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주; 본고는 작년 8월 하순께 필자가 문학평론가와 칼럼니스트 입장에서 쓴 비평으로 중앙언론사와 문학지에 동시기고 한 것이다. 익월에 약간의 문맥의 부자연스러운 단락은 새로 고쳤다. 진정한 문학인들서는 격려의 편지를 보내오는 등 널리 읽혀지는 바, 지역신문으로서는 본지에 단독으로 기고한다.
 

정 종 암
칼럼니스트
 '기레기(언론+쓰레기)'란 신조어가 근간에 탄생했다. '시레기(시詩+쓰레기)'란 신조어도 탄생시키겠다. '시 쓰레기'를 양산하는 걸레시인이 난무하는 현실이다. 지하철 벽면이나 스크린도어, 그리고 등산로나 시골마을 입구에 선 시비(詩碑)가 비웃음을 자아낸다. 돈 많은 유한마담 격 중년여성이나 노인들이 긁적인 잡글(雜語)이 자비로 세워진다. 함량미달인 그들의 시비 앞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며 두 손 모아 절까지 하니 비웃거리로 전락한 세상이다.
진작 민족저항시인만을 기리는 시비는 없다. 일본의 국화 격인 벚꽃 놀이에 열광하면서도 국화인 무궁화를 외면하는 것과 진배없다. 쓰레기를 양산하는 영혼 없는 시인들이 죽어 또 하나의 비가 세워지면 성묘도 안 하는 세태에 누가 관리할 것인지 궁금할 노릇이다.

 굳이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자신의 정서와 사상을 운율을 지닌 함축적인 언어로 표현한 문학의 한 장르로 생각할 수 있겠다만, 딱히 정의를 내릴 수도 없다. 그러나 시를 쓰고 시인이란 게 존재한다. 30여 개 온ㆍ오프라인 언론을 통한 신춘문예이든, 유ㆍ무명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던 실력 차는 변별하기는 어렵다.
시를 잘 쓰고 못 쓰고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듯한 카페에 자신이 유명한 시인인 양 생전에 시비를 세우고 마구잡이로 새끼시인을 양산하는 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직에서 은퇴하고 문학에는 전무한 이들이 황혼녘까지 권력욕에 찬 나머지 시인으로 등단해 미꾸라지처럼 탁류를 일으키는 추한 모습의 연속이다. SNS에도 침범해 국어를 파괴시키며 일명 '페이스 북 시인'으로 군림하면서 공해를 발생시키는 시레기도 많아 일반인은 외면하면서 냉소주의로 흐른다.

 한 집 건너 시인인 꼴에 삼라만상의 온갖 감투와 허접한 상은 호박넝쿨처럼 걸치고 다닌다. 그들만의 감투에 그들끼리 주고받은 상은 비단 보따리에 싸둔다. 이제는 카메라까지 들이대 '아날로그냐. 디지털이냐'에 따라 '아카시' 또는 '디카시'란 명명아래 정체성까지 흔드는 부류까지 나타났다. 배고픔 속 맑은 영혼은 없고, 지역 권력에 기대며 시를 문학이 아닌 사치화하는 부류가 들끓는다. 1980년대가 지나서는 대한민국에 시인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있다면 시란 이름을 빌려 사체(死體)를 염하는 장례지도사 노릇뿐이다.
이들에 대해 '시 염습사(殮襲士)'란 조롱에 찬 신조어를 일찍이 언론에 이어 문학계에도 탄생시킨 바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혹여 괴짜 평론가라고도 볼 수 있겠다. 솔직컨대, 문학에 대한 기본적 소양도 없이 누구나 시를 긁적이는 부류를 보면 거의 알레르기 반응 수준이다. 영혼도 없이 '내 시인입네'면서 요상한 모자를 쓴 채 스카프만 휘날리기 때문이다.

이 따위로 시인 행세하는 게 세계 속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시인천국을 방불케 한다. 향기를 머금게 하는 꽃이 아닌 시 쓰레기 군락지를 이루면서도 중년여성이나 늙은 시인들은 인물사전에는 하나도 없다. 천편일률적 편식증에 사로잡혀 있다. 즉 시적 안목도 없이 자신만을 위하는 신변잡기성이기에 감흥도 없다.
어떤 체험의 진실성도 없어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들만의 시'란 기저에는 현실의 체험성은 없고, 애정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만 난무하고 유치원생이 때때옷 입고 뽐내기에 안주하는 행태에 불과하다.

오죽하면 세월호 참사 때 "시인 18X들아! 시 쓰지 마라. 너희들이 시대의 아픔을 아냐?"고 절규했겠는 가에 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어떤 민족애나 현실의 안주를 떠나 시어에 대한 미감을 일구어야 하는데 부족함이 역력하다. 민주화로 1990년대 이후 민족(또는 민중)문학이 퇴보되었다고 보나, 역사의 질곡마다 그 정신은 진행형이어야 한다. 또한 일시적 유행에 안주하지 않으며 다양화에도 힘써야 한다. 시란 형태의 흉내는 누구나 낼 수 있어도 낙서일 뿐이지, 함부로 시를 쓴다거나 시인이란 타이틀을 아무나 거는 게 아니다.
럭셔리한 삶에 시인이란 감투를 탐하며 공해를 양산하는 그 돈으로 배고픈 문학도의 창작기금에나 보태는 게 문학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시레기들의 시비가 공동묘지를 연상케 하면서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는 규제할 필요성이 있다. 지하철 벽면 등을 어지럽히는 시 쓰레기는 물론, 특히 친일시인 시비 등은 뽑아내 싱크홀(Sinkhole; 지반침하) 보수에나 주춧돌로 써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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