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덕 현
전 초등학교장
 “사람이 본래 온 곳을 모르니 가는 곳도 모르리라. 나고 죽음이 덧없으니 사람이 무엇을 낙(樂)으로 하여 살꼬!” 사람마다 종교를 갖는 이유가 천차만별로 다르겠지만 종교를 창시한 성자(聖者)들의 말씀들을 생각해보고 간추려보면 한마디로 ‘자비와 사랑’이다. 추상적인 말이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를 내세우지 않고, 나의 욕구와 이익을 위한 명분을 멀리하며 타인의 행복과 이익을 먼저 구하는 삶을 강조한다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 그러므로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이런 자세에서 출발해야함이 마땅할 것이며 그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종교를 잘 믿어서 사후 세계에 천당에 간다느니 극락에 간다느니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건 성자(聖者)들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며 잘못된 종교생활이라 할 것이다. 이제 부처님 탄생일이 다가옴에 따라 그분의 가르침인 불경(佛經)에 대해 조심스럽게 담론을 나누고자하며 독자들에게 유익한 것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 가까이는 수려한 산천계곡에 부처님을 모신 법당이 많고 사찰에는 승려들이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수행정진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항상 목탁소리와 함께 스님들의 낭랑한 불경독송(佛經讀誦)소리가 우리들의 떼 묻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깨끗하게 함을 느낀다. 그런데 문제는 스님들이 목탁소리와 함께 독송(讀誦)하는 불경(佛經)은 도대체 무슨 말이며 어떤 뜻을 지닌 것인지 일반 중생들은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므로, 필자는 사찰마다 공통적으로 독송하는 반야심경을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안내하고자 한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약본을 반야심경이라 하는데, 반야심경의 원문을 먼저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하며, 오묘한 불경(佛經)의 진리를 문자만으로 해석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니 깊은 신앙심과 수행을 통해 깨달음으로 가는 방편으로 삼기를 중생들과 불자들에게 기대한다.

 般若心經 (반야심경)의 원문. : 觀自在普薩 行深般若波羅密多 時 照見 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 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是諸法空想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感.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菩提薩陀 依般若波羅密多 故心無佳碍 無佳碍故 無有恐怖(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遠離顚倒 夢想 究竟涅槃 三世諸佛 依般若波羅密多 故得阿辱多羅 三邈三菩提 (원리전도 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아뇩다라 삼먁삼보리) 故知 般若波羅密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故說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3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참조: 唯然世尊願樂欲聞.發菩提心.2015.02)
 이 반야심경의 보편적인 해설을 아래에 싣고 다음은 유명스님의 해설을 싣고자 하니 함께 살펴보시기를 바란다.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관자재보살이, 오묘한 반야 바라밀다를 닦으실 때, 몸과 마음의 욕망이, 모두 비어있음을, 비추어 보시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의 바다를 건너셨느니라.)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사리자여, 삼라만상은 빈 것이며, 공한 그 모습이, 삼라만상이니, 감정이나, 생각, 욕망, 의식 등, 마음의 작용도, 또한 빈 것이니라.)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사리자여, 이 모든 비어있는 모습에는. 나고 없어지는 것도 없으며. 더러웁거나 깨끗함도 없으며. 늘어나거나 줄어듬도 없느니라.)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無老死. 亦無老死盡. (그러므로, 비어있는 세계에는, 이렇다 할 실체도 없고, 감정도, 생각도, 욕망도, 의식도 없고, 감각의 주체도 없으며, 빛깔이나,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촉감의, 관념도 없으며, 그러한 것들의 모든 상대 또한 없느니라. 그러므로 미혹된 어리석음도 없고,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것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으며, 끝내 늙고 죽음을 벗어나는 것도 없나니.)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菩提薩陀 .依般若波羅蜜多 故.心無罣礙 無罣礙故 .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괴로움도 없고 ,괴로움의 원인도 없고, 괴로움을 없애는 일도 없으며, 팔정도(正見(바른견해).正思惟(바른판단). 正語(바른말).正業(바른 업).正命(바른 운명). 正精進(바른 노력).正念(바른 생각).正定(바른 삼매) 의  길도 없느니라. 지혜가 따로이 있을 수 없으며, 아무런 얻음과 잃을 것이 없으므로, 모든 보살은, 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 닦아가나니, 마음에 걸림이 없고, 마음에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 잘못된 망상을 떠나, 마침내 열반에 이르느니라.)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 故 得 阿耨多羅三藐三菩提.(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여, 최고의 올바른 깨달음을 얻었으니,) 故知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 能除一切苦. 眞實不虛.(이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한 진언이고, 가장 밝은 진언이고, 가장 뛰어난 진언이며, 비길 데 없는 진언이니 ,능히 모든 괴로움을 없애고, 참으로 진실하여 허망함이 없느니라.) 故說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이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설하노라. 가자가자  피안의 길로. 깨달음의 길로---) (참조: 唯然世尊願樂欲聞.發菩提心.2015.02) 원문은 위에서 밝혔으므로 여기서는 해설만 하기로 한다.

 1)티베트 불교의 성자 달라이라마의 반야심경 해설 : 언젠가 나는 이렇게 들었다. 부처님이 라자그리하의 영축 산에서 많은 비구들과 많은 보살들과 함께 앉아 계셨다. 그때 부처님은 ‘심오함의 표현’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현상삼매[三昧]’에 들어 계셨다. 그때, 위대한 성자(聖者) 관자재(觀自在)보살은 심오한 반야 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를 닦는 수행을 철저히 관찰하고, 오온(五蘊)조차도 자체적으로 내재하는 실재를 갖고 있지 않음을 명확히 보았다. 부처님에게서 영감을 받은 사리자 스님은 위대한 성자(聖者) 관자재보살에게 물었다.“심오한 반야 바라밀다를 얻는 수행을 하고 싶은 고귀한 가문의 아들과 딸들은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이 말을 들은 위대한 성자 관자재보살은 사리자 스님에게 이렇게 말했다.“사리자여, 심오한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는 닦는 수행을 하고 싶은 고귀한 가문의 아들과 딸들은 다음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오온조차도 내재하는 실재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철저하게 알아야한다. 형상은 공성(空性)이고, 공성(空性)은 형상이다. 공성(空性)은 형상과 다르지 않으며, 형상도 공성(空性)과 다르지 않다. 이와 마찬가지로, 감정과 지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모두 공성(空性)이다. 그러므로 사리자여, 모든 현상이 공성(空性)이다. 그것들은 규정된 특징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들은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 그것들은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그것들은 감소하지도 않고 증가하지도 않는다. 사리자여, 그러므로 공성(空性) 속에는 형상도 없고 감정도 없고 지각도 없고 의지작용도 없고 의식도 없다.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코도 없고 혀도 없고 육체도 없고 마음도 없다. 형상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고 맛도 없고 촉감도 없고 의식의 대상도 없다. 시각의 요소를 시작으로 해서 의식의 요소를 포함해서 마음의 요소까지도 없다. 무지도 없고 무지의 소멸도 없고 등등, 늙음과 죽음도 없고 늙음과 죽음의 소멸도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고통도 없고 고통의 원인도 없고 고통의 소멸도 없고 수행도 없다. 지혜도 없고 성취한 것도 없고 성취하지 못함도 없다. 그러므로 사리자여, 보살은 성취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 반야 바라밀다에 의지하여 그 안에 머문다. 보살은 마음에 장애가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고, 그릇됨을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에 열반에 들 것이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도 이 심오한 반야 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에 의지해서 최고의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므로 반야 바라밀다 진언(眞言)을 알아야 한다. 훌륭한 지혜의 진언이며 최상의 진언이며 필적할 것이 없는 진언이며 모든 고통을 없애는 진언인 이것은 거짓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이다. 반야바라밀다 진언은 다음과 같다.(사리자여, 위대한 존재인 보살들은 이와 같이 반야 바라밀다를 닦아야 한다.) 그러자, 부처님이 삼매[三昧]에서 깨어나서 위대한 성자(聖者) 관자재보살의 대답을 훌륭하다고 말하며 칭찬했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고귀한 불자(佛子)여, 그와 같다. 그처럼 해야 한다. 수행자는 방금 그대가 말한 대로 반야 바라밀다를 닦아야 한다. 그리하면 여래(如來)들도 함께 기뻐할 것이다.”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했을 때, 사리자 스님과 위대한 성자(聖者) 관자재보살과 천신들과 인간들과 아수라 등을 포함해서 모든 청중이 부처님의 말씀에 함께 기뻐하고 환호하였다. (참조: 唯然世尊願樂欲聞.發菩提心.2015.02) 불경(佛經)은 문자로만 이해하려고 하면 무슨 말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깊은 명상에 들어가서 독송(讀誦)하기를 기대한다. 선지식인(善知識)과 스님의 반야심경 불경독송(佛經讀誦) 내용을 옮겨 실었으니 문자로만 이해하려말고 보다 더 깊은 심연(深淵) 의 세계로  들어가서 깨우침 있기를 기대한다. 심연(深淵)으로 들어가는 길은 문자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에는 문자를 버리고 명상에 드는 일이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반야(般若)란 지혜를 말한다. 지혜라는 것은 제법(諸法), 즉 삼라만상 모든 것들의 존재방식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을 말한다. 지혜의 반대는 무명(無明)인데 무명이란 곧 삼라만상의 존재방식을 잘못 알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그럼 삼라만상 모든 것들의 존재방식은 어떤 것일까? 그게 바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연기법(緣起法)이다. 연기법(緣起法)이란 인(因)과 연(緣)이 서로 상호 의존하여 모든 법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뜻한다. 가장 쉽게 표현하면 상호의존성을 뜻 한다. 상호의존성이란 ‘독립적인 실체가 없다.’ 라는 것을 의미한다. 왜 삼라만상에 독립적인 실체가 없을까? 바로 상호의존성 때문이다. 무명(無明)이란 바로 이걸 모르는 것을 뜻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엔 독립적인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것을 말한다. 존재건 사물이건 모조리 다 고정된 것이 없고 순간순간 변해간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내가 아닌 것이다. 왜 중생은 무명(無明)에 빠져서 고통을 당할까? 왜냐면 보이는 모든 것이 고정되어 있어서 영구불변하는 진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는 것이다. 속기 때문에 모든 것에 실체가 있는 줄 알고, 집착을 하게 된다. 집착을 하게 되므로 온갖 고통이 생긴다. 이런 것이 무명(無明)이다. 반야(般若)란 이와 반대로 모든 것의 존재방식을 제대로, 똑바로, 사실 그대로 알고 있는 것이다. 바라밀다(波羅蜜多)는 ‘피안으로 건너간다. 다다른다.’ 라는 뜻이다. 한자로는 도피안(到彼岸)이다. 대승에서는 육바라밀로 설명하고 있다. 피안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핵심이 바로 반야(般若)이다. 그래서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이다. 중생은 언제나 어떤 모습이나 실체가 있는 것을 찾으려는 인(因)과 연(緣)에 의한 업[業]에 빠져 있다. 그러므로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를 더더욱 깨닫지 못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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