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홈페이지에서 이렇게 설파하다
담배 복은 있는지 지인들이 면세담배를 자주 선물한다. 집안 뺀지리 동생도 일본산 마일드세븐 한 보루 사 왔다는데 받으러 갈 시간이 없다. 하기야 이 녀석에게는 배보다 배꼽이 두려운 탓도 있긴 하다.
미국 친구에게서 국제소포로 태평양 건너온 담배 선물이 있다. 웨밍웨이가 피우던 담배(시가)를 쿠바산과 미국산을 갈아 피대니 미국산이 맛과 멋에 있어 낫다. 한 보루(1곽)가 10개비다. 그 한 개비로 이틀~사흘을 피울 수 있는 량이다. 두 보루 20개비를 골초 지인 3인에게 나눈다. 나를 포함해 5개비씩이다. 미국산의 맛, 향, 멋을 혼자 만끽하기에는 아까워서다.
흔히들, 안 피우는 지인들은 "담배 끊어라" 하지만, 금연하고픈 생각은 없다. 역설적으로 행동과 실천에 있어 불일치하는 극우나 극우놀이패보다 담뱃세 많이 내는 내가 더 애국자가 아닐까?
오래 살려면 금연하라지만 수긍할 수 없다. 인명재천이다. 천만 겁의 인연으로 태어났을지언정, 찰나 중의 찰나를 살다가 가는 삶인데 조금 일찍 가고 늦게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아니, 죽을 때 알기나 알겠는가? 고로 금연권만 주장하지 말고, 협연권도 보장돼야 한다.
*5월 18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 부르게 하는 보훈처장 경질해야 한다는 어느 여당 국개원의 오늘만의 사고는 맘에 든다. 그래, 내가 저 노래를 불렀거나 또 때가 오면 부른다고 빨갱이 추종자이고, 북녘 김가네 정권을 신봉하는 게 아니잖아. 어천가를 불러대는 보훈처장 할배는 경질돼 국민화합으로 가야한다.
생계형 보수 찌꺼기들이 문제다. 시대적 상황에서의 저항세력이 부른 노래라고 그럴 필요가 없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어때서 분열을 일으키게 하는지 모르겠다. 격동의 80년대를 지내오면서 한번쯤 안 부른 이가 있는가?
나도 대학시절과 6월 항쟁 때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힘껏 불렀었다. 그러한 상황이 다시 오면 또 부를 것이다. 이제 와서 뜬금없이 이 노래로 논란을 부추길 필요가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여태껏 불렀던 노래를 부르면 극우놀이 패들이 힐난하는 빨갱이고, 안 부른다고 자유민주주의자이거나 애국자는 분명 아니다.
*5월 17일/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이재명 성남시장은 "공직 선출자는 나쁜 짓 안 하고, 공정하게 권한을 행사하며, 열심히 하면 된다" 고 강조했다. 그는 "공직자는 나쁜 짓 하는 게 제일 문제다, 도둑이 100만 원 훔치면 개인 한 사람만 피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100만 원을 잃은 것은 아니다"라며 "그런데 공직자가 100만 원을 훔치면 수십 배 엄청난 피해가 생긴다" 고 말했다.
그는 "공직자들이 부정부패만 하지 않아도 엄청나게 잘하는 것이며,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과 예산을 공정하게 써야 한다" 며 "공직자들이 그것만 잘하면 대한민국 사회는 엄청나게 좋아졌을 것" 이라고 강조한 것에 대해 나는 이렇게 촌평하고 싶다. 맞는 말이다. 당신의 사고가 맞다. 그동안 국우놀이패들 등살에 살아남는다고 욕 봤소이다. 적장도 뛰어난 부문은 답습하며 존경할 필요가 있다. 잘하는 건 잘 한다고 박수 쳐주는 아량도 없는 머저리 사회가 문제를 낳는 게 더 문제다.
*5월17일/ 뉴스타운에 따르면 "5.18 대책위의 추태-고소 기다린다" 는 제하에서 당시 17세 임성택(당시 양복공) 얼굴 드러내5월 16일자 뉴스1은 "간첩 몰린 '복면' 5·18 시민군 북한군이라니, 책임 묻겠다" -임성택 씨 "목숨 걸고 민주주의 지켰는데, 지만원 씨 각오해야" 이런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요지의 협박성 기사를 썼다." 의 칼럼을 보노라니 기가 찬다.
북한군 600명이 광주에 잠입했다는 주장을 개인적으로 사실로 보지 않으며, 지 씨만의 일종의 '과대상상증'이나, 딱 편 가르기에 의한 국민 간 분열, 그리고 설사 자신의 상상이나 추정력이 맞다고 간주하더라도 표현력이 아주 저속하며 반대파도 끌어들일 수 없는 포용력 부재이다.
광주를 폭력으로 진압한 '전두환 탱크 할배'조차 재임시절 한 번도 북한 간첩의 개입을 시사한 적이 없는데도, 극우 파시즘에 경도된 채 언론이나 방송들이 난리 불루스다. 당시 동아일보 광주 주재기자 김영택이 사실을 보고 쓴 <518 광주 민중항쟁>(1990.7.동아일보사 출간)이란 책에서도 북한 간첩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사건을 기록한 장면이 한군데도 없다. 그 당시 해제된 기밀문서에서 미국 또한 부인한다.
진실 여부나 소모적 논쟁을 떠나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서, 박사란 칭호 뒤에 뇌까린 군데군데 표현법(예컨대,××도 것들아!)이 너무 졸렬하다. 이러한 표현으로만 상대나 단체를 비판 또는 제압할 수 있는 방법 밖에 없을까? 칼럼니스트로서의 자질이 의심된다.
*5월 16일/ 내 삶이 100%까지는 아닐지 모르지만, 당당한 삶의 기치이기에 저널과 문학 또는 간혹 강연을 통해 할 말은 하고 사는 편이다. 비겁한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내가 범부로는 알 수 없는 이 정권에 대한 '내만의 원죄' 때문에 말을 못해 고통을 안는 아픈 밤이 있어 화병이 날 때가 있다. 내 머리에 쌓인 것을 뱉어야 하는데.... 진정한 언론의 자유와 언로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청계산에 간다. 그곳에서 돌아이처럼 짖어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