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인생을 살아갈 때에 만나는 것마다 험준한 높은 산이고 건너지 못한 깊은 강물로 느껴질 수 있다. 깊은 강물일수록 소리 없이 흐른다는 사실과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개의치 않고 슬며시 덮었다가 유유히 떠나가는 구름을 바라볼 틈도 없이 어느새 흘러가 버린 인생을 되돌아보기 십상이다. 그런 장애 쯤 쉽게 뛰어넘는 수양으로 단련된 심지 깊은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기 쉽다.
 아무리 친한 사이일지라도 술은 무리하게 권할 일은 아니고 또한 무리하게 마시지 않음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며, 음율(音律)은 그 숙련성이 아닌 소리 그 자체에서 나 혼자만의 즐거움을 찾을 줄 알아야 할 일이다. 친지나 친구를 만날 때에도 약속 따위를 해서 피차 부담을 느낄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만나는 것이 참 반가움이며, 손님이 오더라도 번거로운 송영(送迎) 따위는 던져버리고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조금이라도 관습이나 형식에 사로잡힐 때 풍아의 정(情)이 속세의 사교와 다를 게 없어지고 말 것이다. 자칫하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형식화, 형태화 되어 허례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초(楚)나라 장왕(莊王)이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다음, 공을 치하하기 위해 군신을 초대해 큰 연회를 베풀고 왕비로 하여금 모든 장군에게 술을 따르게 하였다. 흥이 저녁까지 이어져 왕은 촛불을 켜고 잔치를 즐겼다. 그러던 중 갑자기 돌풍이 불어 연회장의 촛불이 모두 꺼졌다. 이 칠 흙 같은 이 어둠을 틈타 한 장군이 왕비를 껴안고 희롱하였다. 요즈음 말로 성희롱을 한 것이다. 왕비는 목숨을 걸고 벗어나려 했고 순간적으로 그의 갓끈을 떼었다. 그리고는 왕에게 가서 갓끈을 보이며 누구의 소행인지 찾으라고 하소연 했다. 그 장군은 이 광경을 보고 술이 확 깨면서 두려움에 떨면서 처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뜻밖에도 왕이 이렇게 선포한다. ‘과인이 오늘 연회를 베푼 것은 모두가 흥겹게 놀자는 뜻이오. 여러분들의 흥이 끝나야만 연회도 끝날 것이오. 이 자리에 여러분은 모두 갓끈을 떼어내고 여흥을 즐기기 바라오’. 그리고는 다시 명하여 모두 갓끈을 떼어내는 걸 보고는 불을 켜 연회를 마저 즐겼다.
 이 후에 초나라가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게 됐는데 장왕이 병사들을 이끌고 적진에 들어갔다가 적군에게 포위를 당하게 되었다. 곧 생포될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한 장군이 용감무쌍하게 적진에 돌진하여 적군을 물리치고 장왕을 구해냈다. 장왕이 감격하여 장군의 이름을 물었을 때 그가 바로 얼마 전 연회장에서 갓끈 없는 장군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장왕의 너그러운 마음이 결국 스스로의 생명을 구한 셈이다.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면 사귀지 못할 친구가 없을 것이고 다른 사람을 꾸짖듯이 자신을 꾸짖는다면 자신의 허물이 확 줄어들 것이다. 

 언덕(阝)에 올라가 맨손(手. 爪)으로 일하는(工) 사람을 쳐다보며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라고 남몰래 마음(心)아파하는 사람이 있을 때 이들 글자들을 합성하여 숨을 은(隱)자가 된다. 이 은(隱)자는 시야에 가려져 안 보인다는 뜻이 아니라 만인에게 노출되는 언덕 빼기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의 마음이 일하는 사람에게 들키지 않았다는 뜻인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어떤 희생을 지불했거나 또 어떤 부담을 느끼면서도 남에게 무엇을 베풀었을 때 비록 그것이 자발적인 행위였더라도 은근히 유형무형의 보상을 기대하기 쉽다. 한편 내가 받은 은혜는 까맣게 잊고 또 어쩌다가 원망을 듣게 되면 그것은 그것을 잊지 못하는 것이 도한 인지상정이다. 우리는 자신이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보은을 했는지 잊기 쉽다는 말이다.
 집단 속에서 어떤 주제를 놓고 논의할 때 우리는 무의식 속에서 그 결론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를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끌고 가기 위해 보통 그럴듯한 논리를 찾으려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일은 큰 집단에서나 작은 집단에서나 예외가 없는 일로써 누구나 명심하면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또 일단 결정이 나서 실천해 나갈 단계에 접어들면 그 일이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라면 기꺼이 발을 벗고 앞장서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손을 뺄 뿐 아니라 훼방까지 놓는 모습도 드문 일은 아니다.
 이는 인간이 얼마나 교활하며 마음 약한 존재인지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한 것 같다. 눈에 잘 안 띠는 사소한 일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삼가는 습관을 기른다면 보다 큰 문제에 부딪칠 경우 미혹되는 일 없이 올바르게 처리할 능력이 생긴다. 또 남을 보살펴 줄 경우 범인들은 반드시 상대방이 감사할 것을 은근히 기대한다. 이럴 경우 순수함을 잃어버린 상(商)행위와 같다고 해야 할 일이다.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 선행이 되려면 도저히 보답할 능력이 없는 처지가 어려운 대상, 그 중에도 가장 처지가 어려운 사람을 골라야 할 일이다. 무의식중에라도 보답을 원하는 비열한 마음의 싹이 틀 온상이 없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때로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새로운 편견으로 몰아갈 때도 있는데, 이는 작은 장애물을 보다 큰 장애물로 바꾸어 놓는 결과가 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습관적인 편견을 포기할 때 처음에는 자기의 갈 길을 잃은 것처럼 고독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편견을 버릴 때 자신의 내면으로 더 깊이 파고들 수 있고, 더 정확한 자신의 모습을 대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내 마음이 남에게 들키지 않게 베푸는 선(善)의 다른 표현인 자선(慈善)은 그 베풂이 자신이 쏟아 부은 노고의 소산일 때 참다운 선이 된다.
 땀 흘리지 않는 손은 물건을 더럽히고 땀 있는 손은 물건을 더럽히지 않는다. 일정 때부터 우리 겨레와 애환을 같이 해 오면서 전 국민적 사랑을 받아 왔던 ‘알뜰한 당신’의 가수 황금심 님은 연탄이 시커멓게 묻은 광부들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손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 하며 진심어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더러운 손이라서 손 내밀기를 주저하던 그들이 큰 용기를 얻어 힘 있게 일할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는 것, 이것이 자선이라는 말이다. 교통을 방해하는 길 가의 돌을 치우는 것이 자선이다. 인생에 있어서 위대한 것들은 대개 사람들의 눈에 잘 띠지 않는 일이 많다. 사람은 아무도 안 보는 혼자 있을 때 더 많은 죄를 짓는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사람을 유혹하는 악마조차 무서워서인지 악행을 멈추게 된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유혹과 절망에 빠지기 쉽다는 말이다.
 고독을 사랑하는 마음은 자신의 좁은 생각에 갇혀 제멋대로 행동하기 쉽고 세상과 멀리 떨어져 선을 행함에 게을러질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감각이란 때로 변덕스러우며 필요시 어떤 환상까지도 만들어낸다. 사람의 머릿속에는 온갖 힘의 재료가 들어있으니 그 속에서 새로운 형상이 생겨나기도 한다는 말이다. 이미 들켜버린 배려나 자선이라면 과장이나 과식에 불과함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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