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종 암
칼럼니스트
 1년에 한 차례 시행하는 신춘문예, 그리고 매분기 선발하는 신인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돼 문학 장르 각 부문에 걸쳐 심사를 해보면, 썩 마음에 와 닿는 경우가 드물다. 2010년, 졸저 <내가 사는 이 좋은 세상에>란 시집을 출간 후 시 부문은 붓을 꺾었다.

 너도나도 밤나무처럼 설치는 대한민국만의 시인 천국에다 부정의가 판치는 등에 실망을 안았고, 청년시절부터 750여 편을 쓴 후 '시란 게 무엇이다'는 것을 알만하자 내 시가 시로써의 가치가 없다는 자학에서, 140~150편을 남기고 과감하게 쓰레기통에 처박고는 현재까지 절필상태이다.

 문학심사를 할 때나 독자들이 시집을 사보고는 이렇게 묻는다. "시 속 주인공이 실존 인물이냐?" 심지어 <58년 개띠, 은퇴행 열차를 타고>란 시에 "왜 나이를 속였냐?" 등 질문이 쇄도할 때가 있다. 그러나 거의가 가상의 세계이거나 가공인물이다. 반면 실제 체험한 것처럼 읊는다. 그러면서 독자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끔 한다.

 어떤 중년여성그룹은 그 시집이 나오자마자 <떠나보냄에>란 시(사랑했던 남녀가 이별하는 순간을 읊음)에 매료돼 경기 안산 오이도까지 초대해, 만나자마자 나를 붙잡고는 펑펑 눈물을 쏟은 적이 있다. 그녀는 현직 교사인 남편을 만나기 전, 한 남자랑 헤어진 그 순간을 그렇게 잘 묘사했냐는 것이었다. 또 <그 자리에, 그대로>란 시(부부가 함께 살았던 예전 집을 방문하니 저 세상으로 간 아내는 없고, 자신만 홀로 머무르는 순간)에는 사별한 50대 사내와 40대 주부는 너무 슬픈 나머지 울었다는 후문을 전해오기도 했다.

 <보낼 수 없는 카네이션>은 내 어머니를 잃은 다음해 어버이날 전날 밤, 밤새 읊으면서 컴퓨터 자판을 다 적시기도 했다. 매년 그날이 오면 독자들이 돌아가신 어버이에 대한 죄책감에 눈물샘을 적시기도 하나, 많은 이에 의해 표절돼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해 끝내는 용서한 적이 있다.

 그렇다. 작가는 작중에서 독자를 웃기는 웃음전도사, 울리기도 하는 악마에다, 희망을 주는 희망등대지기 등 여러 부류의 삶을 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악한이어도 아니 되며, 자신을 숨기지 않는 맑은 영혼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전방위적으로 글을 쓰는 나는 작가를 벗어난 평론가(문학, 시사)로서는 냉철한 비판의식이 싹튼다. 문학평론에 있어서는 호평과 혹평이 오가면서 새로운 이론을 정립시키기도 한다. 수년 간 언론에서 행한 시사평론에서는 행여나 있을 반론에 대비키 위해서라도 먼저 내 삶이 올곧아야 함을 직시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공격과 방어에 철저하면서 날카롭다.

 맡기 싫은 심사위원장도 모자라 선발된 시에 대한 평론까지 맡았다. 다음은 문학전문저널 창조문학신문사(발행인 겸 이사장, 박인과)당선작과 이에 대한 문학평론(비평)가로서의 시평이다. 시평은 그들의 신인문학상장 갈피 속 원문 그대로 옮긴다.

 "봄 전령 시샘해 /옷 벗고 /꽃 피우네 // 봄 지나 개나리 고개 숙이나 /산수유는 뽐낸다 // 뜨거운 태양 파아란 하늘 /가지마다 빠알간 진주 주렁주렁 달아 /세월을 즐기고 /남녀를 유혹한다 //다음 봄엔 /떨지 말고 옷 챙겨 입고 올까나" -제정호(경기 고양시), 산수유 <전문>

 제정호의 시는 얼핏 보면 난해하다. 그러기에 시령(詩齡)이 충만한 시인이 읊조렸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재차 음미하면 은유가 지나칠 것 같으면서도 그러하지 아니하며, 적절한 동양적 미와 우리 민족의 은근한 미가 결합돼 있다. 접속조사의 적절한 탈락과 배치도 돋보인다. 봄은 뭇 꽃들이 자태를 뽐내며 자웅의 향연을 벌인다. 그 중에서도 산수유는 제일 먼저 봄을 알린다.

 철없는 개나리가 봄을 알린다고 희망 섞인 노래 속에 노랗게 피었지만, 아직도 가시지 않은 눈발 속에 묻힌 채 산수유가 벌써 피어났음을 발견하고 고개 숙인 자연을 형상화했다. 이에 산수유는 고개 숙일 수밖에 없는 개나리와 꽃들을 비웃는다. 뭇 꽃들이 진 후에도 붉은 열매까지 주렁주렁 달고 유유자적 세월을 낚으며 '꽃중의 꽃'으로 군림하며, 내년 춘삼월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에도 다시 피우겠다면서 만물에게 겸손의 미덕을 가르치기도 한다.

 "돌덩이 같은 가슴에 /부르지도 않은 어느 날 /소리 없이 살며시 찾아 왔다 // 얼어붙은 가슴은 /부드러운 입술로 /한 순간 사르르 녹아들었다 //눈꽃 속 홀로 있던 나뭇가지 /파릇한 새움이 돋아나고 /기나긴 어둡고 추웠던 시간들도 /허물을 벗듯이 벗겨지고 있다 //눈 감으면 머릿속에 /새 하얗게 촉촉한 꽃비가 내리고 /가슴속 깊이 스며들어 /연두빛 싹을 튀운다 // 핑크빛 너의 입술에 /꽃이 피어나던 날 /온 세상 꽃가루 날리며 /그 향기에 취한다 //세상에 눈 뜨고 /처음 꽃 피웠던 그날처럼/ 봄은 첫 키스처럼 피어난다." 임미영(경기 파주시), 봄은 첫 키스처럼 <전문>

 일상생활 속에서 삶의 체험적 관점이나 간접적 체험에서의 산고 끝에 시가 잉태된다. 돌덩이같이 굳어있는 가슴에 사랑의 홀씨를 뿌려댔다. 홀씨를 부여안은 가슴도 일렁인다. 끝내 새악시는 백마 탄 흑기사에게 항복한다. 이처럼 봄을 맞는 항복도 사랑이란 굴레 속에 묻힌 승리의 깃발아래 함께하는 삶의 지향이다. 인생의 봄도, 사계절의 봄의 태동도 첫 키스처럼 강렬함 속 진취적 기상으로 형상화한 시는 맛깔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사유하는 힘이 강하면서도, 작자의 고운 내면의 세계와 달리 시어의 창조성이 모자라는 성급함이 있다. 시인들의 확장 또는 팽창이 우선인 '자기들만의 만족'을 취하는 문단이라면 당선작으로 하고도 남겠으나, 조금 더 채찍질을 가해 명실상부한 시인이길 기대하기에 가작으로 선정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2015.4.12, 익일 시상식 때 수여할 신인문학상장 속에 각자의 시평을 끼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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