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인간에게 지고의 가르침을 주는 종교에 무슨 개혁이 필요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고,  종교개혁이라 하면 맨 먼저 루터가 주도한 기독교 내부의 종교개혁을 떠올리기 쉽겠지만, 이 문제가 종교에 관한 일인 만큼 인간의 정신 상태가 그 주안점이 될 것이다. 어떤 면에서 지금은 종교의 세상인데 바로 그 종교라는 이름으로 너무도 끔직한 인간끼리의 살육사건이 끊이지 않는 우리 인간 자신들의 추악한 정신세계가 전 세계의 자화상이 되어 감출 곳 없이 불거져 나오는 현상일 것이다.
 우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세력인 기독교 쪽을 보면 모세의 십계명을 굳게 지켜야 한다는 유대 교리에 대하여, 하느님의 본성이자 본체인 사랑을 행함이 본질임을 설파한 예수님이 그 개혁의 선봉에 서 있고, 이를 계기로 기독교가 유대인만의 종교가 아닌 전 세계인의 종교화의 일이 열린 것이다. 이어 A.D 570년경에 태어난 마호메트는 자신이야말로 아담,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등을 잇는 예언자이며, 오직 하나의 진신(眞神)의 가르침을 비로소 아라비아 민족에게 전해야 할 중대한 사명을 띠었다는 확신을 갖기에 이르렀다. 그의 주장으로는 인류의 시조 아담으로부터 수많은 선지자들이 많은 가르침을 남겼으나 모두 그들 시대 당시 상황에 적합한 가르침이었으나, 현 상황에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으니 지금의 상황에 맞추어 모두 종합 정리하여 경전을 만드니, 앞으로는 한 글자도 빼거나 덧붙여서는 안 된다는, 말하자면 신앙의 완결편이라 할 남한 코란을 내놓게 되니 이 또한 종교개혁의 한 과정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구교(舊敎), 지금의 천주교 신부였던 루터(Luther)는 수도원의 계율을 모조리 이행하기 위하여 힘을 쏟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할수록 자기의 불완전함을, 또 자기의 죄를 더욱 깊이 자각할 뿐이었다. 오랜 수도생활 끝에 그는 하느님의 의(義)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의(義)란 심판하는 의가 아니라 은혜의 의로 파악된 것이다. 그는 우리가 올바른 일을 다 하고 계율을 지키는 것만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니고 다만 신앙으로서 하느님의 은혜를 입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오직 신앙’을 발견한 것이다.
 무쇠와 같이 빈 틈 없고 엄격한 생애를 보낸 루터와 비슷한 시대의 칼뱅(Calvin) 또한 신의 절대 주권을 주장하는 신앙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체계를 설파해 나갔다. 신의 의지야말로 세계와 우주를 통하는 유일한 인과율(因果律)이며, 피조물은 모두 이 섭리(攝理)에 의하여 움직인다는 말이다. 따라서 신에 의하여 예속된 참다운 자유를 더 한층 강조하기에 이른다. 그의 가르침이 청교주의(Puritanism)로 이끌게 되면서 이러한 신안의 신조를 가진 청교도주의자들의 일부가 영국에서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건너 가 특색 있는 사회를 만들면서 미국을 독립국가로 만들어 내기에 이르기도 한다. 이들에게서의 인간은 아무런 차별이 없이 신에게 직접 봉사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중간에 제사(祭司)라는 특수한 매개물이 필요치 않다고 말한다. 개인의 가치와 책임에 기초하여 신앙생활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만인 제사주의는 시대의 정신과도 결부되어 있었고 근대사상의 기초를 마련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성서야말로 신의 계시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유일한 존재라는 주장도 빼놓지 않는다. 전승(傳承)과 전통, 그리고 교회의 권위가 성경에 우선하는 천주교에 반기를 든 것이다. 또 신의 의지는 영원한 옛적부터 세계와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특히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원과 멸망에 대하여 절대  변함없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예정설(豫定說)을 내세우기도 한다. 일상의 세속적 직업은 신(하느님)의 뜻에 의한 사명이라는 것이다. 세속적 노동을 잘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잘 지키는 일이라는 말이다. 금욕 도덕이 아닌 세속적 도덕을 소홀히 하지 않고 오히려 세속적인 의무인 사회생활에서 직업으로 주어진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신을 기쁘게 하는 단 하나의 수단이라는 말이다. 나아가서 신이 허락한 신의 의지인 직업이 모두 신 앞에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는 말이다.

 구원을 받는다 함은 객관적인 신의 은총에 의한 것이지 결코 인간 자신의 가치, 공적, 능력 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인간이 신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신이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포함된다. 인간의 개인적 운명은 모두 신에게 속하고 인류 전부가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일부는 영원히 멸망 받게 결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신의 의지는 영원의 시초부터 움직이지 않고 인간이 아무리 애써도 이것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이웃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는 경지에 이르면 가족적 관계 또는 친구관계 등 여하한 입장도 이를 초월한 오직 순수한 일반 인간관계에 모두 적용된다. 따라서 노동이란 이웃 사랑의 실천이며 비개인적이며 사회적 효용에 봉사하는 숭고한 의미가 된다. 신의 섭리에 따라야 하는 인간이 자기가 구원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따지고 든다면 신의 비밀을 침범하는 것이 된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 속에서 끊임없이 직업 노동에 종사하는 것이야말로 신의 영광이 되는 일이니 육체적 능력과 정신적 능력을 총동원하여 노동의 효과를 올리는 데 열중하라고 권한다. 노동 주체의 능력은 긴장된 가운데 향상되고 노동 과정에 있어서는 기능적으로도 노동 수단의 구조면에서도 오로지 합리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끊임없는 노동에 의하여 노동 대상도 가능한 한의 모든 것을 동원하게 된다는 말이다. 탐욕과 게으름은 신의 은총을 부인하는 것이기에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이라면 전력을 기울여 이를 물리쳐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노동을 요하는 직업이란 신을 기쁘게 하고 사회에 이익을 주는 일이어야 한다. 육체적 욕망이나 죄를 위하여 부를 원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신을 위해 부유해지고자 노동한다면 좋은 일이니 편의(便宜)에 앞서 공공의 이익을 존중하라는 말이다. 신을 기쁘게 하는 직업과 노동으로 축적한 부를 보다 높은 가치에 두라는 말이다.

 종교인들, 특히 유대교, 이슬람교, 천주교, 개신교 등 한 뿌리에서 나온 종교들 간의 갈등이 온 세상을 긴장으로 몰아가고 있는 가운데, 간간히 있었던 자성의 소리가 ‘종교개역’이란 이름으로 터져  나온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떤 종교 개혁보다 핵심적으로 중요한 개혁이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소리 높이 외치면서도 유일신 신앙을 앞세운 ‘배타성’이 감추어져 있는 종교라면 종교일 수도 없고 영원히 폐기되어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할 일이다. 오직 온 세상을 덮고 녹여 줄 뜨거운 사랑의 힘으로 전 인류를 하나 되게 아우르는 포용과 배려가 빠진 개혁은 개혁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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