 나은 사상으로 보답할 수 없다면 애매하고 거짓된 사상을 퍼뜨리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문이 있다는 사람이 인생의 진리보다도 화술(話術)에 더 마음을 쓸 때에 그 학문은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며, 진리에서 더 멀어지고 있음을 잊기 쉽다. 높지도 못한 사상을 깊고 세련된 어휘로 표현하고자 애쓰는 학자라는 사람들은 올바르지 못한 사람들이다. 거짓을 말하는 자는 진리에서 가장 약한 자이다. 술 취한 사람과 같이 흥이 나는 대로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물론 진리와는 점점 멀어져가는 행동의 표상이다. 어중간한 지식이야말로 가장 위험할 수 있다.

 한 마디의 말은 많은 결과의 씨앗(원인)이 되기에 충분한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사랑으로 봉사하는 일과 사랑을 입에 담으며,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노력들이 사랑의 나무가 맺는 열매가 되고, 그 열매(씨앗)가 다시 자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으로 덮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배고프지 않을 때에도 남들이 먹는 모습만 보고도 먹게 되면서도, 우리의 지식이나 참 아름다움을 위한 지출에는 인색한 모습을 보기 일쑤다.
 위대한 일이란 아주 겸손하고 단순한 상태에서 서서히 진행되게 마련이다.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을 칠 때 논을 갈거나 집을 짓기 어렵듯이, 위대하고 참된 일은 항상 단순하고 신중한데서 온다. 우리는 위대하고 보람찬 결과를 얻기 위한 꼭 해야 할 일 필요한 일을 해 왔는가를 되돌아보고 지난날이 그렇지 못했다면, 지금부터 그렇게 해 나가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사명을 지니고 있고, 비록 그 사명이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을 때일지라도 말이다.  그 분명치 않는 사명일지라도 그 사명이 무엇인지 알려는 고력을 멈춰서는 안 되며 적극적으로 그 사명에 참가해야 한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 추구 아닌 행복 탐구에 두어질 때 참혹한 인생이 대범한 인생으로 바뀔 것이며, 전통(역사)과 이지의 심장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의미가 깨달음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하여 비로소 우리의 인생이 경건하고 심오한 즐거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당신의 취미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놀고먹기 랍니다’ 라는 장난스러운, 재미있기까지 한 대답이 있지만, 이것이 진심이라면 참으로 큰 착오이자 위험이다. 육체노동이야말로 사람의 의무이자 행복 그 자체라는 것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을 얻기 위한 확실한 조건이 노동임을 잊고 있는 것이다. 그 노동은 당연히 자진하여 택한 자유로운 것이어야 한다. 노동 후 맛있는 밥이나 달디 단 잠처럼 좋은 것이 어디 또 있겠는가 말이다.

 원인과 결과, 개인의 인상만으로 단정지울 일이 아니라 아름답고 바람직한 결과에 이르기 까지 에는 실질적인 그리고 바람직한 원재료(원인) 투입만이 해답임을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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