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전국이 초토화 된 다음 왜군은 잠시 물러갔다가 재침(再侵)을 준비하는 첫 단계가 우리 조선의 영웅이자 그들에게는 최대의 걸림 돌린 이순신(李舜臣)을 제거하는 일이다. 항왜(降倭)로 위장하여 조선 조정에 잠입시킨 요시라를 통하여 적장 가또와 고니시간의 불화설을 퍼뜨림과 동시 가또(加藤淸正)가 모월 모시에 바다를 건너오니 이순신으로 하여금 사전에 준비하여 요격케 한다면 그를 죽이거나 대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제공하였다. 아무 것도 모르던 선조는 이순신에게 즉각 출격하라는 왕명을 내렸으나, 왜군이 오히려 우리 수군을 대해(大海)로 끌어내어 한 번의 전투로 모두 수장시켜버리려는 간계임을 미리 알고 있던 이순신은 왕명을 어겨서라도 조선 수군을 살리기 위해 출격을 미루자 크게 노한 선조가 이순신을 하옥하여 한 달 동안 모진 악형을 당하고 사형까지 당할 번 하다가, 신임 삼도 수군통제사 원균 막하에서 백의종군(白衣從軍)하라는 치욕적인 처분으로 생명만 유지하게 된 것이다. 통제사 원균에게도 이순신의 경우와 같이 조정에서 출격 독촉이 오자 함선을 이끌고 절영도(부산) 앞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과 왜군의 유도작전에 패하여 회군하던 중 거제 칠천량에서 우리 수군의 함선은 남김없이 완파당하고 수군도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당하게 된다. 그러자 선조는 이순신을 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하면서도 이미 와해된 수군으로는 싸울 수 없으니 수군을 폐하고 육군으로 전투에 나서라는 명을 내렸다가, ‘신에게 전선 열 두 척이 있사옵고 신이 죽지 않은 이상 적이 감히 우리를 가벼이 여기지 못 할 것이 오이다’라는 열정적인 상소 끝에 이전의 조선 수군 폐지라는 계획을 철회하기에 이른 것이다.
 전함 1척을 더 합한 13척으로 330여 척에 이르는 대 선단을 맞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물살이 센 진도의 명량(鳴梁)에서 목숨을 하늘에 맡긴 불굴의 용기로 적선 30여 척 완파에 100척에 이르는 적선을 대파하면서도 조선의 피해는 거의 없는 믿기 어려운, 세계의 어느 해전사에도 찾아보기 어려운 대승을 거둔 것이다. 울돌목(鳴梁)의 바다 밑 바닥에 쇠줄을 쳐서 왜선이 지날 때쯤을 기다려 그 쇠사슬을 높여 왜선의 움직임을 방해한 전략 또한 크게 주효했다. 무거운 쇠사슬을 감거나 풀면서 ‘강강수월래’ 란 노래가 생겨나기도 하였으니, 이는 ‘감감(쇠줄을 ’감‘고 또 ’감‘아) ’수월래(‘순라 巡邏’의 준말), 다시 말해 순라군이 순라를 돌 듯 쇠줄을 말뚝에다 감고 또 감자는 ‘영치기 영차’와 같은 노래인 것이다. ‘죽으려 하면 살 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는 불굴의 용기는 이미 인간의 경지가 아닌 하느님에게만 그 결정권이 있음을 인정하고 전투에 나선 데서 임을 말해 준다. 임란 전 조선의 상황은 그간 한 번도 전쟁이 없어 대비책이 전혀 없었다. 적을 맞아 싸울 아군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무기와 장비가 창고에 있는지 아무것도 파악조차 안 된 상태였다. 양반들은 군역을 면제 받았고 전쟁 경험이 있는 장수나 훈련 받은 군사라고는 물론 없었고, 백성들마저 나라가 빨리 망해야 한다고 떠들고 다닐 정도인 말이 아닌 상황 하에서 일궈 낸 승리였던 것이다.  

 ‘주의 종(다윗)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하느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 이 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 같이 되리이다.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 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 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 투구를 머리 위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다윗의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 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주머니에 넣고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 가니라. 블레셋 사람이 점점 행하여 다윗에게로 나아오는데 방패 든 자가 앞섰더라.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없인 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느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들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 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行伍 = 隊伍)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려 지니라.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구약성경 중 이스라엘의 목동 다윗이 침략군 블레셋(팔레스타인)의 사나운 장수 골리앗을 맞아 전쟁에서 쓰는 창, 칼, 방패가 아닌 목동들의 일상 용품인 물맷돌로 죽인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 이스라엘의 선조 아브라함에서 시작 된 족장 시대에서 사사(Judges) 시대를 거친 다음 백성들의 열망에 따라 초대 왕권을 확립한 사울 왕 시대에 있었던 전쟁 이야기다. 사울왕의 눈에 조그만 목동 소년으로서는 도저히 몸집 크고 용맹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의 상대가 될 것 같지 않았으니, 마치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이끄는 결사대에게 발목이 잡혀 꼼짝 못하던 신라군이 반굴과 관창 두 화랑을 전투에 내보내어 땅에 떨어진 군의 사기라도 도울 수 있기를 바랐던 가느다란 희망, 바로 그런 심정이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왕은 어린 목동에게 왕 자신이 사용하던 갑옷, 투구, 칼 등을 주며 싸우러 나가라고 격려했다. 모든 것이 다 인간 보편의 상식이자 어쩌면 기적을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수 있다. 몸집 크고 싸움에 단련 된 적장을 맞아 겁에 질린 사울 왕과는 달리, 목동 소년 다윗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서 온 것이기에 적장의 몸집이 크다는 것이 바로 물맷돌로 큰 표적을 맞히는 것이니 더욱 쉬운 표적이라는 확실한 자신감에서 온 것이다. 그 자신감은 또한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산 위에서 혼자 양을 돌보면서 사자와 곰 등 사나운 맹수들을 맞이하면서 늘 하느님을 믿고 자신감 있게 물맷돌로 사나운 맹수들을 막아내었던 자신의 실력을 믿었던 것이다. 하느님은 늘 인간의 힘을 더 쓸 수가 없게 되고 이제 더 이상 믿을 것이라고는 없는 극한 상화일 때 비로소 일을 시작한다는 바로 그 믿음인 것이다.  도망하는 적을 앞에 두고 용감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무슨 일이고 지레 불가능하다고 겁을 먹는다면 이미 그 ‘불가능’이 미리 앞을 막아서 있을 것이다. 해안을 떠날 용기가 없는 사람이 어찌 대양을 볼 수 있겠는가. 정말로 죽기도 전에 미리 몇 번이고 까무러지는 겁쟁이 아닌, 단 한 번 밖에 죽지 않는 바로 그 목숨을 담보로 싸움에 나섰던 결과로 얻은 승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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